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 제언

교회 교육 커리큘럼에서 요리문답의 활용이 회복되어야
늘 그렇지만, 뭔가 정확한 답을 알 수 없을 때, 막막할 때, 우리는
역사(歷史)를 보고 답을 찾는다. 교회 교육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결국 신앙의 선진들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던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 없이, 무엇이 바른
것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전제와 고민 없이, 그저 주변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적당히 '올바른 것'을 취사 선택한다거나 아예 새로이
창출하려는 시도는 절대 낙관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미안한 표현이지만
자기 자신의 안목에 대한 지나친 신뢰이다.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 교육
개신교, 엄밀히 말해서 장로교 개혁주의는 16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
이후 발전되어 나온 신학의 조류이자 교회의 형태이다. 이 시대를
거치면서 교회 교육은 당연히 크게 변하였다. 루터와 칼빈 같은 종교
개혁자들이 교회 생활을 새롭게 개혁한 이래, 교과 과정의 중심도
기존의 예배 의식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엄청난 개혁이었다.
이때부터 누구나 다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 성경을 각기 제나라
언어로 번역하고, 가정·교회·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 등을 요리문답서로 만들어 펴냈다. 그 후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각 교파 나름대로 교리문답서를 만들어
교육에 활용하게 된다.
이러한 교리문답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에는 루터 요리문답, 앵글리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등이 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은 우리에게 중요한데, 그것은
장로교(개혁주의) 교회가 신조로 삼는 것이 바로 이 신앙고백서라는 점
때문이다.
뛰어난 신학과 경건을 겸비한 백 수십 명의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성경에 의해서만 신앙의 표준을 세우고자 모여 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였다. 이들은 칼빈의 신학과 그의 교리를 전수하고
그의 사상을 계승하여 일궈 놓았던 분들이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이를 문답서 형식으로 편집한 대·소요리 문답서에는
개혁 시대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내용들이 잘 담겨져 있다.
오늘날 장로교 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교리문답서를 주의
깊게 연구하며 가르쳐야 할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근·현대의 교육 과정
종교 개혁은 교회로 하여금 교육에 대한 관심을 유발 시켰다. 그 교과
과정은 당연히 교리 문답이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주일학교 운동이
일어나면서 교회 교육에 잠시 새바람이 일어 주일학교 교과 과정에 일반
학문 과정이 일부 설정되었으나 얼마 후 국가가 국민학교 교육을
실시하게 됨에 따라 교회 과정은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성경과
요리문답은 이후 1815년까지 교회 교과 과정의 중심이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성서공회와 기독교 문서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성서 및
주석서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요리문답서는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
대신 성서를 암기하는 운동이 일어나 주일학교에서는 성경 구절을
발췌하여 새로운 교과 과정을 작성하게 됐다. 이 기간은 1840년에서
1870년까지로, 교과 과정의 혼란기라고도 불린다.
그 후 차츰 새로운 의견이 대두되어 통일된 교과 과정을 작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미국 시카고의 주일학교 지도자인
빈센트로부터 시작되어 드디어 통일 공과가 출판되기에 이른다. 이어서
1914년에는 국제공과위원회가 조직되어 통일된 교과 과정을
개정하였다. 1925년에는 성경을 중심으로 한 계단 공과가 만들어져
1933년 출판되어 있다.
최근의 위험한 현상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계단공과의 성립 과정에 과거 신앙고백서의
풍부한 내용이 충분하게 녹아 들어가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어떤 곳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중심 축이 아무렇게나
흔들리게 되었다. 따라서 올바른 전통의 전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지고, 잡다한 사상들이 스며들게 되었다. 이것은
장기적으로도 교회에 해악을 끼치게 되었다. 바른 기준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교회 교육 과정을 세우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결정 내리기 어렵게 되고, 이같은 교육 과정을 통해서도 실제로
성도들에게 유익이 없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최근 기존의 교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로운 시도 즉, 나름대로의
교육 과정을 개발한다거나 성령께서 모든 것을 알게 하신다는 용감한
믿음을 가지고 주먹구구식으로 가르치는 사례가 많은데,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감추인 보화를 두고, 이를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고리타분한
내용의 반복이라 여겨 포기하고 갱신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 개념들을 잘 가르칠 수 있겠는지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교회 교육에 있어서 요리문답은 갱신의 대상이 아니라 회복의
대상이다.
참고자료 링크 http://voice21.com/online/35/35_05.htm
황희상 편집장 / joyance@yah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