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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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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거리에 묻힌 인간의 생명

그것은 울분을 넘어선 것이었다. 12월호 Focus 기사를 위해 '한국 사회에서 인권의 의미'를 생각하던 작년 11월, 밤늦게 기자의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본지에 북한 기근 소식 등을 알려온 제보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매번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꺼내곤 했는데,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의 상식 밖의 행동을 고발하는 그의 이번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니, 차라리 무언가에 대한 '짜증'에 가까웠다. 그는 자료 제공을 약속했고, 대신 반드시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줄 것을 당부했다.

며칠 뒤 그가 보내준 자료를 받아보고 사건이 '장난이 아님'을 파악한 기자는 일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인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알려야 한다. 그러나 안기부에서 잡아떼면 그 땐 어떻게? 물증도 없이 우리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면 다른 언론들은 뭐라고 하지? 왜 모두들 조용할까. 지금쯤 다들 자료를 받아보았을 텐데.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결국 우리가 해야 하나.'

13인의 탈북식량난민, 베트남 한국대사관 귀순당시시간이 갈수록 답답함만 더해 갔다. 답답함에 모 일간지 사회부장과 통화를 했다. 'ㅂ대사관' 건에 대해 알고 있느냐, 보도할 방침이냐 물었고, 그는 '알고 있다. 그러나 보도는 위(?)에서 정할 문제고, 내가 알 바 아니다'라며 서둘러 통화를 끊었다. 하긴, 그렇겠지….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제보자와 약속한 마당에 보도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그토록 치밀하게 추적하여 감옥에 보낸 언론사도 몸 사리는 마당에, 우리가 나설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인터넷에 올려 봤자 누가 얼마나 볼까도 싶었고, 만에 하나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전해지면 안되니 확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교과서적 논리도 세울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고민만 하다가 결국 시간은 흘렀다. 12월호에는 물론, 인터넷에도 베트남 관련 기사는 전혀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12월 11일, 언론사들이 늦게나마 약속이나 한 듯 내보낸 보도를 보며 솔직히 시원섭섭했다.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그리고 특종을 놓쳤다는 안타까움…. 다음 순간, 기자는 무너지고 말았다. 하나님 앞에 그토록 '간사'한 나의 모습이 비로소 보였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눈앞에 제보자의 얼굴과 탈북식량난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에게는 '생명'이, 나에게는 '기사거리'였다. 그들의 촉급한 구명 요청이, 내겐 '강건너 불'과 다름 아니었다. 그러면서 용기 없는 언론사들을 욕하고 정죄 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차라리 불쌍했다.

새해 첫 커버스토리로 '인권'을 이야기함에는 이처럼 나름대로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인권의 의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가 아닌, 단지 인본주의적인 '인간의 소중함'에 초점을 맞춘 오늘의 세상에 교회가 드디어 경종을 울리게 될 날을 진정 소망하며, 1월호를 드린다.

황희상 기자 / 1월호 커버스토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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