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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1

 

 

 

 

 

 

  

■ 수필


오늘은 우리 할아버지 제삿날이다. 동시에 엄마는 하루종일 일만 하는 날, 오빠들은 하루종일 아빠 눈에 안 띄도록 눈치만 보는 날, 나에게 있어서는 엄마 오빠들을 도와주는 날이다. 어렸을 때 제사는 친척이 모이는 북적거리는 날이었고 모처럼 사촌들과 만나서 노는날 중의 하나였다. 물론 점차 커가면서 제사때마다 우리 집에선 아버지와 오빠들간에 절을 하느냐의 문제로 신경전이 벌어졌는데 아버지는 자식들이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강요하지는 않았다. 사촌들도 다 커서 그들의 일이 바빠지고 그들의 아버지이자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형제인 나의 숙부께서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하게 된 후로는 제사는 다 아버지의 몫이다. 무신론자인 아버지는 예수도 귀신도 모두 믿지 않는다. 당신이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일찍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키고 싶 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무신론자인 아버지와 기독교인인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간의 보이지 않는 골을 더욱 깊게 하는 것 같다.

대학 4년 중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이 수업시간이고 이 수업을 맡고 있는 교수님에 대한 것이다. 나는 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 교수님의 수업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어쩌면 저렇게도 무책임하고 불성실할 수 있을까 였다. 신문에서는 교수평가제가 도입되어 공부를 안 하는 교수들은 헤쳐나가기가 힘들 것이라고 하지만 예외도 있는가 보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의 넥타이는 언제나 유행에 민감하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교수님의 먼지하나 뭍어 있을 것 같지 않게 잘 닦여진 그랜저 승용차는 항상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다. 수업 중에 학생이 빠져나가든 대리출석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욱더 기막힌 것은 시험이다. 공부하나 않고도 컨닝으로 학점을 층분히 채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강의 신청을 한다. 설마 컨닝으로 얼마나 큰 점수를 얻을 수 있겠느냐며 컨닝을 안 하는 바보(?)에 속하는 나는 나중에 학점을 보고 정말 이것은 장난이 아니구나 라는 서글픈 현실을 매번 인정하는 수 밖에 없다.


5월이다. 학교나 광주가 떠들썩 해지는 그날이 다가오면 착찹한 심정이 된다. 돌에 맞아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이 구원해주신 것처럼 그 사람들도 과연 구원해 주실까하는 생각을 한다. 5월, 그날은 늙은이들에게는 한의 역사지만 피 끓는 젊은이들에게는 증오의 역사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증오의 칼을 품고 죽어간다. 뿌리 깊은 불신을 넘어 선 증오. 그 언덕 너머엔 무엇이 존재할까? 나는 그것이 무섭다. 사랑과 관용을 알기 전에 증오를 알아버린 젊은이들. 화면 안에서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심각성을 모르는 듯 한 그들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어느새 그들에게 던질 가장 큰 돌을 찾고 있는 나의 모습 속에서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본다.

글 :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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