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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팡세
사람들이 직장을 옮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어렵게 생각하는 지
모른다. 자기 가족과 결별하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그보다도 더 엄중하게 생각해야 할 '교회'를 옮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교회관의 빈곤 때문이다.
교회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는 기관이다. 교회 이외에 어디에도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교회를 옮기는 문제나 교회를 나누는 일을 너무나
쉽게 생각한다.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도 다양하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바르게
선포되는가? 또 진리대로 교회가 과연 세워지고 이 시대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이것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커서 사람이
많아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교회, 또는 무조건 집 가까이 있는
교회를 찾아서 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빈약한 교회관을
갖고 있는 교회의 경우에는 교우들의 형편이야 어찌하든지 교회
예배당만 크게 더 크게 짓고자 한다. 그 이유인즉 교회가 커야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이다. 교인들도 교회가 작으면 여러 가지로 간섭을
당하게 되고 또 짐을 지운다고 생각을 한다. 큰 교회를 다닌다는 그것이
스스로가 자랑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교회가 크다고 자랑하는 곳은 한군데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배교의 시대가 주는 고난 속에서 진리를 따라가는 교회들은 크게
칭찬을 받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도 이 시대 대부분의 교인들은 마치
크고 값비싼 차를 타야만 인정을 받는 세대와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교회 건물도 커야 하고 그래서 사람도 많이 모여야 그 교회가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다. 교회에서 직분을 임명할 때도 성경적인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임명하는
것이 아니다. 집사라도 주어야 교회에 열심히 할 터이니까, 또한 헌금을
많이 하게 될 터이니까, 아무런 기준도 없이 임명을 한다. 그리고 주일이
안식하는 날이 아니라 노동일처럼 완전히 녹초가 되게 만들어 버린다.
중요한 것은, 육체도 영혼도 쉼을 얻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왜 주일을
그렇게 하루 종일 여러 일들에 쫓겨서 피로하게 지내야 하는지
안타깝다. 교회는 무엇인가? 성경은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시고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세상에 이처럼 주님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이처럼 영광스러운 기관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회를 참으로 높이 높이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연약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주님이 자기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몸의 지체들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함부로 대해서도 아니 되고, 교회를 사람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다만 교회는 주님의 진리가 이끌어 가시도록
해야 되지 않겠는가? 진정으로 교회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의 교회에 편지할 때, 유대주의자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므로 저들 속에 심어 놓았던 그리스도의 형상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심히 통분해 했다. 그래서 사도는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절)" 하고 말씀을 하신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세우기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로 다시 복음을 분명하게 선포를 하고 있다.
교회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 가야 되지 않겠는가? 주안에서
생명도 생각도 사상도 장성해야 이 시대에 주신 교회의 사명도 잘
감당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1: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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