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cus - 사회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들
지난 97년 하반기까지 학원
폭력 사태가 겉잡을 수
없게 증가하자,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이하 <자학운>)'을
앞세우고 검찰이 나섰다.
반년이 지난 지금, 그
실적이 상당히 높은 수치로
나타나자 각계 단체와 자원
봉사자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편 자유로운 사고와 학문의 장이 되어야 할 교육
현장에 검찰의 힘이 지나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운동을 펼치기까지
지난 92년부터 97년까지 학원 내 폭력 사건은 무려 360%나 증가했다. 한
예로 97년 9월까지 총 3만1천8백41명이 학내 폭력 사건으로 처벌되어
지난해 1만8천1백85명보다 두 배 가까운 증가치를 보였다.(1997년 11월
16일자 조선일보 시론 참조) 학교 폭력의 문제가 이같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이로 인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폭력과
이지메에 시달려 가족 전체가 이민 길에 오른다거나, 급우의 시달림에
지쳐 어린 나이에 투신을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이는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일이 아님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검찰에서는 학교 폭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고자 작년 9월 3일부터
13일까지 신고 전화를 마련하고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단 열흘만에
신고 전화는 250여건에 달했다. 이같은 추세는 검찰 측을 고무시켜
범사회적 캠페인까지 시도하게 만들었다.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자학운>의 추진 본부는 검찰 제2차장 검사를 본부장으로, 형사1부장을
부 본부장으로 하고, 소년담당 검사 4명과 일반직원 18명 등 모두
24명으로 구성되어 일을 시작하였다. 검찰은 추진본부 산하에 경찰,
구청, 교육청 직원 등 74명으로 구성된 합동단속반과 검찰 직원 16명으로
이뤄진 기동 단속반 등을 설치하여 학교 폭력 및 학교 주변 유해 환경에
대한 지속적 단속을 펼치는 한편, 전화와 팩스를 통해 신고를 받는 즉시
출동, 강력한 단속을 벌이기로 했다.
각계의 적극적 참여
검찰은 또 해병 전우회와 녹색 어머니회 등 시민 단체와 자원 봉사자를
모집, 학교주변 유해 환경 정화와 청소년 교외 활동 지도에 적극
활용키도 했다. 자원 봉사자의 수는 곧 전국적으로 10만 여명으로
확산되는 등, <자학운>은 사회적으로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기독교계도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난 5월 19일에는 서울
잠실 올림픽 공원 역도 경기장에서 '<자학운> 전국 기독교 대회'를 연 바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개신교 교역자와 신학생, 전국의 교회 청년회와
학생회원들은 학교 내 폭력 문제에 대해 한국 교회 스스로 그 책임을
묻고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학교 폭력과
청소년 비행 문제에 따른 청소년 상담, 비행 예방, 건전 청소년 육성 및
갱생 보호 사업 등을 적극 추진키로 다짐하였다. 한편 보다 정확한
실태조사와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상설기구를 만들기로 결의하기도
했다.(1998.05.19일자 조선일보)
화려한 실적, 학교 폭력의 해결사
이 운동을 통한 검찰의 실적은 대단히 화려한 편. 대검 강력부(임휘윤
검사장)는 5월 13일, '지난 9월 <자학운>을 실시한 이래 지금까지 전국
검찰청별로 6천 2백 여건의 신고 전화를 접수, 이를 해결했다'고
밝혔다.(1998.05.13일자 조선일보) 한편 신고 전화 접수 후 철저한 비밀
보장 및 신속 처리 원칙에 따라 수사 역량을 총동원,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3천 8백 여명의 가출 청소년들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감사와 성원의 편지, 전화가 쇄도하기도
했다. 그 동안 학교 폭력을 신고한 학생 대다수가 신고 후 문제 해결이
안됐거나 오히려 사태만 악화된 경험을 갖고 있었던 데 비하면, 이
운동으로 인한 성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운동에서 특기할 점은, 검찰의 기본 책무인 폭력 범죄
단속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사실. 검찰은 단순한 시민 보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것까지 자임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당연히' 긍정적이다.
자신감 넘치는 검찰, 그러나…
이 같은 평가에 <자학운>을 추진하고 있는 검찰청 본부는 더욱 자신에
찬 표정이다. 김우경(대검찰청 강력과장) 중앙 추진 본부장의 말을
들어보자.
"가장의 실직으로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결식 아동들의 점심을
마련하는가 하면 우범지역 순찰과정에서 강·절도 행각을 벌이던
청소년을 체포하는 등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 학교폭력도 증가세가 두드러지게 둔화되고 있다.… 더 이상
'청소년의 달'이 없었으면 한다. 매일 매일 청소년이 보호되고 그들의
창의성이 보장되며 가정이 화목하여 스스로 가정이 지켜진다면
청소년의 달, 가정의 달을 지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청소년의 달'
필요 없게 하자.' 동아일보 98년 6월 중 '발언대' 기사)"
김과장의 발언을 살펴볼 때 그 바탕에는 여론의 긍정적인 태도와 눈에
보이는 실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김과장의 말처럼
<자학운>의 영향으로 우리 한국 학교들의 창의성이 되살아나고 학교
폭력이 잠잠해질까?
교육의 주도권, 제자리로
지금의 학교는 교사들의 힘만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올바르게 선도할 수
있을 만한 체제가 못된다. 대학 입시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암기 위주, 주입식 교육의 터가 되어 아이들의 인성 하나 돌보기 힘들다.
솔직히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폭력 청소년들을 구속하고 피해를 보던
청소년들을 보호하기도 벅찰 것이다. 더구나 조직화되고 그 수법이
어른들 못지 않은 청소년 폭력을 스승이 나서서 지도하고 처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가히 짐작이 된다.
이런 와중에 검찰이 교육의 역할까지를 자임하고 나섰는데, 우려되는
것은 교육의 현장에 검찰이라는 공권력을 투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또 이에 대한 반응이 모두들 고무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말이다.
모든 학문 탐구가 그러하듯이 교육이란 결국 하나님의 행사 속에 그
질서와 뜻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다. 진리 탐구의 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교육인 것이다.
교육은 당장 실효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국은
교사와 교육계에게 맡겨야 한다. 교사가 스승이 되어 학생들을 제자로서
선도할 수 있는 상황,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성 넘치는 교육 현장을
만들어 주기보다, 국민 안전에 힘써야할 검찰의 힘에 기대려 한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 격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검찰의 기본 전제와 교육계의 기본 전제는 매우 다른 것이다. 검찰이
탈선·폭력 청소년을 체포하는 것은 범죄자를 법의 이름으로 수배하는
것이다. 아직도 군사 정권 시대의 앞 뒤 안 가리고 밀어붙이기 식 버릇을
발견하게 되는 듯 하다. 이것은 종교계도 마찬가지. 그저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힘쓰고, 거기에 어떤 종류의 힘이든 쓸만하다
싶으면 가져다 사용하자는 사고이다.
공권력 앞에 아이들의 폭력이 줄었다고 해서 그것이 선하고 완벽한
환경은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자학운>의 실적에 동참의 박수를
보냈던 교육계와 종교계. 너무 쉽게 결정지은 동참 의사는 아니었는지
숙고해볼 일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이 시대에 교육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고 그 진리를 가르치기란 더욱 힘들어졌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
되어 더욱 씁쓸하다.
정설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