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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29

 

 

 



 

 

커버취재

 

  저기 토끼가 보인다. 저것을 잡으면 오늘 저녁 식사는 해결된다. 뛰자. 토끼가 뛴다. 빠르다. 그러나 잡아야 내가 산다. 우리 가족이 산다. 더 빨리 뛴다. 잡았다. 오늘 저녁 메뉴는 토끼 고기다.

인류 역사와 함께 했던 스포츠. 우리가 원시시대라고 부르는 당시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 스포츠와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삶, 삶이 그대로 스포츠였고 스포츠가 그대로 삶이었던 것이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도구가 되어야 했던 그들은 해결수단의 하나로 스포츠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로 새로운 도구가 개발되자 사람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절대절명의 과제였던 먹고사는 문제가 그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되자 사람들은 다른 삶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즐기자.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이제 쉬면서 하자. 즐기려고 태어난 인생이 아니던가. 배가 불렀으니 이제는 좀 쉬면서 인생을 즐겨보자. 무엇을 해 볼까나. 그래 건강해야 오래 오래 살지. 운동이나 좀 해 볼까."

스포츠가 생활이던 원시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이제 사람들은 즐기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스포츠를 선택했다. 살아남기 위해 뛰었던 그들은 이제 일부러 뛰어야 하고 억지로 뛰어야 한다. 누군가는 뛸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보며 즐기게 된 것이다.

 

본래적인 스포츠의 의미는

'스포츠-1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초기 올림픽의 의미를 기억하는가. 스포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올림픽은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는 거창한 구호로 그치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전쟁의 담까지도 허무는 막강한 것이었다.

당시의 스포츠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스포츠를 통해 심신(心身)을 단련하는 기초적인 것 외에도 갈등과 반목 가운데 있던 세계를 잠시나마 화해하고 평화하게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마저도 올림픽이 개최되는 기간에는 전쟁을 멈추고 경기에 임했던 것이다. 서로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발휘하고 기량을 겨루었다. 스포츠 그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던 때 가능한 것이었다.

스포츠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것을 선한 목적에 이용하는 경우는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포츠는 때때로 성도 간의 교제의 한 방편으로 사용된다. 특히 젊은 청년들의 교제의 수단으로 스포츠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들은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 스포츠를 통해 서로 교제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함께 살을 부비고 땀을 흘림으로 형제요 자매임을 확인하고 즐긴다. 어려운 가운데 서로 돕는 것을 배우며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뜀으로 그들은 하나됨을 잠시나마 맛보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온 축구나 농구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인의 스포츠로 각광 받고 있는 볼링도 이제 교제를 위한 스포츠로 사랑받고 있다. 또 전교인이 함께 하는 체육대회는 누가 잘났는지 못났는지를 관여하지 않는다. 누가 이기고 지고를 문제삼지 않는다. 그저 먹기 위해 뛰었던 원시인들처럼 함께 하니까 그냥 하는 것이다.

이렇게 스포츠는 그 자체로 귀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선한 의지를 나타내도록 창조하신 하나님은 스포츠를 통해서 역시 당신이 영광받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일반은총 영역까지 미치는 이 스포츠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쉼의 기회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더욱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경쟁과 갈등이 끊이질 않는 사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게 한다. 개인의 삶을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사회까지도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자본에 갇힌 스포츠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스포츠 정신은 빛을 잃어갔다. 직접 발로 뛰는 스포츠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삼게 되었다. 스포츠는 레저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어 이제는 그것을 통해 다른 이익을 얻을 수는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는 더 이상 오락물의 하나로만 남아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본주의라는 굴레 속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어떻게 스포츠를 즐길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지 않는다. 스포츠를 통해 이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어볼까 생각한다. 원시시대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스포츠가 지금도,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스포츠-2다행인지 불행인지 많은 사람들은 스포츠가 상업주의로 흐른다는 사실에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 공 한 번 던지는 데 수십 만원을 벌어들인다는 박찬호는 이미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어른까지 우리 국민의 우상이 되어 있다. 발빠른 상업가들은 이미 많은 광고를 통해 박찬호 덕을 톡톡히 보고 있고, 유명 스포츠인의 광고는 이제 자연스럽게 접해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스포츠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면에서는 원시시대와 다르지 않으나 그 본질은 어디로 달아나 버렸는지. 스포츠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이것을 수단화하여 이익을 꾀하려는 사람들의 죄악이 스포츠의 본질을 흐려버리고 만 것이다.

 

선의의 경쟁은 옛 말

좀 더 많은 돈을 벌어보려는 상업가들만이 죄인은 아니다. 스포츠의 의미를 더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선의의 경쟁'을 빙자한 인간의 욕심이다.

인간의 욕심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더 나은 발전을 거듭하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비웃었다. 경쟁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선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욕심을 채워야 한다. 또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켜서도 안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자국의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인정을 베풀어 양보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무능력이다. 어떻게 해서는 이기는 것만이 살 길이다. 서열화 되는 국가 간의 경쟁에서 결코 낙오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얻고 명예를 드높이는 데 혈이 되어 있는 나라들은 스포츠를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다.

축구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지금 우리는 스포츠의 위력이 이렇게 엄청난 것이었나 하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한국과의 경기에서 일본이 패하는 즉시 일본의 감독은 자리를 내 놓아야 했다. 일본에서는 한 스포츠 일간지의 톱기사에 '감독은 활복하라'고 할 정도였다. 또 자살골을 넣었다고 공항에서 총을 맞고 숨진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의 이야기나 승부욕에 추태를 부렸던 타이슨의 에피소드는 단순히 우스갯 소리로 지나쳐 버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섬뜩함마저 안겨준다. 만년 야구의 열풍이 끊이질 않는 우리 사회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스포츠가 이렇게 무서운 무기로 돌변해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스포츠가 상업주의에 발목을 잡히고 개인이나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까지 연루된 것은 그만큼 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 사람들이 스포츠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스포츠가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자칫 인간적이라는 의미를 긍정적인 요소로만 생각하여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으나 그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에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사탄의 교묘한 술수가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인간의 죄된 본성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스포츠는 사람들을 옴짝 달싹 못하게 붙잡아 놓는다. 스포츠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것이 들어갈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전에 우리 나라에서 스포츠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정치적 전략의 하나였다. 군사정권, 독재정권에 반발할 위험을 없애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스포츠를 이용한 것이었다. 정치적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사람들의 관심을 흩트려 놓기 위해 정부는 스포츠를 사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방법은 꽤나 잘 먹혀들어 갔다. 사람들은 스포츠에 정신을 잃고 정치 문제에 대해 금방 무관심해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스포츠는 서로 경쟁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기쁨, 또 그러한 과정들을 보면서 대리경쟁을 통해 기쁨을 맛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잘 맞아 떨어졌다. 승리의 쾌감까지 안겨주는 스포츠는 사람들을 잡아매기 적절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으나 그것도 옛말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제 아무도 그런 것을 가지고 정치나 스포츠를 비난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스포츠가 없이는 살 수 없을만큼 스포츠에 길들여져 있다.

과도한 경쟁, 체면 유지, 살인까지 불사하는 스포츠 정신의 왜곡, 상술이 판치는 스포츠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사탄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에 그렇다.

우상이란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제 가치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스포츠에 부여하신 의미 이상의 것을 부여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 저주 받아야 마땅한 우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스포츠를 살리는 길이다.

글 : 김후지 기자(huj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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