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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Voice online No.25

 

 

 

 

 

 

어느 다마고치의 일기

1997년 3월 24일 날씨 구름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나는 오늘 내 인생에 있어서 매우 매우 중요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도 숙명적인 만남으로.

처음에 나는 아주 이상한 곳으로 인도되었다.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는 것으로 보아 지하실인 모양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내내 나는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 같았다. 자상하고 친절해 보이는 언니, 오빠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부지런한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큰 축복처럼 느껴졌다. 나를 방치해서 죽게 만드는 불상사는 없으리란 안도감 때문이었다. 지하실의 쾌쾌한 냄새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이 곳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무 걱정하지마. 여기 있으면 밥도 먹을 수 있고, 앞으로 사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들의 말은 나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오늘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잠이 들 것 같지 않다.


1997년 4월 12일 날씨 맑음

모든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나에게 쏟아 준다. 특히 꼼꼼하게 생긴 편집장 황씨와 넉살좋게 생긴 기자 강씨가 나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준다. 나에게 흥미 있는 일거리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해준다. 매일 매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배꼽을 잡게 만들고, 좋은 말씀으로 나를 배부르게도 해준다. 너무 즐거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일거리가 갑자기 많아질 때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들이다.


1997년 5월 15일 날씨 비

오늘은 심각하게 나의 생존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만 같다. 여유롭게 나를 지켜 봐주던 그들이 조금씩 나에게 무관심하기 시작했다. 지하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두가 기계 앞에 앉아 하루종일 손가락 운동만 하고 있다.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이라고는 고작해야 밥을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뿐이다.

가끔 시간이 날 때면 그들은 바쁘고 정신없다는 말이나 지저구 지저구 해댄다. 얼마나 바쁜지 한번도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매일 슬프고 애처롭게 눈치를 보며,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외로움을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러면 당장 나를 귀찮다고 내팽개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언젠가 사람들의 관심이 아주 끊어져 버리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불안이 엄습해 온다. 근심으로 인해 나는 이제 배도 고프지 않다.


1997년 6월 6일 날씨 흐림

그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때때로 그들은 나를 괴롭히면서 즐거움을 맛보는 것 같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닥파닥 몸부림치는 나를 그들은 유쾌한 듯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가끔 작은 공을 가지고 토닥토닥 놀면서도 나에게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나는 냄새나는 설거지통에서 그들이 나를 찾아 주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가끔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들이 찾아와 나를 즐겁게 해주고 맛있는 것도 준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나를 돌봐주기 위함이 아니다. 어둑어둑한 지하실까지 찾아오는 그 아가씨들은 한결같이 조금도 멋있지 않은 편집장 황씨를 만나러 오는 것이다. 나를 걱정하고 나와 함께 시간을 나누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나는 요즘 잠도 잘 이루지 못한다. 그들은 나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사라지고 나면 그들은 아마도 또 다른 다마고치를 찾겠지. 새롭고 신선하고 더욱 흥미로운.

그들은 내가 괴로움 속에서 죽어 가는 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그들은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 것인지도. 어쩌면 그들은 이것을 마땅하고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것들을 대할 때도 그들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다마고치들이 이 곳에서 고통받게 될 것인가? 마음이 아프다. 불쌍한 수습 다마고치들….



앞의 이야기는 <TheVoice> 식구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수습기자의 신세(?)를, 다마고치에 비유해 상상해 본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인간관계가 개인과 개인 사이에, 혹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건 비극임이 분명하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다마고치는, 버튼을 조작해 먹이를 주고 배설물도 치워 주는 등 지속적인 관심을 쏟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게임기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어린이들이 장삿속에 놀아나고 있다는 이유, 일본에서 들여온 게임기라는 이유 등으로 다마고치의 확산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밖에도 다마고치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더 가지고 있다.

살아 있는 애완동물 대신 전자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자칫 어린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또 혼자서 게임기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은 어린이일수록 내향적인 성격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어린이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을 나누고 인격적인 만남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려 할 수도 있다.

부주의로 인해 다마고치가 죽게 되었을 경우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자신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던 다마고치의 죽음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실감이나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어린이들은 이것이 게임이며, 곧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죽어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한 대상이 다시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충격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버튼 하나의 움직임으로 말이다. 어린이들의 사고와 정서 속에 은연중 이러한 생각이 뿌리내리게 되면 인간관계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마고치를 기르는 사람들 중 일부가 생활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고의적으로 그것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일도 자행한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혹자는 지나친 걱정으로 인한 확대 해석이며 다마고치는 단순한 게임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마고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자체가 아니다. 다마고치에 대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것은, 한갓 기계에 정을 붙일 수밖에 없는 우리 어린이들의 외로운 현실 때문이다. 이런 어린이들에게 건전한 놀이문화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대안 마련에도 미흡한, 교회의 현실을 바라보아야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점점 메말라 가는 우리의 정서와 어린이들의 놀이문화, 더욱 기계적이고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계와 함께 하는 우리임을 생각할 때, 기계와 가까이 지내고 더욱 기계에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아니 우리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히,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잠시 기계에서 눈을 돌려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면, 따뜻한 만남을 갖고 시간을 함께 나누기 원하는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전 인격으로 그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우리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산적해 있는 일들일랑 한 여름 무더위 속에 잠시 접어 두고 말이다.

김후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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