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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7

 

 

 



 

 

■수필외로움 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

 

 

 

 

 

 올해도 어김없이 둘이고픈 가을이 왔다. 지치고 더운 여름의 햇볕이 사그러지자 사람들은 그 무더움의 옷을 벗고 신선한 가을냄새를 맡으며 사랑할 대상을 찾아 떠나고 싶어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이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나 역시 그런 인간이다. 내 나이 스물 셋, 그리고 대학 4학년.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대학에서의 마지막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대학 1학년 때의 가을이 생각난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나에게 대학의 첫 가을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팅이니 소개팅이니 애인이니 하는 그때에 난 외로움과 대면하고 있어야 했다. '혼자'라는 생각(사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당시 하나님은 멀고, 외로움은 가까웠다)이 얼마나 나를 쓸쓸하게 했던가? 외로움에 익숙해지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1학년의 가을은 그렇게 저물어 갔고, 외로움은 여전히 나와 공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2학년 가을이 채 오기도 전에 난 가을이 두려웠다. 그러나 누가 가을을 피해가리요! 난 또 가을에 의해 강타 당했고, 외로움은 나의 마음 속을 헤집고 다녔다. '혼자로서의 성장'을 위해 두 번의 가을이 그리도 아팠던가?

3학년 2학기. 그 해 가을은 전공과목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았던 때였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나의 ego는 그런 생각을 눌러버렸다. 절대 가까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외로움이라는 녀석과도 조금씩 친해졌다.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한 가지 기도는 들어주신 것이다. "저에게 이제 '그 사람'을 주옵소서. 그러나 만약, 아직 당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외로움들에 적응할 수 있게 하소서"

이러던 중 난 작년 10월의 언제부터인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수신인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그 수신인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레포트 용지를 준비하고(왜냐하면 편지지는 너무 비싸니까!) 수신인의 이름도 생각했다. "에벤에셀" 이것은 나의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셨다는. 대상 없는 그리움으로 나 자신을 주체하기 힘들 때, 속상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찾아가 말할 사람(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므로)이 없을 때, 아플 때, 시험을 못 봤을 때, 기뻤을 때 난 늘 '에벤에셀'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 속에는 나와 하나님과 '그'가 있었다. '에벤에셀'은 또 하나의 '나'이기도 했고, 친구였고, 동역자였다. 때론 그 편지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시위가 들어있기도 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린 마음에 동역자를 달라고 때를 쓰는…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혼자라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대견스러운 반면 두렵기도 하다. '둘'이라는,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영원히 거부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물론 혼자가 불행하다고 말하는 건 결코 아니다)에서 그러하며, 혼자라는 것에 길들여져 남을 돌아보지 못할까와 그렇다. 지금은 하나님께 불평하지도 조르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적합한 때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실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나의 영적 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젠 알 것 같다. 아직 내가 혼자인 이유를…,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로 하여금 주님과만 있게 해주신 것을…. 이제는 외로움보다 하나님이 더 가깝다.

글 :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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