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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이 시대의 성역
사과형 담화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교계에, 이홍구 국무총리는 사건 발생 열흘만에 "우리 사회에서 특수한 지위와 역사적 의미를 가진 교회와 사찰이 이번 일로 불편과 아픔을 겪은 데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사과는 고사하고 마치 백화점이 무너지고 나서 주민이 다친 것이 안됐다는 식의 무책임한 대답이다. 정부의 이런 독선적 자세를 김 신부는 대통령의 자신감 상실과 자리에 따르는 교만으로 진단했다. 당시 교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총리 담화는 사과가 아닌 훈계"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으나, 국민적 화해와 일치를 위해 서서히 강경 입장에선 재 조종을 하고 있다.
강 건너 불 보듯 정부와 교계의 관계는 상당 기간 껄끄러운 상태로 남을 듯 하나 장기적 전면전을 피한 것이 개신교에는 안심스러운 듯 하다. 그건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할 것이다. 한국의 개신교는 지난 50년 동안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다. 광복 당시 50만 정도이던 개신교 신자는 1974년 1백 60만 명, 1983년 4백 30만 명, 1990년 약 8백만 명이라는 폭발적 증가세를 계속 했으며 교회 수 역시 5만 5천 개가 넘는 비약적 팽창을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 성장과 함께 한국 개신교는 교단의 분열, 종교적 광신주의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 교단 분열의 악 흐름이 늘 개신교를 사회에 무관심한 그리고 심지어는 같은 교회끼리도 아웅다웅하는 양태를 낳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성소 침탈의 문제도 개신교가 끼어 들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 줄 모른다. 각 교단의 신보들에도 여기에 대한 언급은 일체 찾아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무어라 말하는 것이 옳은지를 알지 못한 채 눈치만 빨라져 왔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겨레21>, <시사저널>, <주간조선> 등의 세상 잡지에서 정의를 추구하며 공의를 알리는 예리한 시선으로 이 사건을 기사화하고 있다. 이번 일로 4개 종단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소문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어쩌다가 개신교가 강 건너 불 구경꾼으로 변했는지는......
교회가 일치를 그러면 천주교는 교구가 하나여서 사회적으로 인정된 '성역 명동성당'을 낳은 것만도 아니다. 일단 한국 개신교가 일치와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내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보다 망령되이 하는 일만을 저지르게 될 뿐이다. 어떤 이들은 한국 개신교 1세기를 뒤돌아 볼 때, 많은 교단의 나뉨이야말로 한국 개신교의 놀라운 진보를 마련한 디딤돌이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교단 분열의 행위야말로 심판의 대상이 아닐까 두렵기만 하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만 하라' 하셨으니 말이다. 최근의 각종 선교단체들도 이젠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교회가 자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여 지금까지 수고하여 왔던 것이 선교단체들이다. 그러나 이젠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고 '나는 쇠하여야겠고 그 분이 흥하여야겠다.' 고 고백한 것처럼 교회, 곧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을 위해 선교단체들의 양보가 또한 선행되어져야 한다. 양육하고 훈련된 젊은이들을 교회로 보내어 교회가 깨어있으며 부흥되는 역사에 일익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한국 교회가 일치와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외의 신학이 매겨준 진보와 보수의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서 공동의 신앙 고백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기존 교회의 형성 과정에서 생긴 모든 인간적이고 비본질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신앙의 경험을 넓게 공유하려는 노력을 함께 이루어야 한다. 진정한 연합 운동을 위해서는 평화, 환경, 정의, 통일된 민족 공동체의 건설 등 미래지향적 과제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과거에 대한 진솔한 회개와 자기 갱신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기구적인 논의보다는 신앙적 결단과 실천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이젠 교회야말로 장로, 목사, 집사라는 말들이 듣기 싫어 죽을 지경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질려하시고 싫어하셔야 할 일인데 우리 인간들끼리 판단하는데 익숙해 있다는 것 우스운 일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타락 후에도 계속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로 인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일은 여전히 이 땅에서 진행되어질 일이다. 알고 보니 우리는 할 일이 참으로 많다. 하나님의 나라, 인류 구원을 위한 도구로 택함을 입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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