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21 Logo

 Voice21 No.37

 

 

 

 

 

 

  

The Sight - 문화비평

Hollywood




헐리우드 바라보기의 또다른 관점을 제안하며

 

21세기의 엘도라도'. 무슨 뜻이기에 헐리우드를 이렇게 지칭할까. 사전을 보니, 참 그럴 듯하다. 'Eldorado; 아마존 강변에 있다고 상상한 황금의 나라'

헐리우드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황금의 나라요 꿈이 실현되는 유토피아다. 왜?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필름에 담아 커다란 화면으로 재생시켜 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제 영화는 현실과 매우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영화는 미래를 예측하기까지 한다. 현실의 상상력이나 과학 기술 아이디어는 제작자의 창의성에 의해 미리 응용되어 영상화된다. 미국 어느 대학의 생물학 교수의 연구 결과를 아이디어로 삼아 '쥬라기 공원'을 제작, 흥행에 성공한 스필버그가 말하지 않았는가. "이 영화는 상상의 세계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5년, 적어도 10년 후에 실현될 '현실'입니다."

영화의 상상력들이 이제 번번이 현실의 과학으로 드러나, 더 이상 그것을 영화라고 하기에 너무 미안하다.

아, 빠진 것이 하나 있다. 이것만으로 현대인들이 헐리우드를 엘도라도라 부르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그것이 뭘까. 바로 '돈(Money)'이다. 위의 쥬라기 공원은 극장 수입만으로도 7천억을 벌어들였다. 영화의 부가가치만으로도 연간 수익 3천억을 벌어들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찾아가 보자. 부가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원 보존'이 열쇠다. 이 거대한 관광 단지, 즉 테마 파크에서는 첨단 기술로 제작된 볼거리들을 제공한다. 영화 속 그대로의 장면을 관객으로 하여금 체험시켜 준다. 또한 각종 캐릭터 상품을 구비, 판매한다. 관객은 영화에서 얻은 감동이 현실 속에서 벌써 가시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캐릭터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를 통해 영화의 '이미지'를 산다. 그 이미지를 내 곁에 소유하게 된 것이다.

Hollywood이러한 모든 것은 영화 제작자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관객들에게 제공되는 쾌락의 원천도 결국 제작자의 창의성이다. 게다가 서비스 정신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곳 관리자의 말이 일품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뭐든 최고의 수준으로 제공합니다!"

또한 미국은 특수 효과 전문 회사가 발달되어 있다. 영화에 있어 비용을 최소로 줄이고 큰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갈수록 특수 효과가 요구되는 것이 헐리우드 영화의 생리다. '쥬라기 공원'의 DNA를 인간이 상상하던 그대로 형상화시켰던 기술을 제공했던 실리콘 그래픽스 회사가 그 대표적인 예다. 마음속의 무언가를 원하는 대로 화면에서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들의 자신감은 대단한데 이 회사 사장의 한마디로 압축된다.

"당신이 꿈을 꿀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이같은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헐리우드는 곧 유토피아라는 생각이 든다. 요구만 하면 다 실현시켜 주겠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자신감 뒤에는 첨단 컴퓨터 과학 기술과 일부 인간들의 뛰어난 창의성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유토피아의 발전은 참된 의미에서 그다지 기뻐하고 박수 칠만 한 일이 아니다. 그 거대한 유토피아의 점차 불어 가는 몸집은 과학의 미래나 인간의 미래 양쪽 모두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식 과학의 종말

Hollywood앞으로 닥칠 이 유토피아에서의 과학 기술은 오히려 과학자들의 위기를 자초하는 데 한 몫 하게 될 것이다. 과학의 절대 절명의 지위와 가치는 무엇인가. 하나의 진리와도 같은 자연의 대 원칙을 발견하는 데 있다. 그러나 헐리우드에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연구를 거듭하는 과학 활동은 이러한 과학과 그 방향을 달리하는 과학 사조 중 하나. 사실 인간(관객)의 사소한 편리와 편의를 위한 과학의 진보가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실제로 그 속도는 현기증이 날 만큼 엄청나다.

그런데 이 속도, 진보라는 상향 곡선의 엄청난 기울기가 문제된다. 과학에 곧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비관할 만큼 그 발달의 '속도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사실 만유인력이나 상대성 이론 등등의 자연 대 법칙을 발견 한 이래 과학은 더 이상 발견할 것이 없어졌다고 한다. 존 호건의 '과학의 종말'이란 책에 보면, 이같은 첨단 과학의 진보는 곧 '어쩌면 우리의 생애 중에, 혹은 한두 세대 이내에 그 진보가 멎을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고 예상된다.

진보가 극에 달하여 과학의 특정 분야가 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실제적인 보상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헐리우드식 과학 기술 분야에의 투자는 이같은 과학의 어두운 미래를 앞당겨 주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헐리우드의 과학 기술자 식구들의 위와 같은 자신감은, 안타깝지만(?) 공허해지고 만다.

 

인간 본질, "빼먹지 말자?"

헐리우드의 모든 귀결은 인간의 욕구, 쾌락을 충족하는 데 있다. 간간이 내보이는 휴머니즘적 영화도 그 이면에 헐리우드의 상업성이 깔린 가공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상업성이 절대 절명의 목적이기에 삶의 현실적 고민은 헐리우드에 존재치 않는다. 이것은 미국 독립 영화사들도 마찬가지다. 날이 갈수록 내면화, 고립화되어 가는 현대인의 인간 본성을 애써 어루만져 주는 헐리우드. 순간의 웃음과 감정의 자극으로 관객은 자신이 모든 것을 보상받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I can do!"의 의지가 안고 있는 팝콘 마냥 가슴 그득히 차 오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관객은 알아야 한다.

Hollywood헐리우드인들이 그토록 소리치던 "We can do!"가 아무리 "넌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어!"라고 응원하더라도 속지 말자. 인간은 어차피 유한한 존재, 유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슈퍼맨도 초능력자도 '에일리언'의 여주인공도 아니다. 그저 힘없는 서민에다 남들 다 아는 정도의 지식을 가진 동네 아줌마, 이웃 아저씨에 불과하다. 내일 제출할 과제물이 아득하고, 뉴스에서 떠드는 소리가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조차 뚜렷이 알 수 없는 그런 평범한 동네 아가씨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어떤 인간이 되어야 엄청 행복한 인생이 되는지, 아니 왜 그래야 하는지를 도무지 모르는 그런 인간이다. 너무 거창한 설명은 아닐 게다. 이같은 사실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의문들이요, 본질을 묻고 그것을 갈구하는 인간 본성이니 그러하다.

이러한 인간 본성을 깨우치는 본질적 의문을, 헐리우드의 메시지는 자꾸 숨죽이게 한다. 대신 그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만드는 현실을 포장해 주고 외면하게 한다. 그것이 해답인 양…. 이것이 어쩌면 헐리우드라는 유토피아가 가진 가장 큰 허점일 게다. 다양한 사건들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본질을 찾기 힘든 시대,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 누구의 말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직시하기 어렵다. 그러한 시대에 그러한 인간형들을 길들여 무수히 배출하는 악역. 어쩌면 이 시대에 헐리우드가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설 / 본지 편집장

 

 


Copyright(c) 1998, Voice21.net. But All right not reserved.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REVELATION 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