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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2

 

 

 

 

 

 

■팡세


그 진리에 붙들린 삶


복잡한 세상이다. 진정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선인지 혼탁해져 버린 지금의 이 땅.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고, 땅에서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도록 지음 받은 우리에게, 이러한 모습은 차라리 당연한 것이다.

결론부터 꺼내면,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선(最高善)'으로 알고, 그분의 법대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보존하는 분이고, 모든 생명과 모든 선한 것들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진리의 도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피조물 된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이요, 절대적인 원리이다.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참 진리가 무언지 깨달은 후에 누려지는 삶의 개념은 그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 그 삶은 진정 가치 있고, 복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 것이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이 원리를 터득해야 한다.

사실 그러한 참 진리는 신비롭고 무한하여, 타락한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유한(有限)의 존재가 무한(無限)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무한이 아닐 게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 그분 편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우리가 겨우 그 진리의 일부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는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우리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다 하는 것은, 이 땅에서의 삶과 또 영원에서의 삶까지 백퍼센트 뒤바꿔 놓는 전환점임에 틀림없다. 그야말로 대 감격의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칠 일이 아니다. 성경은 성화(聖化)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성도의 삶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 안에서 그저 찬송하고 기도하다가 천국에 가는 것만이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

원리를 터득하면 가변 상황에서 길이 보인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답이 밝히 보인다. 성숙한 신앙인은 인생의 목적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삶을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 거듭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법도를 올바로 준행하며, 진리를 담대히 선포하는 삶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의 법은 너무나 또렷하다. 어떻게 행하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인지 우리는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명확히 알고 있다. 그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다. 세상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비굴한 타협을 하지 않고 올곧게 살아가기를, 이 단순한 진리를, 성경은 정확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답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다. 세상이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답을 확신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게으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이는 진정한 신앙이 될 수 없다. 바른 신앙은 우왕좌왕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타협도 아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장 5절)"

교회에는 나가지만 자신들이 들은 것을 믿고 행하려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왜 믿지 못하느냐, 왜 힘이 없느냐, 이같은 자들이 되지 말라고,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진리에 거하라고.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우리 삶을 경영해 나간다고 하지만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점이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단 하나도, 단 하나도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이것을 오해할 때 우리는 진리의 편에서 멀어진 자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위치에 어느덧 서 있기 쉽다. 그들보다 무엇 하나를 더 가진 것, 그것 역시 은혜로 받은 것임을 어느새 잊어 버리고 마치 자신의 공로로 그리 된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교만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수동적 자세는 곧 불신앙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그 정도에 따라, 우리 삶의 영역에서 세상과 타협치 않고 진리를 바르게 드러내며 사는 것이다. 진리를 드러내고 나는 죽는, 그것이 바로 피조물의 마땅한 바이고, 창조주의 영광만을 나타내는 삶이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황희상 / TheVoice 기자(pulitzer9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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