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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8

 

 

 

 

 

 

  


리틀부다
만일 보수신앙을 가진 크리스천에게 불교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거 보고 나서 믿음이 약해지면 당신이 책임질거야?" 좋다 기꺼이 책임질 수 있다.

영화라는 대중매체의 흡입력, 그것은 실로 대단하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그 안에 있는 관객들 모두를 스크린 속으로 빨아 들인다. 그리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웃어 달라고 때론 울어 달라고 그리고 이 영화처럼 자기들이 제시한 구원의 메시지에 감동해 달라고 설득한다. 1980년대에만 해도 동양을 주제로 한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었다. 1989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동양의 신비를 주제로 한 "마지막 황제"를 흥행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서 서양인들에게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리틀부다"를 통해 또 다시 호기심 자극에 나섰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대단히 실패한 듯 하다.

"리틀부다"는, 라마 도제의 환생을 찾던 중 환생의 후보로 미국 소년과 부탄소년, 소녀 한 명이 각각 지목되고 진짜 환생이 누구냐를 두고 일어나는 일들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스토리 전개 중간 중간에 싯달타의 인생과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하지만 이들 3명의 어린 아이들이 묘사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서구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기존의 헐리우드 영화에서 극치를 이루고 있던 서구 우월주의, 우리는 "파워 오브 원" 이나 "트루 라이즈"에서 역겨울 정도로 느껴졌던 적이 있다. 이것이 이탈리아 영화에까지 내비치고 있음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또한 매끄럽지 못한 스토리 전개와 어눌한 화면 구성이 보는 이들을 다소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엄청난 유용 가치가 있는 듯하다. 먼저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미국인 소년 제시의 그림책을 통해 본 싯달타의 인생을 살펴보자. 왕의 아들로 태어나 고통, 죽음이라는 단어들을 모른 채 청년기에 이르지만 우연한 기회에 성 밖의 세상을 구경하게 된 싯달타는 비로소 고통의 의미와 죽음을 눈으로 보고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게 된다(히9:27). 이로 인해 싯달타는 인생의 허무함(전1:2)으로 번민하다가 고행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끊임없는 고행 끝에 내린 결론으로 중도를 제시한다. 이들 말대로라면 인간은 허무함으로 번민하고 고행의 길에 들어서고, 중도를 깨닫고 다시 환생하고.... 결국 허무함의 반복만이 계속되는 것이다. 즉 인간(싯달타)을 구원자로 제시하고 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확실한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선교의 또 한 가지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한 바 있지만, 영화의 흡입력, 이는 정말로 놀랍다. 세상 사람들의 강팍한 마음을 단 5분도 열기 힘들지 않는가.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한다면 무려 2시간 동안이나 그들을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물론 돈까지 벌어가면서 말이다. 불교영화라는 이유로 관람을 꺼리는 크리스천들이 있다면 과감히 권해주고 싶다. 그 이유는 '예수' 외의 구원의 길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글 : Cn.N
 

Cn.N (Casenoise. Nickelodeon)
Cn.N이란 손이나 옷깃 따위가 마이크에 스치면서 녹음된 잡음을 뜻하는 Casenoise라는 단어와, 초기 '영화 전용 5Cent짜리 극장'이라는 뜻의 Nickelodeon이 합쳐진 것으로, 영화라는 대중매체를 진단하고 토론하여 글을 통해 하나님의 문화를 알리는 참된 잡음을 일으키고자하는 크리스천들의 작은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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