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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0

 

 

 

 

 

 

  

■ 특집



부활에 관하여

초대 교회 가장 놀라운 설교는 부활에 관하여 강조하는 대목이다. 초대교회의 설교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과 그의 확실함은 결과적으로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한다는 신앙적 고백(信仰的 告白)이 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설교자들인 목사(牧師)들은 이 세상의 스승들과 달리 구별되었다. 물론 세상에도 다른 의미의 부활은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같은 사건은 그들에게는 한 번도 없었다. 이 세상에는 계절의 변동으로 오는 삼라만상의 싱그러운 봄에 소생하는 초목(草木)과 같은 환생의 모습과 관계된 신화적 설화와 같은 것들이 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봄은 이적의 계절이기에 그렇다. 복음서(福音書)에 기록된 한 사건은 한 사람이 참으로 죽었으나 죽음의 권세를 무찌르고 승리한 사건으로 무덤에서 다시 산 경이로운 사건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이교도들이 말하는 부활설화의 어떤 것과도 유사한 것이 아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똑같은 부활의 열매를 맺게 하는 순차적 서열의 성격이 짙게 나타난 구속적 부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사건과 또 부활이 지닌 개념은 이방세계에서 말하는 어떤 것과도 분명하게 다른 것이다. 이방세계의 모든 것은 죽음의 그늘에 가리운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렇게도 깊고 신묘한 사상과 아름다운 생애가 무(無)에로 귀결해 버린다. 그러나 부활이란 우리 신앙인(信仰人)들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심(核心)이요 소망(所望)인 것이다. 부활은 또 헬라와 히브리 사람들 간에 사상적 구별(思想的 區別)을 긋는 커다란 실재요 관념이다. 헬라인들은 몸은 참생명의 장애물로서 그들은 육체라고 하는 족쇄에서 영혼이 자유케 되는 때를 찾았던 것이다. 헬라인들은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 확신하고 있었으나 부활에 관한 관념에 대해서는 철저히 거부하였다. 사도행전 17:13부터 이어지는 아덴에서의 바울의 설교는 참으로 헬라인들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바울은 헬라인이 족쇄와 속박의 도구에 불과하다 생각하는 사람의 육체의 가치와 영원(永遠)한 보존성(保存性), 부활을 증거하면서 강조할 때에 영원한 감독인 몸에서의 자유가 좌절될 뿐만 아니라 영혼은 영원히 몸 안에 갇혀 살게 될 것이었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바울은 크리스천들의 몸은 다시 살 뿐만 아니라 불가불 오는 세상에서 아주 다르며 영화로운 변화된 몸으로 아주 다른 생명을 누리게 된다고 하여(고전 15:42) 크리스천의 몸의 관념이 이렇게 구별된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구약에서의 부활

구약에서는 부활에 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구약에도 부활사상은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상이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들은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삶의 과제로 돌기시키는 현실적 삶을 치중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부       활교리의 기초를 제공하는 어떤 다른 세계에서 산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어떤 때 민족의 다시 남을 소망으로 하는 민족적 부활소망을 그들이 피력한 적이 있다(겔 37장 참조). 다니엘 12:2에서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하였는데 이 만큼은 명백하게 믿는 자들의 부활을 언급한 대목이며 의인과 악인이 함께 부활할 것도 직시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마지막 행로의 영원한 결과를 직시케 함도 볼 수 있다. 욥기 19:25-27에서 욥의 굳센 신앙고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병들고 부패한 인간 관계(人間 關係)를 벗어나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하는 영생과 연결된 인간의 영원성을 보여준다. 시편 16:10에서 시인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 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는 것은 구약이 신약의 부활사상의 뿌리인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건을 미리 승인하며 예언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 구속하시리로다"(시 49:15) 한 것이다. 선지서들도 부활사상을 간단히 전달하고 있다(사 26:19). 그러나 구약 전체적으로 살피면 부활사상에 대해서는 매우 빈약한 형태로 나타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약에 계시된 부활의 효시오 씨앗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고 오히려 빈약한 기록이지만 영생과 부활에 관한 신앙은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것임을 부인치 못한다 하겠다. 물론 애굽이나 바벨론인들의 인간의 부활사상이 편재해 있었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이 지닌 부활사상과는 전혀 이질적인 것이며 이방세상의 비슷한 사상들을 수용할 만한 혼합적이고 관용한 신앙길계를 지닌 것은 아니다. 히브리인들의 부활사상은 신적 사상에 의존한 것이며 기타 중동길계의 그것은 신화적인 것이며 연륜적 민간 담화의 단면이다. 물론 불교의 윤회설이나 구연의 순환적 환생등이 부활의 하나의 단면인 듯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성경의 계시의 특성과 그리스도 부활의 특수성을 몰이해 한데서 기인한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죽음의 권세와 무덤의 흑암을 죽여버린 영생과 영화로운 부활로서 다시 죽음이 없고 다시 썩음이 없고 부패함이 없는 불가불 영화로운 몸으로 다시 산 구속사역적 부활이며 죽음의 권세를 파쇄한 승리의 부활이다. 기독교의 부활은 성경대로 다시 살아야 한다. 믿음대로 증거되는 부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 성겨의 핵심(核心) 중 하나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응집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인 것이다.

글 : 주현철 목사 / 광주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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