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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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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의 열심? or 욕심?

 

민수기 32장을 꼼꼼히 읽자. 거기엔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어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너 본격적인 정복 전쟁을 시작하려 할 때, 르우벤과 갓 지파가 요단강 이편의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달라고 모세에게 요구한 사건이 그것이다. 비옥하여 목축 기르기에 적합한 그 땅은, 비록 하나님이 약속하신 요단강 건너의 땅은 아니었을 지라도 그들의 눈에 쏙 드는 정착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사기에 심각한 위해(危害)를 끼치는 일이었다.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았고자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민32:6∼7)"라고 강하게 책망한다. 그들의 요구는 곧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과 다름 아님을 꿰뚫어 본 것이다.

르우벤과 갓 지파의 이기적이고 불신앙적이며 안일한 태도는 오늘날 자기의 일을 구하고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빌2:21)의 불신앙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신앙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인간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눈이 어두워 영적 가나안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의 열심'도 그러한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른 성화의 과정이다. 우리의 종국은 이 땅 어느 곳이 아닌, 주님이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에게 주님의 기준에 합당한 어느 정도의 '수준'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의 신앙 생활을 점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자신의 신앙 '수준'에 관심을 갖는다. 내가 지금 어느 정도의 신앙 생활을 하고 있고, 그것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지를 측정하면서, 거기에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이 보이면 불안해 한다. 자신이 자신의 신앙 생활을 단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칫 '신앙 생활에의 욕심'이 될 수 있다. 엉뚱한 것에 집착하여 정작 바라보아야 할 목표를 놓치는 것이 된다.

성도가 형제와 이웃의 유익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려는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우리보다 더 약한 지체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일을 하다 보면, 자칫 우리에게 보장된 안정적인 신앙 생활이 흐트러지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마치 신앙 생활을 잘못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때도 많다. 그러나 바로 그 '신앙 생활을 잘 해보겠다'는 마음이 요단강 이편의 것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요단강 저편의 것을 볼 수 없도록 방해한다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요단강 이편의 것을 얻기 위해 조건이 있다.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 진실하게 요단강 저편의 것을 소망하는가 하는 것이다.


황희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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