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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글을 시작하면서 우선 수음 또는 자위행위를 자신의 손이나 그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성기를 자극함으로써 성적 흥분을 얻고자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규정하도록 하자.

자위행위는 우리들의 대화 가운데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자위행위는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상한 관계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특별하지도 않은 것이 특별한 대접을 받게되면서, 뭔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자위행위에 대해...20대 초반에 있는 우리 가운데 자위행위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왔다면 둘 중 하나이리라.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심한 충격·고통을 받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가족, 친구, 그리고 이웃관계에서 친밀함과 자존감을 아주 만족스럽게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일게다. 전자의 경우를 흔히 찾기 어려운 것처럼, 후자의 경우 또한 과연 흔하지 않은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까지 성장하면서 자위행위로 인해 개인적으로 괴로워해 본 적이 없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정말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한 친밀한 관계(가족,친구, 혹은 이웃)가 그들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몽정이나 자위행위의 첫경험으로 곤혹스러워할 때 자연스럽게 받아주며,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부모님, 성에 관한 관심이 육체적 성행위로 가지 않고 서로 다르다는 특징들을 인정하며 남다른 열정으로 서로를 알아가며 어느 정도 닮아가는 친구들, 그리고 우리들이 처한 현재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소망 가운데 미래를 격려해주고 힘을 북돋아 주는 이웃 어른들이 그들에게 있었을게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은 위의 좋은 관계가 어느정도 우리의 삶에 있었다 하더라도, 늘 지속될 수는 없는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들 중 대부분이 자위행위로 인한 나름대로의 고충을 갖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자위행위로 인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자위행위는 단순히 성장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생리적 욕구에 의한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여길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요인들이 자위행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할 때 우리는 이 질문을 "어떤 환경과 분위기 혹은 기분에서 자위행위를 하게 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각자에게 나름대로 독특하게 나타날 답변들을 솔직하게 스스로 기도하면서 찾아간다면 자위행위로 인한 고충들을 해결해 가는 첫 단추를 푸는 것이다. 어떤 답변들이 가능할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답은 외로움과 관련된 것이다. 만족할 만한 관계가 없거나 깨어졌을 때, 인생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삶의 흥미와 적절한 동기부여가 부족할 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용납하지 못할 때 등에서 오는 외로움 가운데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자위행위의 습관화이다. 위와 같은 외로움 가운데서 우리를 자극하는 것 중 하나인 성적 욕구인데, 특히 외로울 때는 이 성적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견디기 힘들게 되고, 이로인한 긴장을 해소한다는 생각으로 쉽게 자위행위를 하게된다. 자위행위 역시 다른 외로움으로부터의 탈출구들처럼(술취함, 본드 흡입, 약물복용, 성추행, 변태 성행위 등등) 잠시나마 자신의 외로운 현실을 떠나 환상 세계의 경험을 주기에 그 매력에 빨리게 된다. 그러나 경험자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자위행위를 통하여 우리의 내면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행위는 그 정도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우리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을 더욱 견디기 힘들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자위행위가 끄는 마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이러한 설명이 자위행위의 습관화를 막아내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예서 말 것인가? 또 우리들 중 어떤 이는 "아니, 자위행위가 그렇게 해서는 않될 나쁜 짓인가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내 안에서 차 오르는 성적욕구를 자연스럽게 해소하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정리할 것이 있다. 성장기 과정에서 행해지는 자위행위는 그 자체는 전혀 나쁜 것도, 죄악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2-3세의 어린아이가 자신의 성기를 탐구하는 시기를 거치듯 말이다(물론 어이없게도 그러한 아이들의 행동을 격한 언어와 행동으로 로 제재하는 어른들이 아직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자위행위와 관련된 우리의 내면 세계와의 관계 문제이다. 특히 자위행위가 우리의 외로움과 관련되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공상이며, 그러한 생각들을 실제의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강한 충동이다. 이 정도에 이르면 우리의 자제력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우리의 정상적인 생활에 큰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데, 그 예로는 공부에 흥미를 점점 잃어간다든지, 가족·친구관계를 소홀히하고 혼자의 은폐된 생활을 즐긴다든지, 성적 자극을 유도하는 매체들(잡지, 만화, 소설, 비디오 테잎, 영화 등)을 찾는다든지 등이다.

자신의 성기를 자극하면서 성적 흥분에 이르려는 자위행위를 하는 가운데 떠올리게 되는 상상은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성적 자극을 유도하는 매체들을 보고 들으면서 알게된(이루지 못한 그러나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루고 싶은) 매력적인 이성이다(요즈음은 동성에게 끌리는 이들도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 매력적인 이성 가운데는 가수, 배우, 운동선수 등등 스타군단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경우는 실재하지 않는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의 이성일 수도 있다.

공상 가운데 행해지는 습관화된 자위행위는 그 상상의 성행위를 이루고 싶은 강한 충동을 주는데, 이를 실재로 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쌓이는 불만은 앞으로 닥칠 비행을 예고하는 것이다. 혹 비행에 이르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예를들어 운동을 한다든지, 경건과 거룩을 촉구하는 감동적인 설교를 듣는다든지 등등) 그 욕구와 불만을 풀었다 할지라도 그런 경험들은 우리들의 내면에 남아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환경에서는 신경질적이 된다든지, 움추려든다든지, 말이 많아진다는지, 말을 하고 싶지 않다든지 등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 해로운 영향 가운데 빠뜨리지 않고 싶은 것은 공상으로 행해지는 자위행위는 성경이 지적하는 간음이다는 것이고, 이 영향은 심한 죄책감을 주기도 하며 결혼생활 가운데 이루어지는 부부 간의 아름다운 성행위를 심각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 전 자위행위를 하면서 떠 올리던 공상 속의 대상이 부부의 성행위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자위행위를 금하는 구절을 직접적으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태복음 5:22에서 말씀하신 마음에 품은 생각까지도 간음이라고 하신 말씀과 상관하여 생각할 때, 공상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자위행위는 분명히 성경이 말하는 간음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쾌락을 누리도록 주신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상대방을 위해 섬기는 삶을 살도록 베푸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성행위 역시 상대의 만족을 우선 생각하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이에서 벗어난 것은 성적 학대에(합법적인 혼인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라 할지라도)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공상 가운데 행해지는 자위행위의 습관화를 막을 것인가? 이는 그 정도에 차이가 있겠으나 굉장히 힘든 과정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1)우선은 의지적으로 공상 가운데 자위행위를 하도록 자극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시간과 장소를 피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에로틱한 영화를 보고 난후 저녁 잠자리에 들기전 이런 생각이 엄습해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런 생각이 들 때 혼자 있는 방에서 나와 가족과 대화를 한다든지, 친구와 전화를 한다든지, 가벼운 운동을 한다든지 등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권하고 싶은 것은 그런 영화를 혼자 보지 말 것과 보고 난 후 반드시 그 영화에 관하여 솔직하게 평가 겸 토론하는 시간을 통해 성적인 자극이 내면화 되는 것을 막으라는 것이다. 2)공상 가운데 자위행위를 하도록 자극하는 매체들을 보고 듣는 것을 할 수 있는대로 피하라는 것이다. 진부한 권면일지 모르나, 이것만큼 효과있는 것도 없다. 공상의 자원을 공급하지 않고, 그대신 거룩한 것, 경건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진다면 그 효과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라. 3)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라. 그리고 그 배운 것이 실행되도록 훈련하라. 자위행위는 우리의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 주는 듯 하나 더욱 우리를 외롭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4)우리의 과거의 실수를 되물으며, 우리로 죄의식에 매이게 하는 소리를 솔직하게 우리의 허물을 인정함으로 과감히 물리치라. 사단은 우리가 과거에 행한 자위행위와 그로 인한 우리의 괴로움을 거듭거듭 언급하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우리로 머물 수 없다고 몰아부친다. 우리의 극복하려는 훈련을 조소하며 비난할 수 있다. 그럴때마다 우리의 과거를 부인하거나 피하지 말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동시에 확신을 가지고 주 예수의 은혜가 우리를 새롭게 하였음을 소리내어 선포하라. 우리가 주 안에서 용서받고 참 자유하게 되었음을 말하라. 요한일서 1:9은 우리가 우리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면 신실하신

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우리의 죄악스러운 환경에서 건져내시고 보호하시고 깨끗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습관화된 자위행위를 극복하는 과정은 격렬한 싸움터와도 같은 것이다. 그마만큼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성숙을 위한 이러한 노력은 실패한 것이 아니며, 다만 그 기간이 오래 되었던 것만큼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즉각적인 승리로서가 아니라,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다시 한 번 하도록 격려하시며 용기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자.

이 글은 자위행위와 관련하여 몇가지를 소개한 것에 불과하다.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극복하기 위한 고민과 훈련이 있기를 바라며, 더욱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분야에 성숙한 분들과 열린 대화가 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맺는다.

글 : 이준행 목사 / 초록빛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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