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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

 

 

 

 

 

 

  

두루마리 - 천국대헌장 (팔복)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 5:1)
     

산상 설교 중에서도 마태복음 5장 3-13 절까지를 특별히 '팔복' 또는 '크리스천의 참된 성품'이라 부른다. 여기서 주님은 우리들의 성품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목표의 변화를 원하신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일이 아니라 크리스천들과 교회 자체가 산상 설교의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을 보여주고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오늘 우리의 잘못은 교회가 너무 세속적이며 물질적이며 이기적이라는 데에 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 주신 기준대로 살아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크리스천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성품은 마음의 가난이다. 마음의 가난이란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와 무능력을 발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엄청난 거룩과 영광을 보면서 그 앞에서 죄인이며, 죽음과 진노와 심판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깨달음이 바로 마음의 가난이다. 둘째 가난한 마음은 단순한 마음이다. 복잡하고 계산적인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주장할 수 없는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며 자랑할 것도 주장할 것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 확인될 때 그 영혼은 단순하고 깨끗해지기 시작한다. 셋째 가난한 마음이란 하나님만 의존하고 사는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무능력을 깨달아 영적 파산하는 순간 그의 마음은 가난해져 단순하고 순진해지며, 순종하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이 때 그는 실로 기막힌 심정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애통하는 사람

자기의 심령에 아무 것도 없다고 깨달은 순간 그가 실로 심각하게 느끼는 마음은 애통함이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가난한 마음과 애통하는 마음은 동시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한편, 성경에서 말하는 애통함은 손해를 보거나 속임을 당하거나 이유 없이 피해와 고난을 당했을 때 겪는 세상적인 애통함과 다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인 애통은 자기 안에 있는 죄를 알고, 그 죄의 결과가 심판과 사망이며 거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깨달아 그로 인해 몸부림치며 애통하는 것이다.

요즘 현대인들은 죄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보다 사람들에게 들켰냐 안 들켰냐를 더 중히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크리스천은 자기 안에 있는 죄와 허물을 보고 고통하고 아파할 줄 알아야 하며 더 나아가서 타인의 죄까지도 대신하여 애통할 줄 알아야 한다.

 

온유한 사람

심령의 가난이 우리의 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온유함은 하나님의 거룩에 관한 것이다. 온유의 뿌리는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거룩을 보며 그 분의 영원한 가치를 알고서 은혜와 긍휼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온유한 이는 언제나 자기의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기에 분노, 폭력, 힘이나 복수 따위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의에 대한 갈망이요, 죄로부터 해방 받으려는 욕망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려 하는 최고의 갈망일 수도 있다. 의에 주린 자는 자신의 위선 덩어리를 솔직하게 통찰할 줄 알고,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것에 만족을 찾으며 하나님의 의인 성경 말씀에 전념하는 사람이다. 그는 영적으로 유익치 않고 무디게 하는 것을 단호히 거절할 줄 알며 적극적으로 크리스천의 삶을 가정, 직장과 교회에서 전개하는 이이다. 그리하면 불신자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크리스천에게는 성화의 축복이 내릴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

긍휼은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마음엔 부재하며, 그것은 차고 넘치는 주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며 무한히 용서하시는 마음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누가복음 10장 30-35절)에서 알 수 있듯이 긍휼은 단순한 동정이나 측은한 감정이 아니라, 그 사태를 해결키 위해 자신의 일과 이익을 잊어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긍휼의 신앙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긍휼함을 입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며 긍휼의 옷을 입게 되는 기도를 해야 한다. 특별히 용서할 수 없고, 미운 대상으로 인해 좌절할 때 기도해야 한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

마음의 청결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리적인 완벽, 풍부한 지성과 교양이 청결한 마음의 본질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며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닌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에게 주님의 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 질 수 있는가.

우리는 내적인 마음의 불결을 애통해 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청결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보혈의 능력을 인정하여 성경을 좇아 행해야 한다.

타락한 인간인 아담과 하와, 최초의 살인자 가인 그리고 라멕(가인의 5대 후손)의 살인. 글 후로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죄의 역사로 이루어져 왔다. 이렇게 타락한 우리들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만나다)'는 말은 굉장한 충격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을 청소해 보자. 그리하여 우리를 지배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평화를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라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화평케 하는 사람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다. 그는 평화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시고 평화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평화를 사랑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크리스천에 대한 최대의 사명이자 명령이기도 하다.

화평케 하는 자. 방관자도 고발자도 아니라 둘 사이의 막힌 별을 헐고, 원수 된 것을 폐하고 새 사람으로 지음 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데 있어 더 강렬하고 적극적으로 병든 상황을 치료해야 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사람

예수께서는 고난이 결코 저주이거나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오히려 핍박당함을 통해 영광에 이르며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그냥 핍박이 아닌 의를 위한 핍박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 하심에 유의해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분명한 성경 말씀을 통해 정치적이거나 사상적인 이유 또는 자신의 미련함과 부족함 그리고 광신적 열정이나 선을 행하다 겪게 되는 고난 등이 의를 위한 핍박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로지 예수 때문에 욕을 먹고 핍박받고 온갖 수모와 숙임을 당할 때만이 진정한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천국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살고, 그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존재이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바라보자! 예수님의 방법과 뜻대로 살려 하면 세상은 우리를 핍박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진정한 특권이요, 진정한 축복인 것이다.

 

말씀 : 하용조 목사 (두란노 서원 원장 및 온누리 교회 담임목사)
정리 : 부질없는 소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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