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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돌아보아 서로에게 배우는 신앙, 그 둘은 다같이 하나님의 아들 "학교만 가면 집에 와요. 배가 아프다고 옵니다. 알고 보니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무서워서 학교만 가면 배가 아팠던 겁니다. 집에 오고 싶어서…." 아버지가 말하는 지일이. 그는 그렇게 마음이 여린 소년이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지일이는 배가 아프지 않았단다. 목사와 불량자? 수더분한 인상에 '사람 좋아' 보이는 스물 한 살 청년 박지일. 그를 만난 곳은 전남 광양에 있는 옥곡이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위치한 옥곡. 두 지역의 사투리가 짬뽕 된, 그래서 더 재미있는 독특한 말씨의 마음씨 좋은 지일이. 그러나 그도 한 때 옥곡에서 주먹 깨나 쓰는 불량 학생이었다. 사람들이 공부해야 할 나이라고 말하는 고등학교 시절이 그에게는 주먹 세계에 있어서 전성기였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아버지가 목회자라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아버지와의 갈등, 교회 내의 갈등, 학교에서의 갈등이 그에게 버거운 짐으로 다가왔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학교에서는 아버지가 목사님이란 사실을 숨긴 적이 많았어요. 거짓말을 했죠. 교회에서는 따돌림을 받았어요. 교회에서 소외감을 느낄수록 밖으로 나돌게 되었죠. 제 누나에게 잘 보이려고 잘 해주는 형들 덕분에 더욱 그 곳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누나가 아주 예뻤거든요." 목회자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더 많은 제약들이 따랐고, 오기로 더 나쁜 짓을 하기도 했다는 지일이. 그러나 그는 결국 그 곳에 길이 없음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사소한 싸움이 커져 구치소까지 가게 된 그는 한 달 여의 구치소 생활로 전성기의 막을 내린다. "나쁜 짓을 해보고 나니까 한 가지 깨달음이 생겼어요. 저 같은 것도 하나님께서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 기도원에 갈 기회가 있었고, 정말로 성실한 삶을
살고 싶다고, 착한 아들이 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사랑하는
자매가 있었는데 잘 보이고 싶었어요." "모르는 사이에 변해 있었어요."
"제가 몸이 안 좋아 늘 누워서 책만 보고 살았죠. 좁은 사택에서 아이들이 머무를 곳이 없었어요. 그러니 늘 밖으로만 나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새 변해 버린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목회자의 입장으로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예수 잘 믿으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설교도 곧잘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목회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일이가 나쁜 짓은 하고 다녔지만 대들거나 큰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어요. 가만 보면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성실하고 착했습니다. 그런데 목사 아들이라 생각하니 부족하고 문제가 되었죠. '내가 목사이기 때문에 우리 지일이가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구나' 싶어 목회를 그만두려고도 했어요." 그러나 지금 목사님은 그런 아들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얻으셨단다. 처음엔 모든 것이 지일이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고쳐보려 했지만, 결국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하셨다고. "지일이에게 어려서부터 올바른 신앙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고 봅니다.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는 모습들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면 스스로 알아서 깨달으리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입으로 증거하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그러나 실상 아들은 아버지에게 신앙이라는 걸 배웠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목회는 목사가 하는 게 아니라 목회자 가정이 하는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어려서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생활했어요." 그는 자신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 나간다는 사실, 어렵고 즐거울 때 하나님을 갈급한다는 사실, 그리고 늘 예수님처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라는 것이다. 이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은근히 아들 자랑을 하신다. "지일이에 대해 성도들이 마음에 안 들어하기도 하고 손가락질 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일이는 한 번도 그런 것에 대해 원망하거나 흉본 적이 없었어요. 그 애가 즉흥적이고 인내력이나 절제력이 부족한 게 흠이지만 절대 악한 놈은 못됩니다." 아들의 인사 소리만 듣고도 술을 마셨는지 담배를 피웠는지 알 수 있다는 아버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잘못했다고 엉엉 우는 아들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느냐고 하신다. 지일이를 통해 교회와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오히려 고마워하신다. "교회에서 따돌림당하고 소외 받는 제 아들을 보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약하고 소외 받는 자들을 돌보아야 할 교회가 위로와 평안은커녕 세상과 똑같이 그런 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말이지요.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 잘 믿으면 만사 형통한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 때부터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보이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사랑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백지로 돌아오기란 힘든 일. 지일이에겐 '전성기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다. 술, 담배 등으로 건강이 많이 나빠진 것은 물론, 옛날 습관에 젖어서 습관적으로 나쁜 짓을 하게 될 때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생활은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 중인 그는 매형 회사에서 일을 돕는 착실한 아들이 되어 있다. 그런 지일이를 보면서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꿈을 꾸어 본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 좀 되게, 지일이를 신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그러나 사람이 되어 신학을 하는 것이지 사람이 되라고 신학을 공부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목사님 생각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목사님이 아버지로서 지일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남은 한 학기 잘 마무리하고 자격증 따서 차분히 직장에 다녔으면 하는 것. 물론 지일이의 꿈은 평범하지만은 않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무대 경험이 많은 그는 그의 다분한 끼를 주체하지 못한다. 각설이 타령 70여 곡을 곧잘 외워 부르던 그가 얌전히 직장 생활만 할 위인이 못된다는 것은 아버지도 안다. 지일이에게는 이벤트 회사를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나빠진 건강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그는 이벤트 회사에 대한 꿈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이벤트 회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고 한다. 몸이 나으면 그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를 할 생각도 있다고. 이제 겨우 스물 한 살의 학생일 뿐이지만 그는 사랑에 관한 한 법전(法典)임을 자처한다. 뚝배기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그는 스물 셋에 결혼하는 것이 또 다른 소망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 자신"이라고 대답하는 지일이는 실상 자신을 잘 아끼지 못한다. 그래서 늘 자신을 잡아주고 기도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단다. 꽁꽁 얼었던 땅들이 모처럼의 햇살에 몸을 푼다. 두 부자(父子)를 만나고 돌아오는 광양길이 즐겁다. 따뜻하다. 따스한 부자간의 사랑이 추위에 얼었던 마음을 녹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포근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강하면서도 온화하고 대범하면서도 섬세한, 그래서 편안함을 주는 옥곡의 모습 꼭 그대로다. 지일이와 아버지의 사랑이 꼭 그대로인 것처럼.
김후지 기자(hujee@hot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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