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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8

 

 

 

 

 

 

■팡세

내게 거짓말을 해 봐


'문학의 해'를 한 달 남겨두고문인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젊은 문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국내외 문인 일 천명을 목표로 서명 작업을 펼치는 등, 집단 실력 행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말, 장정일씨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 봐>가 음란물 판정을 받고, 이를 출간한 '김영사'김영범 대표가 구속되면서,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예의 지루한 공방이 또다시 치열한 접전에 들어간 까닭이다.

문인들은 성명서를 통해 '개방적 상상력과 창조·도전의 정신이 중대한 위기에 처했음을 선언'하였다. 또 이들은 장정일씨의 입장을 빌어 이번 당국의 처사를 '문화적 자폭 행위'라고 규정한다. 혹자는 최근 영화 사전심의가 위헌 판정을 받아 사실상 외설 시비가 발생할 여지도차 없어지게 된 점을 들며, 예술 장르간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인들의 움직임은 꼭 장정일씨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영화계, 가요계 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심화된 정부 당국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사법처리 한파'를 더이상 앉아서 견딜 수 없다는 뜻이리라.

 

일면 타당한 장정일의 변명!?

장정일씨가 주간지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을 읽어보면 그의 주장에 선뜻 공감은 안 가더라도 일면 타당한 부분도 있는 것 처럼 느낀다. 그의 글재주 때문인지, 아니면 기사와 함께 왠지 처량하고 불쌍하게(?) 의도적으로 편집된 그의 사진 때문인지…. 아무튼 그는 그의 입장을 구차하게 밝혀야 했고, 조금이나마 문화를 이야기한다는 수많은 국내 저널들은 너도나도 '장정일 죽이기' 혹은 '살리기'에 한마디씩 동참하고 있다. 나 또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는 중이다. 더보이스 31 장정일씨의 불만은 이것이다. 시민단체나 간행물윤리위가 그의 책을 비롯한 사회적 통념에서 어긋난 책들을 비판할 때 늘 쓰는 논리는 이러한 저작물들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인데, 왜 그들은 자꾸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아이들 핑계를 대느냐 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상식 있는 시민단체라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청소년이 읽을거리가 아니다라고 말해야 옳지, 청소년이 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성인이 쓰고 읽을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된다."(시사저널 96.12.5 p.98)

우리나라가 청소년을 과보호하는 사회이고, 우리네 부모들이 문화 영역에서만큼은 아이들에게 나침반적 역할을 해 줄 수 없기에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그의 주장에는 일단 공감한다. 하지만 장정일이 똑같이 범하고 있는 오류도 지적하고 싶다.

그의 작품이 외설·음란물로 판정 받은 직접적 이유는 문학의 이름으로 사회 윤리와 미풍양속의 요구가 허락하는 선을 넘어 선 때문이다. 청소년을 개입시킨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그가 토로한 반박은 그 주장의 옭고 그름 여부를 떠나서 역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왜 서로들 본질을 놓고 싸우기 싫어하는가. 그러한 공방이 끝도 없는 싸움임을 양측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지친 때문인가?

작가는 말세기적 현실과 그 고통을 냉소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 나름대로 사회의 아픔을 안고 고민을 했을 것이며, 이를 작품에 반영한 것일 게다. 그러나 방법이 틀렸고, 더욱이 정도가 지나쳤다. 나의 불만은 이것이다.

결국 나는 장정일 죽이기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음란·퇴폐 문화 제재 운동 단체에도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난 마이클 잭슨 공연 때. 수많은 민간단체 연합, 특히 기독 단체들은 처음에는 본질을 잘 파고드는 듯 했다. 마이클 잭슨의 잘못된 영성과, 그의 음악의 폐해를 들며 국내 공연을 적극 막았었다. 그런데 반대 운동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는지 어느 순간 국내 공연을 허용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었고, 결국 국내 모 주간지에 '반대운동 백기들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싣게 만들었다.

본질을 놓고 그것을 바로 보고 평가하는 문화 개혁 운동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다고 하여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올바로 지적하는 작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장정일씨가 제기한 다소 엉뚱한 불만은 그러나 타락한 문화를 고쳐나갈 사명을 지닌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글 : 황희상 (광주중부교회 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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