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수필
이야기 하나 교생실습 후 이주일이 지나서야 우리반(적어도 6주 동안은)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울 순 없어도 우리반 아이를 다른 반으로
착각해서 교실에서 쫓아내는 헤프닝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 아이들을 보는 것도 귀찮고 짜증스러웠다. 다음날 있을 연구수업이 걱정되었다. 나의 이런 마음 상태로는 도저히 그들에게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주여! 어찌해야하오리까? 내가 그들을 향하여 가지는 이 마음이 옳지 않음을 제가 아옵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주소서.' 다음날 아침 착잡한 마음으로 거울을 들여다 보던 나는 마음에 다가오는 말씀 한 구절을 붙잡을 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그 언젠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르셨던 바로 그 말. 그렇다. 예수님은 분명 모든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장난기 많고 변덕이 삼한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신 것 뿐아니라, '용납'하라 말씀하신 것이다. "은경아! 어린 아이들이 네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한국 교육의 현실은 여전히 콩나물 시루의 많은 아이들이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47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다가설순 없다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난 우리반 중 두 학생을 선택했다(물론 지극히 주관적일수도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순 없겠지만). 그리고 6월 15일부터 '그들의 일기장'을 따로 준비했다. 하루생활동안 그 아이들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점이나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내 나름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전혀 몰랐다. 수학이라는 과목 때문에 인지적 측면의 지식을 더 강조할 수밖에 없는 한낱 교생의 입장에서 그들의 정의적 측면도 바라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수학을 못하는 것, 또는 공부를 못하는 것이 스스로의 자신감을 꺽어버리지 않길 원했고, 동시에 자신의 게으름으로 공부를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좀 더 세상을 넓게 멀리 바라보길 원했다. 스물셋의 나이에서 열셋의 나이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7월 6일, 교생실습이 끝나던 날. 그들에게 일기장을 전해주며 그들의 편지 한 장 없이 빈 손으로 나와야만 했던 나의 마음은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왜 이럴까? 나의 순수한 의도로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해서 했던 일인데, 아무런 보답도, 감사도 원하지 않았는데...' 이런 나 자신의 위로와 권고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1학년과 2학년, 2년 동안 나와 내 친구를 양육해주셨던 과거의 한 선배님이 생각났다. 2년간의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와 나는 그 선배님을 무척 속상하게 했었다.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고, 성경공부예습은 가뭄에 콩나듯, 성경공부하면서도 틈만 있으면 흐름을 딴 데로 바꾸고 그러면서도 늘 불평만 하고... 그렇게 2년이 지나서 서울로 이사가시게된 그 선배님은 나와 친구에게 공책을 한 권씩 주셨다. 그 공책을 펴든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오래되어 이미 잊어버린 일들, 그에 대한 선배님의 조언들, 타인이 나를 보고 쓴 일기를 접하게 된 것은 한동안 나에게 감동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땐 몰랐다. 그 일기를 쓰며 안타까워 했을 선배님의 마음을. 좀 더 넓은 곳을 바라보길 원했고, 좀 더 큰 믿음의 분량으로 자라나길 원했던 그 선배님의 마음을. 너무나 어리고 철없이만 굴었던 우리들이었기에 더 마음 아팠을 거라는 것을. 이제서야 그 선배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 하다.
그렇다. 난 그 선배님에게 사랑의 빚을 졌었고 이제 우리반 아이인 용운이와 준철이에게 그 사랑의 빚을 갚은 것이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 하셨던 바울의 말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거저 받았기에 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서운하고 슬픈 마음을 위로 받으며 그들에게 말할 수 있다. "용운아, 준철아, 주님의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글 :박은경 |
|
|
Copyright(c) 1997, Voice21. But All right not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