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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투고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의 가슴 가운데
넘치는 감사와 기쁨이 넘쳐
나는 성도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며칠 전 어느 신앙 잡지에
특집으로 실린 예배에 관한
글들을 읽다가, "예배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예배를
제대로 드리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어려운 신학적인
개념이나 어휘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일상
가운데 있는 개념으로 한번 생각해보려 한다. 나 자신의 뒤를
돌아보아도 상당한 횟수의 예배를 드리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을
느끼는가? 만나는가? 기쁨이 넘치는가?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간단히 예배에 있어야 할 두 존재를 생각해 보았다. 예배의 주체는 먼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없다면 예배는 존재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저 자연인이 아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도를
의미한다. 자연인은 하나님을 감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배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무의미 할 것이다.
하나님과 자녀들과의 관계
두 존재 가운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성일 것이다.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인가?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주인이시며, 왕이시며 존재의 의미며 가치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며 범죄한 인간들이다. 우리는 전혀 우리 죄를 변제(辨濟)할
능력이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얻은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감히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다.
아무 대가 없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과 이러한 관계를
가진 존재'임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를 생각할 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영광과 기쁨을 받으시기 원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떠할 때에 가장 영광스럽고, 기뻐 하실까?
나에게는 사내아이가 하나 있다. 내 아들이 어떠할 때 내가 가장 기쁘고
영광스러울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
자식이 학교에서나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그런 자식을 키워낼 수 있었습니까? 하며 부러움을
받는 것만큼 영광스러울 때가 없을 것 같다. 즉 자녀가 훌륭하게 크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영광스러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또한 언제 가장 기쁠까를 생각해 보니, 자식이 나를 아버지로서
신뢰하고 인정해 줄 때 가장 기쁨이 있다. 우리 아이가 어느 날 TV에서
자동차 경주를 하는 것을 보면서 내게 물었다.
"아빠, 아빠는 저 운전하는 사람보다 운전 더 잘하지?"
"아니 저 자동차 레이서 보다 조금 못하지. 저 사람은 직업이 운전이니까
아버지보다 더 잘하겠지."
나는 이렇게 대답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자식이 그만큼 아버지의
능력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물어오는 것에서 나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능력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만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 없다.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로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만큼 그분께 더한 기쁨이 없을 것이다.
예배에서 우리가 드려야 할 가장 중요한 두 요소는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첫 번째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일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예물은 자녀들의 코 묻은 돈 얼마가 아니라, 우리들의 변화된 삶,
곧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삶이 될 것이다.
올바르게 선포되는 말씀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또 한가지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말씀이 바로 전해져야
한다.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전해져야 한다. 인간들의 생각이나
사사로운 감정이나 뜻이 포함되어서는 안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도 안된다. 설교자의 입장이나 상황이나 어떤 외적인 조건도
배제되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 누구를
탓해서가 아니라, 우리 나라 교회에서 설교되어지는 말씀 가운데 심히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윤리
강의 시간인지, 아니면 점쟁이 점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이
얼마나 인간 중심인 설교인지 모른다. 대다수의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전혀 없다고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 교역자, 성도 할 것 없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그것은 설교를 듣는 성도의 마음이 말씀을 받을
믿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매도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말씀 가운데서는 성도의 삶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으며, 넘치는 기쁨도
없을 것이다. 그저 한번 예배 때우고 주일인데 교회 문턱 넘어갔다
왔으니 의무는 다했다, 이제부터는 내 마음 대로다, 하고 산으로 들로
나가는 주일 Church man들이 될 것이다.
설교는 교인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바른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그
말씀 가운데서 우리의 삶을 바르게 지적 받고 회개하고 결단할 때, 우리
삶의 변화가 일어 날 것이다. 이 보다 더 영광스러운 예배가 어디 또
있겠는가?
참된 예배가 드려질 때
예배는 하나님을 진정한 말씀을 통해 만나고, 우리 삶에 변화를 받아
세상 가운데서 사랑으로, 희생으로, 봉사로 기쁨으로 마쳐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예배가 드려질 때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복의 근원이 될
것이며, 울리는 꽹과리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소리 없는
혁명'을 이루게 될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
이광천 / 서대전중앙교회 (kclee@amadeus.etr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