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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7

 

 

 

 

 

 

  

■ 수필

버스 안에서

"아줌마는 아까침부터 천국, 천국 해싼디(말하는데) 천국이 어디 있다요?"

"하늘나라에 있죠." "아줌마, 글믄 내 말좀 들어보쇼." 버스를 막 탔을땐 이미 논쟁이 시작된 것 같았다. 대충 사태를 짐작해 보건데 운전사 뒤에 서 있던 아줌마가 어떤 아는 사람에게 전도를 하면서 '천국에 소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이 논쟁의 발단임에 틀림없었다. 운전사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한 사람이 지금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살고 있단 말이요. 근데 내일 모레믄 50평짜리 고급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디 그 사람이 지금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초가집을 돈을 들여 고치겄소?" "안 고치죠." "아줌마도 그렇게 생각하시리라. 근데 아줌마 말대로라면 사람이 죽으면 천국가는디 뭐할라고 이 세상에서 더 잘살아 보겠다고 병들면 병원에 간다요? 하나님 믿는 사람은 빨리 죽기를 원해야 되지 않것소?"

운전을 하면서도 차분히 말하는 기사 아저씨의 이러한 질문에 아줌마도 자신의 의견을 이해시키기 위해 열심히 답변을 했다. 버스 안에는 꽤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어떤 한 아주머니가 기독교 신자의 천국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자 나의 예상을 뒤엎고 많은 사람이 호응을 했다. 전라도 표준어를 쓰는 기사 아저씨의 소박한 말투가 서울말씨를 쓰는 아줌마보다는 더욱 호감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아저씨, 예수 믿으셔요?" 아줌마가 물었다. "믿소, 교회도 다니요." "아저씨가 상당히 천국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아저씨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물어보세요." 기사 아저씨의 여러 가지 호기심 어린 질문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지 못하자 아줌마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모두 이 세상에서 잘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요. 만약에 한 가족이 있어서 모두 천국에 갔는디 한 사람만 지옥에 갔다믄 나머지 식구들은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겄소? 아프면 병원에 가고,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것도 다 이 땅에서 오손도손 잘 살라고 하는 것 아니긋소?" 이하 구구절절한 말은 생략한다.

어느 책의 서두 부분엔가 이런 말이 쓰여 있는게 생각났다. 천국에 사는 사람은 지옥을 생각하지 않지만 지옥에서 사는 사람은 매 순간마다 천국을 생각한다고.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핍박의 역사였다. 참으로 암담한 시대였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이 충분히 죽음의 이유가 되었으니까. 며칠전 TV의 어떤 프로그램을 보니 터키에 가면 초기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동굴에 집을 짓고 산 곳이 있는데 그 층수가 지하 20층이라고 하였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크리스마스 즈음에 해주는 기독교 영화에 잘 나타나 있기도 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으리라. 기독교는 그런 수많은 기독인의 고난을 통하여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불쌍한 자라고 바울도 성경에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고난의 의미는 세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그들 자신도 역시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품고 그 모든 고난을 이겼다. 천국을 바라보고 이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그처럼 용감하게 살지 않았을까. 천국이 어떤 자의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더욱더 감사하며 살지 않았을까 등등의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줌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는 좀 회의적인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네요. 이번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거든요. 태워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아줌마 나름대로 내린 결론 같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 였다. 아줌마는 확실히 그리스도인 같은데 아저씨는 아무래도 조리있게 헛점(?)을 잘 찔러서 말하시는 것을 보니 교회를 다니다가 회의론자로 방향을 바꾸신 분 같기도 하고, 좀 색깔이 불분명했다. 그때 아저씨의 자신 만만한 대답. "나 여호와증인 교회 다니는 사람이요. 안녕히 가십쇼." 그럼 그렇지. 어디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버스에 내려서 집에 오는데 분한 생각이 들었다. 이단자의 변론이 믿지 않는 사람들 귀에는 복음을 제치고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 것이었다. 나 자신도 귀가 솔깃 했었으니까 말이다. 나라도 나서서 아줌마가 몰리지 않게 도와주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파고 들었다. 이럴줄 알았다면 평소에 성경공부 열심히 해둘걸... 집에 돌아와서 성경을 여기저기 몇번 뒤져서 어지러운 마음을 달랬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로새서2:8)

김은미/전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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