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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육체적 죽음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영적 죽음과 그에 대한 구원의 문제로 한차례 소동이 있었던 때가 과거에 있었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 야코부스 알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59-1609)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전체적으로 종교개혁이 마무리를 지어가며 종교개혁에 대한 교리가 거의 체계를 다 잡아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특히 그는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 네덜란드의 당시 상황은 종교적으로는 예정문제에 대해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한참 진행중이었다. 알미니우스는 네덜란드의 우데바티 출신으로서 15세기에 공동생활 형제단에 의해 설립된 성 제롬학교에서 초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친구들의 주선으로 말부르그 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1576년부터 1581년까지는 오렌지의 윌리엄에 의해 건립된 라이덴 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그곳 1회 졸업생이었다. 그는 암스테르담의 길드의 도움으로 바로 유학을 갔고 거기에서 그는 1582년부터 1586년까지 칼뱅의 제자인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 밑에서 공부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행 후 그는 1587년에 네덜란드에 귀국하여 다음 해 목사가 되어 암스테르담에서 15년간 목회자로 일했다. 그는 칼뱅주의(Calvism)에 반대하는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맨처음부터 칼뱅주의에 맞섰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맨처음 칼뱅의 교리를 반대하는 코른헤르트(Coornhert), 1522-90)에 대해 칼뱅의 입장을 변론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일을 하던 도중 그는 코른헤르트의 입장에 동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입장은 칼뱅주의자(Calvinist)들과 두 가지 면에서 큰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하나는 교리문제로 예정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정치적 문제였다. 정치적인 문제는 나쏘의 모리스(Maurice of Nassau, 1587-1625)가 칼뱅주의자들에게 합류하는 바람에 네덜란드가 칼뱅주의자들의 의도대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게 되었고 그에 따라 힘을 얻게된 칼뱅주의자들은 알미니우스의 사상을 판단하기 위해 도르트 교회회의(The synod of dort, 1618-19)를 소집하게 되었다. 이 회의를 통해 알미니우스의 주장은 정죄되고 그에 대한 칼뱅의 5대교리가 정립되게 된다. 알미니우스는 예정 교리에 대해 애매모호한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확실한 것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지만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은혜에 대해 인간이 무엇인가 반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인형같이 하나님이 의지대로만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을 주셔도 구원에 대한 선택권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칼뱅주의자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도 인간의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 교리의 차이는 칼뱅주의의 승리로 돌아갔고 현재의 대다수 교회들은 이것을 신앙하고 있다. 하지만 알미니안주의는 현재까지 여전히 전달되어 오고 있다.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대결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반응을 함에 있어서 그 반응이 하나님의 계획에 영향력의 줄 수 있는가의 문제로 요약된다. 그러나 우리가 믿기로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오늘 현대사회는 뇌사자의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그 문제가 뇌사자의 죽고 사는 데만 있지는 않다.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하여 죽어가는 새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혁명과도 같은 제안이 뇌사자의 사망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이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진정으로 당사자(뇌사자)는 유구무언이다. 자신의 생명을 놓고 본인은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가족과 국가가 인정한 의사와 담당의사가 뇌사자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영적 문제를 인간의 결정과 노력의 문제로 간주하려 든다. 그래서 구원받기 위해 선한 결정을 하려들고 부단히 노력하며 법석을 떤다. 더더욱 우스운 일은 영혼의 문제에 대해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현대의 알미니안들이다. 오늘 현실세계에 뇌사자들이 있듯이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다. 영혼의 문제는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놓여 있다. 우리 인간은 이미 아담 이후로 영적 뇌사자들인 것이다. 우리 영혼에 대한 문제는 이미 우리의 손에서 벗어났고 그 결정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생명을 얻으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연결될 때 뿐이다. 그때만 우리는 진정한 숨을 내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자동판매기가 음료를 내뱉듯이 그저 죄만 짓는 인생들일 뿐이다. 글 : 정석진 전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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