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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오늘은 수요일. 강의시간이 1,2교시면 땡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서 어디를
갈까 친구들과 얘기 끝에 끝내주는 비디오방을 갔다. 친구들 때문에 액션물을
골 이젠 뭐하지? 이대로 그만 교회에 가서 기다리다가 예배 드리자고 하면 싫다고
하겠지? 어휴~ 다음엔 어디를 갈까 기대에 차있는 저 눈들 좀 봐. 큰일이네...
혼자 끙끙대고 있으려니 후배 한 명이 아니나다를까 "오빠 시간도 남았는데
우리 노래방 가서 스트레스 좀 풀어요" 한다. 에고고 그러지 뭐. 우리 넷은 제일
가까운 노래방에 들어갔다. 친구가 익살스런 목소리로 '쿵따리 샤바라'를
부르자 나와 후배들은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며 박수를 쳤다. 후배들도 스스럼
없이 최신곡을 연신 불러댔다. 히햐~ 얘들은 나온지도 얼마 안된 곡들을 어느새
다 외웠네.. 목이 터져라 부르다보니 어느새 예배 시간이 다가왔다. 급하게
교회로 간 덕분에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줄줄히 앉아서 찬송가를 부르면서
한숨을 돌렸다. 찬양대의 찬양에 이어 목사님의 설교가 얼마쯤 흘렀을까.
볼링을 너무 심하게 쳤나? 아님 노래방에서 너무 무리한건가? 몸이 좀
피곤한대.. 속으로 이런 걱정을 하자마자 머리가 아래로 푹 곤두박질 쳤다. 으악,
이게 무슨 챙피람! 맨 앞에 앉아서 졸면 안되는데.. 눈을 돌려 옆을 보니 이런!!
내 친구는 등치 좋은 아저씨의 몸매에 얼굴은 가리고 넉살좋게 주무시고 계시고
후배들 또한 오는 잠을 참아내려고 연신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이윽고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던 예배가 끝났다. 친구와 후배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왠지 발걸음이 무거움을 느꼈다. 휴~ 설교시간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가물가물 하고 놀기는 놀았는데 몸은 일한 것 마냥 무겁기만
하고, 돈은 돈대로 ... 흑흑..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군. 무얼하고 놀까?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뭘하고 놀지?"하고 고민아닌 고민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시대가 많이 변한 만큼 예전에 즐겼던 놀이로는 지금 세대들에게 눈길을
끌 수가 없다. 둥그렇게 모여앉아 게임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점점
없어져 간다. 좀 더 화끈하고, 자극적인 것들, 스트레스를 한순간에 풀어버리길
선호하는 추세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금방 식상해 하며
새로운 것들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한편 놀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대학가의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중에
과소비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학비를 모으기 위해 일하던 학생들은 줄어가고
유흥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크리스천으로서는 '놀만한 곳', '놀 거리'가
없다고 불평이다. 하지만 실제로 크리스천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은 그렇게
구별되어 보이지 않는다. 새신자로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되는 한 형제는 "교회
다니면 나이트에 가서는 안되나요?" 하고 묻는다. 과연 크리스천은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까? 재미없는 크리스천 크리스천이 당황해할 때는 믿지 않는 자들과의 교제에서다. 흔히 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갈등이 생기곤 한다. 대부분의 모임은 술자리에서
시작되고 그 다음은 노래방, 당구장 순서로 이어진다. 어떤 지체들은 그런 곳은
처음부터 안가는 것이 좋다며 피해버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지체들은 담을
쌓고 살지 않는 한 함께 어울릴 수 밖에 없다.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고 그러한
자리에 함께 따라가지만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과연 이게 잘한 일인가
싶어서다. 비록 같이 왔지만 술만 안먹으면 되지, 경건하게 있으면 되지 하고
생각하다 보면 행동에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믿지 않는
친구들로부터 재미없다, 분위기도 못 맞춘다는 등의 핀잔을 받기 일쑤다.
낙인(?) 찍히지 않으려고 조금씩 조금씩 양보하다보면 어느새 죄를 지어버린 것
같다. 어떤 지체들은 그런 사람들과는 상종을 안하는 것이 속 편하다라고
말하겠지만 크리스천은 믿지 않는 자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할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셨다. 죄인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라고 말씀하신다. 믿지 않는 자들을 피하기만
하기보다는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주는 현명함과 적극성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제를 나누는 부분에서도 인정 받도록 노력해야 하며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답게 놀자? '논다'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놀이라고 여기는 것도 다른 사람들은 직업, 취미활동 또는 놀이와는
별개인 스포츠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꼭 해야하는 의무감을
가지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놀이'로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놀이문화를
악용하여 갖가지 폐해를 낳는 경우가 있다. 레져활동을 넘어서서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잡아 가는 볼링이나 당구를 보면 그것 자체로 기쁨을 얻거나
건강의 유익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내기를 걸고 돈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다못해 야구경기를 비롯한 각종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도
이길 것이라 생각되는 팀에 돈을 거는 도박성을 찾아볼 수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자주 찾는 오락실을 보자. 정신없이 손을 놀리는
사람들의 정신은 온통 그곳에 쏟아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잊어버린다. 도박성이 있는 것들의 특징은 마약과 같아서 헤어 나오기
힘들고 점점 더 큰 돈을 걸게 된다. 한 기독잡지에서는 교회 안에도 도박성이
있는 놀이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것으로 주일학교에서의 달란트 시장,
상품을 내 건 전도 시상, 청소년들의 사다리타기(사다리를 그려서 그 선을
따라가 걸린 금액을 내는 게임) 등을 꼬집고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물질을 사랑함으로 인해 많은 시험을
겪게 되고 끝내는 그 올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서울의 모교회는 교회
청소년들이 나쁜 환경에서 놀지 않게 하려고 당구시설이나 오락실을 교회 내에
설치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선하게 창조하셨다. 창조 하실 때에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셨듯이 영광받기 위하여 만드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습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들인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때로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요즘은
정서함양보다는 상업성이 짙어져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이 크다. 어떤
지체는 예전에는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던 선정적인 영화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비판적으로 보여지게 됐다고 한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한 편의
영화에서도 믿지않는 자들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
산재해 있는 문화들을 영적안목으로 바라본다면 놀이문화 또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놀이문화 고찰 크리스천이 믿지 않는 자들과 같은 장소, 같은 놀이로 시간을 보내며 고민하게 만드는 큰 요인은 바로 크리스천들에게 알맞는 놀이문화와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1년에 2번 있는 수련회를 통하여 교제를 나눈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정시간일 뿐이다. 보다 장기적인 프로그램이 없고 영구적인 놀이 공간이 없다. 영화상영, 가스펠 콘서트 등 문화공간의 장으로 교회를 개방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간다고 한숨만 쉴 것이 아니라 건전한 놀이문화를 위해 교회가 나서야 할 때이다. 우선은 놀이 프로그램을 개발할 전문기관을 양성해야 한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에 필요한 인력과 자금을 조달해 주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기관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하다. 또한 교회가 하나 더 지어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건전한 휴식공간으로 종교서적을 열람해 놓는 Book Cafe나 가스펠을 감상할 수 있는 CCM Cafe와 같은 곳들이 확산되어야 한다. PC 이용자들은 통신을 통하여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하면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방안들이 또 다른 폐해를 낳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하게 만들어졌던 놀이들도 인간이 악한 쪽으로 이끌어 갔기 때문이다. 놀이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하지 못하면 놀이가 경쟁이 되고 도박이 되어버린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엡 5:3)" 절제하고 선별하여서 죄를 짓는 근원을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 나만 즐거우면 그것은 올바른 놀이가 될 수 없다. 서로에게 유익이 되어서 신앙생활에 활력을 줄 수 있는 건전한 놀이문화의 정착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글 : 문지희 기자(voice21@hot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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