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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팡세

행함이란...

황희상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매우 정상적(?)으로 잘 다닌 편이다. 그래서 대학 들어와서도 버릇처럼 활발한 교회·단체 활동을 했다. 생활의 중심은 언제나 교회였고, 매년 무슨 직함으로든 임역원을 맡곤 했다. 그밖에도 선교 단체 활동을 거쳐 지금 이 잡지 만드는 일에 이르기까지, 내가 생각해도 정말 극성맞게 움직여 온 지난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고작 스물 셋의 어린 나이에 여기저기 아는 사람도 많고 맡은 일도 많고, 그 때문에 유명 인사처럼 날마다 바쁘게 살아가는 중이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살다 보면 사람들의 칭찬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사람들은 '행동으로 보여주어라', '실천하는 삶이 중요하다'와 같은 말들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바쁘게 화려하게 움직이는 나의 모습이 막연히 좋게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은 좋다. 그러나, 그러나 정작 성경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꼭 잘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문제는 이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 말씀이 내게 강하게 다가온 적이 있다. 그래서 '행동하는 믿음, 실천하는 신앙'을 내 자신의 표어로 삼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 볼 겨를은 없었다. 믿음과 행함이 잘 조화되어야 한다는 소리구나, 뭐 이렇게 간단히 생각할 뿐이었다. 성경에서도 언행일치의 미덕을 말하고 있구나, 뭐 이런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열심히 부지런히 움직였다. 입으로 고백한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이 내게 있어서 행함의 의미였다.

조금 더 자라면서, 필자는 '행함'이란 손과 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다. 이 즈음 필자는 김진홍 목사님 같은 분들의 글을 읽으며 도전을 받곤 했다. 한참 비전에 대해 생각한 때도 이 즈음이었다. 실천신학이니 사회 변혁이니 하는 용어의 뜻도 모르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이 기독

교의 핵심이라 생각했다. "기독교는 사회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당시 읽었던 책의 제목이기도 했고 내 중심의 고민이기도 했다.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보겠단 마음에 계속 공부하며 움직이며 해답을 찾았다. 참으로 많은 유익들이 있었다. 점차 움직임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여전히 칭찬도 받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혼자 잘나서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루는 우연히 알게 된 선배 한 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는 처음 만난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한아름 안겨주셨다. 아니, 그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오늘 나눈 대화를 곱씹어 보던 나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늘 그 차분한 목소리는, 칭찬은커녕 무서울 정도로 엄중한 꾸지람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형제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아시지요? 이 일은 정말 제대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떻게 행하느냐 얼마나 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랍니다.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가,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형제님 안에 무엇이 담겨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로 바르게 세워져서, 바야흐로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형제의 사역이 되길 바래요…."

벌써 2년 전이다. 이 날의 대화는 내가 본격적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믿음의 본질인지, 무엇이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행동하게 만드시는 내용물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야말로 모든 행함에 앞서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행함만을 강조하다 보니, 자신이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자신이 지금 바른 코스로 뛰고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아무렇게나 그냥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줄로 생각하니 정말 큰 일이다. 세련된 교회들은 시민단체나 정부기관보다도 오히려 더 훌륭하게 일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며 왕성한 '행동'을 하고 있는 기독교의 모습에서, 그러나 난 차라리 공포를 느낀다. 이것은 본질이 아니다.

언젠가 voice21은 잘 나가던 문화사역 단체 하나를 평가절하 한 적이 있다. 며칠 뒤 서울에서 관계자를 만났다. 그분은 섭섭함을 표하시면서, 그 단체가 얼마나 일을 잘 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글을 그렇게 쓰지 못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죄송하지만 우리 관심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있지 않았다. 주님께서 전하고자 하신 근본적인 메시지가 거기 담겨있지 않다면, 혹은 엉뚱한 것을 담고 있다면, 한 순간에 그들의 모든 '행함'은 '부질없는 짓'이 되어 버릴 것이다.

행함은 소중하다. 그러나 움직이기 전에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행함이란 그저 단순한 Doing이 아니라,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로 인하여 삶의 원리에까지 주님의 방식이 구석구석 체득(體得)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행함이란,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다.          

황희상 / voice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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