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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 특별기고


    '고지론과 미답지론',
    그리고 '중심권 진입 이데올로기의
    허와 실'에 대하여

 

※ 본 글은 월간 [복음과상황] 1997년 12월호 편집위원석(pp.16∼22)에 실린 글을 복음과상황 편집부의 허가를 받아 사용한 것이다. 필자 황병구님은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기독교 텔레비전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기독인 연합 운동을 거쳐 기독노래운동 "뜨인돌"에서 대표로 활동하면서 "온 세상 주인 되신 하나님", "함께 부를 노래가", "서른 해를 지내며" 등의 창작과 함께 찬양집 [많은 물소리] 시리즈와 [희년노래]등을 편집하였습니다.

<[복음과상황] 편집자주>

 

스물 두 살, 대학 3학년 나이다. 대학 문화의 중심 시기요 20대의 발달 과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5년 전쯤 지었던 노래의 가사를 하나 여기에 소개한다. 그 때 스물 두 살이었던 후배들을 향해 지었던 이 노래, 그 후배들은 어느새 내가 이 노래를 지었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1. 개강 파티 종강 파티 시간 없어서 가지 못했고 / 학과 MT 떠나자고 할 때는 교회 핑계 댔지만 / 새로 산 QT 노트는 언제 채워질 지 모르고 / 봄축제 가을축제 소개팅에 좋은 계절 가고… / 전자 오락도 즐기냐고요? 고스톱도 수준급이죠.

2. 제대로 공부할 생각보다는 학점 걱정 앞서고 / 꼼꼼히 정리 한 노트 대신에 노트 복사물만 한아름 / 도서관 자리 맡으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서지만 / 놀면서도 시험 잘 볼 궁리로 온 종일을 보내고… / 컨닝 해 본적 있냐고요? 없다면 거짓말이죠.

3. 지하철엔 스포츠 신문, 당구장에는 주간 만화 / 극장마다 찐한 영화 홍수, 비디오 가게는 망해도 본전 / 요샌 드라마도 광고도 코미디도 야해졌어요 / 저는 아직 이 세상 기준으론 순진한 것 같아요 / 음담패설 들어 봤냐고요? 요샌 우습지도 않아요.

4. 학원 복음화!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 좋은 얘기죠 / 독재 타도! 민족 통일! 세계화! 반대하지 않는다구요 / 하지만 내겐 자아 실현과 인간 관계가 더 중요해요 / 우리 민족 근대사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어요 / 저 정말 그리스도인이냐고요? 전 그게 늘 맘에 걸려요.

고지론과 중심권 진입 이데올로기의 허구

그 당시 이 노래에서 지적하여 바로잡고 싶었던 대상은 기독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점차 소시민화 되어가고 있는 '정보 산업사회 속의 소아적 대학 기독인'이다. 그러나 이것이 취업난이 극심한 요즈음에 더 적확하게 맞아떨어질 줄이야!
대학원에 재학 중 존경하던 어느 목사님께 많이 들었던 설교가 있다. 그 때 노래 운동을 같이 했던 몇몇 동료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고지론'으로 불리던 설교였다. 설교의 요지는 대강 다음과 같았다.
"이 세상의 중요한 영역은 이미 세속적 리더십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 영역을 탈환하는 것은 마치 전투에서 고지를 점령하는 것과 같다.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고지의 병력보다 수 배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지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고지를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제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은 힘써 각 영역으로 진출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라. 그래서 대학 시절은 중요하며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라. 목회자나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은사를 따라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하고 기독교 세계관으로도 건강무쌍한 말씀이셨다. 이러한 내용의 설교는 국내뿐만 아니라 북미 유학생 수련회 등에서도 여러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도전을 주었으며, 차세대의 분야별 리더십들을 길러내는 데에 필시 유익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주 속는다. 우리는 우리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쓰려고 '고지론'을 들먹일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자성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 학기말 시험을 앞둔 대학부 후배에게 리더나 선배들이 성경 공부와 성가 연습을 권하기가 쑥스러워진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또 하나, 교회 안의 기성 세대들의 바람 역시 이와 유사하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절한 단계를 밟아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지위를 확보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교회를 위해 기여할 수도 있고 선교 사업에 힘쓸 수도 있고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빈정거림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 역시 사회의 중심권에 진입하여야 한다는 당위를 가지고 있다. 대학 입시의 성공을 위한 특별 기도회, 각종 승진에 따른 감사 헌금 등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암묵적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신앙의 행태들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회 안에서 적절한 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노력을 신앙적으로 합리화하고 미화하기 위한 논리이거나, 상대적인 상실감과 박탈감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정서의 신앙적 표현일 때가 더 많다.
   우리 모두는 잘 안다. 특출한 능력이나 부모의 도움 없이 이 사회의 중류층의 지위와 중산층의 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바득바득 애써야 하는지, 그리고 남을 돕고 이웃에게 베푼다는 가치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사치스러운 선택으로 놀림을 받는 지 말이다.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는 일이란?

지난 여름부터 요즈음까지 각 교회 대학부와 학생 선교 단체에서 가슴 벅찬 감격과 함께 자주 부르는 찬양은 '부흥'(고형원 사/곡)이라는 간구와 탄원의 노래이다. 학원 복음화 협의회의 '리바이벌 97 대회' 주제가이기도 하였고, 예수전도단 8집 음반의 표제곡이기도 하다. 지난 11월 15일에는 연세대 대강당에서 이 노래를 주제로 한 콘서트 형식의 집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가사를 소개해 본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소서 / 이 땅 고쳐주소서 / 이제 우리 모두 하나되어 /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 성령의 불 임하소서 /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 오오 주의 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 오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조금 분석적인 시각으로 노래를 살펴보면 다음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현실 인식(이 땅의 황무함)과 문제 해결 주체(긍휼을 베푸시는 주)에 대한 각성이다. 그리고 회개(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와 중보(이 땅 고쳐주소서)이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우리의 실천은 무엇인가? 연합(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이다. 그리고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는 것'이다. 그 결과 성령의 임재와 그 능력(성령의 불 임하소서)에 의지한 영적 전투의 승리(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와 함께 비로소 '부흥'은 도래한다.
과연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는 일이 무엇인가? 가치관의 파괴, 윤리적인 타락에서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평면적이고 일반적이다. 과연 역사적이고 신앙적인 조망은 무엇일까? 어느 교회의 대학부 교역자는 기도와 전도, 경건의 시간 등 기초적인 신앙 생활의 회복이라고 하였단다. 이해는 가지만 마음이 아프다.
참된 부흥의 주체가 주께서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할 때, 과연 이 땅에 세워진 교회의기초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순교의 피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조건 없이 자신을 희생한 믿음의 선진들의 삶과 죽음이다. 갈보리 십자가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의 삶과 죽음이다.

진정한 부흥은 희생 정신에 있어

한국 교회의 성장 뿌리에는 피뿌림의 밑거름이 있음을 주목하자. 지도에서도 찾기 힘들었던 극동의 작은 나라에 창창한 자신의 미래를 접어 두고 찾아온 선교사들, 풍토병에 걸려 애매히 숨져간 그들의 어린 자녀들,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참수형을 당한 성도들, 신사 참배에 반기를 들었다 옥고 중에 숨져간 이들, 성경의 진리를 위해 젊은 시절을 아깝다 아니하고 성경을 번역한 이들, 평생을 성경 반포에 바쳤던 권서인들 등등 우리의 교회사는 이들의 희생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무너진 기초, 그것은 순교와 희생 정신의 훼손을 말한다. 뻔뻔하게도 '고지론'을 가장하여 종교적으로 교묘히 포장된 자아 실현과 입신 양명의 야망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다면, 이는 황무한 이 땅을 더욱 피폐케 하는 죄악이 될 것이다.
참된 부흥이 특정 집단의 성장과 영향력 증대가 아니듯,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는 일, 이는 결코 어떤 개인과 단체의 성장과 업적을 위해 종교적 기반을 쌓는 그 무엇이 아니다. 복음의 기초인 예수의 보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본의를 교회의 중심에 그리고 성도들의 삶 가운데에 재 각인하는 일이다.

이 땅에 영향력을 미치는 제자들

고지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그 수명이 짧다.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면 어땠을까? 뻔하다. 일본과의 2차전 패배에 많은 이들이 차감독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슬그머니 거두었다 한다.
차감독이 본선에서 선전을 펼치지 못한다면 이제껏 월드컵 감독으로 일궈왔던 대 사회적인 신앙적 영향력도 장기적으로는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귀히 쓰실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말이다.
더불어 요새 더욱 가중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 문민정부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 절하는 고지론에 대한 반례의 전형이다. 그렇다고 최저의 자리에서 테레사 수녀처럼 되란 말인가? 우리 모두가 김진홍 목사, 대천덕 신부, 최일도 목사처럼 되란 말인가? 여기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분명 그렇게 요구할 자격이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위에 열거된 몇몇 분들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얻게 되는 영향력의 비결이다. 이는 물론 조국교회의 신앙의 선진들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첫 번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행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지론'이 아닌 '미답지론'의 논리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 믿는 대학생들의 85% 이상이 졸업 후 전업주부, 기업체 샐러리맨, 학업, 교직, 교역자 등 평범하고 안정적인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여야 한다.(한국기독학생회, 평생 동역자 수련회 핸드북 1996.7)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 땅의 예수 믿는 젊은이들이여,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특히 예수 믿는 이들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눈길을 돌리라. 그곳에 예수를 믿는 그대가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복음의 능력이 번져갈 것이다. 이랜드(기독교 정신으로 운영되는 회사를 대표한다.-편집자주) 같은 곳은 믿음이 연약한(?)동료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어떤가?
두 번째는 이미 자신의 사욕을 다스리고 희생의 사역을 자청하였기에 그들의 대 사회적인 권면에 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를 위해 버린 것이 많은 사람들, 그들의 주장에는 힘이 있다. 이 땅의 예수 믿는 젊은이들이여, 예수를 위해 버릴 것을 준비하고 아직 없다면 버릴 것들을 힘써 득하라. 그리고 왜 그것들을 버렸는지 대답할 말을 준비하고 복음의 능력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움켜쥔 것이 많은 손으로는 도움의 손길을 펼칠 수 없고 머금은 것이 많은 입으로는 복음의 비밀을 말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남이 잘 가지 않는 영역에서 자기를 희생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도와주시옵소서"               

황병구 / 월간 '복음과상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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