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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마리

아모스 강해 7

본문 : 아모스 4장 6~13절 말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리실까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항상 형통한 길로 가도록 하실까요, 아니면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매일 힘들게 살아가도록 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분명히 인도하심을 믿습니다만, 또한 그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자세가 올바른 성도의 자세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대하셨고 무엇을 원하고 계셨는지를 살피면서, 아모스서를 통해 우리 시대에 경계를 삼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을 새겨 보도록 합시다.

징계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징계하십니다. 우리가 읽은 구절에서 6∼11절에는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징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기근이 들게 해서 북이스라엘 백성의 생존을 유지시켜줄 양식이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양식은 사람을 육체적으로 보존시키고 유지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것인데, 그 양식을 떨어지게 하고 배고픔이 들게 하셨습니다. 7절에서는 추수하기 석 달 전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어떤 곳은 비를 멈추고 어떤 곳은 비를 오게 하였습니다. 비가 오는 것과 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 중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징계를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은 징계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심판입니다. 9절에서는 어떤 재앙을 주었습니까? 풍재(風災)와 깜부기 재앙을 주셨습니다. 바람으로 인하여 재난이 오게 하셨으며, 또한 곰팡이로 인하여 양식을 제대로 얻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욱 생존의 위협을 준 것입니다. 또 이러한 재앙보다 더욱 무서운 재앙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재앙처럼 북이스라엘에게 재앙을 주신 것입니다. 전염병이 돌고, 칼로 인하여 젊은이가 죽고, 말이 탈취되고, 악취가 나서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어려운 형편을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겪게 하셨습니다 더구나 11절에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지듯이 성읍을 무너뜨리면서, 이스라엘 백성 중 소수만이 생존하도록 하는 무서운 심판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도저히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형편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비참하고 피폐한 생활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재앙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왜 주었을까요? 우리는 6절부터 11절 사이에 반복되는 구절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벗어나 이방인의 세속 정신을 따르고, 이방종교에 젖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방자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생존하기 어려운 징계를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식을 대하는 아비의 심정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삶을 살기 때문에 그들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징계를 행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징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 사랑을 베풀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못하는 경우에, 또는 우리를 신앙으로 단련을 시키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을 허락하실 때가 있고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노력하면 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며 우리가 예상하지도 않은 일들이 발생할 때, 주의 백성은 그 일에 대해 운명을 탓하며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상고하여야 됩니다.
이런 태도가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됩니다. 불신자들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완악하여 집니다. 신에 대하여 막연하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나쁜 일을 당하는 경우에 그 막연한 신의식으로 우상을 섬기게 되거나, 아예 무시하게 되어 자신을 자학하는 길에 빠지게 됩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재앙을 받으면 받을수록 인생의 허무함 속에 젖어 들어서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강퍅할 뿐만 아니라 더욱 더 죄악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을 때, 그 일에 대하여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이런 일로 인하여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게 됩니다.
시편 42∼43편을 봅시다. 시편 기자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와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고 조롱하는,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더구나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가 너무 지나쳐서, 한 시편 기록자도 하나님께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라고 하소연을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그의 마음이 어디서 위로를 받고 있으며 힘을 얻고 있습니까? 43편의 후렴구인 구절을 살펴보면 시편 기자의 경건한 해결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이방인들에 의하여 자신이 낙망할 정도로 조롱을 당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힘이었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우는 듯한 상황으로 느껴졌을 지라도 더욱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은 결코 성도를 홀로 두시는 분이 아님을 확신하며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태도, 즉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깨닫는 태도가 성도의 귀한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무지, 우리의 교만, 우리의 어리석음, 연약함을 일깨우기 위해서 우리의 생활의 어려움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밝힐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사랑하는 자녀가 견고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참된 하나님의 형상의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하여서 우리들에게 더욱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때에 따라서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고난을 잘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도인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실 수 있을까? 과연 나는 구원을 받은 자일까?" 어리석은 우리들은 구원의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을 경홀히 할 때가 많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 믿음을 이 세상의 잠깐이면 사라질 고난으로 인하여 쉽게 평가하고 자신이 편한 길을 선택하여 그 믿음을 값싸게 여겨 하나님을 거부하며, 마음이 완악하여지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계기

우리는 아모스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을 경우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재앙은 지금 우리에게도 나타납니다. 교회가 제대로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어리석음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어려운 고난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가 더욱 신앙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고난을 주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고난이 찾아왔을 경우에 하나님께 피하여야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평안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겪을 수 없는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특히 사망의 지배하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단절이 되는 상황에 이를 때는 예수님께서도 참기 어려운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받는 것이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대하여 순종하셨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고난의 방식이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징계하십니다. 그 징계가 마치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성도에게 주어진 어려움은 그것으로 인하여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에게 더욱 사랑을 베푸시는 내용이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하여 북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하여징계하셨던 것을 또 다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모스 4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담은 기근이나 재난을 북이스라엘은 무시하였고, 하나님에 대하여 오히려 강퍅하게 되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고 더욱 이 방안들이 행하는 종교적인 풍습과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였는데, 이런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시고 다시 경고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무서운 말씀이고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하신 크신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징계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세우고 혼탁한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고난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오늘날 교회에게 무엇으로 다가옵니까? 북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징계가 말씀에서 벗어난 교회에게 향하신 경고로 다가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징계를 베푸십니다. 사랑하시기에 그러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징계를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주신 그리스도로 인한 믿음을 빛나게 드러내시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에 빠져 하나님의 도를 벗어난 북이스라엘과 그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살피면서, 늘 자신의 뜻을 사람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자로 주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 오지 아니 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권형록 목사 / 안산 푸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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