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의 '두고 두고 꺼내보는' 자기소개서


    드리는 말씀


     
    자기소개서를 왜 쓰세요? 자자, 전 자기소개서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기소개서는 내 자신의 역사라구요. 자기 자신의 사고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경험들이 있었는지 잘 정리해두는 것은 혼돈스러운 청소년기의 자아 발견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이 자기소개서는 특수목적고나 실업고 학생들의 진로 및 취업 문제를 상담해주는 커뮤니티에 자기소개서의 모범사례로 채택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정체성과 가치를 잊어버리고, 회사라는 조직체의 부품처럼 자신을 몰아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합니다.

     이제 보여드릴 자기소개서는 약 1년 전 즐거운학교에 입사하기 위해 써두었던 것이고, 여기에 약간 수정을 가한 것입니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만, 나의 고향은 어디이고, 가족사항은 어떠하며, 어디 어디 학교를 나왔다는 식의 자기소개서와는 전혀 다릅니다. 나의 열정, 경험, 그리고 그 속에서 얻었던 나름대로의 관점들을 어필하고 싶었기 때문에 만든 자기소개서입니다.


    나만의 자기소개서

      제가 인터넷과 인연을 맺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약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저는 1995년 6월부터 <voice21>이라는 이름의 월간지 기자 활동을 시작으로 미디어 영역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잡지의 기사가 인터넷에 업로드되기 시작할 때는 정확히 1996년 12월입니다. <voice21>은 인터넷 기독정론지입니다. 당시 교계와 신자들의 낡은 사고방식에 상당한 이슈를 불러일으킨 매체로 평가받은 바 있습니다. 현재 서비스는 계속 되고 있으나 기사 업데이트는 중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터넷에 접속해 보시면(http://voice21.com) 과거 기사들을 확인하실 수는 있습니다.

      말씀 드린대로 <voice21>이 1995년부터 인터넷 잡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때 인터넷은 인터페이스가 무척 까다로웠기 때문이죠. 이렇게 세상을 바꿀 줄은 모를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국내 4대 pc통신망을 통해 기사를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pc통신 상에 <voice21>의 기사 내용을 업로드하고 여기서 독자들과 의견교환을 하고, 통신상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 등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 인터넷 비즈니스 업계에 한창 뜨고 있는 단어인 '커뮤니티'의 원조격으로, pc통신 동호회 활동을 했습니다. 인터넷으로의 발전이 진행되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도 알게 해준 것이 그때의 경험이었습니다.

      1996년은 인터넷 열풍이 한국에서 서서히 진행될 무렵입니다. 그해 12월 인터넷 기독잡지 <voice21>이 웹상에 처음으로 선을 보였습니다. 당시 신문기사에서도 여러 번 떠들썩하게 등장했을 정도로, 웹진이라는 단어조차 만들어지기 이전에 인터넷에 우리 위치를 선점한 것입니다. (국내 웹진 중 한겨레21, 시사저널과 함께 열번째 안에 들었다고 하네요.) 이 즈음, 사람들은 도스창에서 윈도우로 바뀌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터넷 미디어를 운영하게된 저희들은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향후 미래, 인터넷 속에서 벌어지는 일 등등에 대해서도 잡지 내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1997년에는 yahoo와 hotmail을 비롯해 국산 무료 이메일들이 세상을 바꾸어 놓고 있었습니다. pc통신 회사나 거대기업들이 서서히 인터넷으로 진입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네츠고 채널아이 등의 서비스도 이때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들은 '우리 사이트에 사람들 좋아하는 컨텐츠 다 들여놓았으니 너희들은 여기서만 놀아라'는 식의 꽉막힌 인터넷 마인드, 대기업다운 마인드로 가득찬 사이트였습니다. 그 중 LG 채널아이 서비스의 열린사회 라는 코너에 <voice21> 컨텐츠를 CP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voice21>은 내용 면에서 매우 순수하게 유지되는 잡지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자본금이 없어 주식회사란 이름만 없었지 1996년부터 주욱 어떻게 돈을 벌까 고민한 집단입니다. 우리의 사업 아이템은 주로 인터넷 사업이었는데 그 이유는 글을 쓰면서 동시에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는 인터넷이 적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자금 사정은 나날이 나빠져, 결국 1998년엔 <voice21>이 내세운 인터넷 사업 기획안을 들고 정보통신부 지원 조선대 산학협력관에서 자리를 잡고, 자금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습니다. 지금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이해조차 하지 못했던 각종 인터넷 기반 서비스들이었습니다.

      한국 지리정보기술과 함께 제휴해서, 인터넷으로 지도 검색을 해서 해당 건물을 클릭하면 그곳의 홈페이지와 오프라인 사진이 뜨는 가상도시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각종 쇼핑몰이나 부가 서비스들도 함께 말이지요. 그래서 업무 분담이 이뤄졌고, 전 그 때 도시문화웹진인 <herstory>라는 서비스를 기획부터 컨텐츠 제작, 2차원 레이아웃, 3차원 레이아웃, 사이트 운영까지 총괄한 바 있습니다. html 태그와 웹에디터, 홈페이지 제작도 그때 경험한 것입니다.

      이렇듯, 5년여 동안 제가 겪은 경험은 모두 인터넷과 접해 있었습니다.

      1999년엔 캐스타운닷컴이라는 인터넷 방송국을 설립하기 위해 컨텐츠 팀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자체 컨텐츠 구축과 웹뉴스 서비스, 그리고 사이트 인터페이스 관리, 동영상 서비스 부분을 관할했습니다.(웹뉴스는 얼마 전에 사라진 데일리클릭이나 뉴스보이와 동일한 컨셉을 지닌 컨텐츠였습니다.) <voice21>에서 기자로서의 생활, 인터넷 미디어를 운영하는 것을 경험했다면 캐스타운닷컴에서는 무엇보다 팀장으로서 서로 다른 직종과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을 관리하고, 공동의 결과물을 산출해내기까지의 경험을 했던 것이 무척 큰 고마움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 4월 이후, 주식시장의 거품이 한꺼번에 사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투자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어 캐스타운닷컴은 아쉽게도 문을 닫아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광주라는 지역에서 인터넷으로 사업을 벌이는 것은 아직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진출할 수 있게 만들어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또 새로운 분야로 뛰어드는 것은 늘 즐거운 일입니다. 2001년 9월, 공교육 지원 사이트 즐거운학교에 웹기획자로 지원, 입사했습니다.

      즐거운학교는 이제서야 눈길을 끌기 시작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공교육 지원 사이트입니다. 입사 후 곧바로 전국교과모임연합이라는 전국적이고도 산발적으로 운영되어왔던 모임들의 축적된 방대한 자료를 통일성있게 잘 분류, 정리하여 즐거운학교에 안착시키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즐거운학교에서 얻은 것은, 첫째, 교육계의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해 배웠다는 것입니다. 현직 교사들 틈에서 교육계의 제반 문제들과 또 교육의 흐름, 경향성들을 엿보고, 뿐만 아니라 교육 사이트들의 성격과 영향력들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 즐거운학교의 메인 페이지를 관리하면서, 수많은 커뮤니티들과 회사의 여러 가지 사업들을 서비스하기 위해 메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를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중점을 두어야할 것들, 시기적으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판단을 내리는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또한 제게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셋째, 사이트 운영을 하면서 사용자들을 파악하게 되고, 동시에 제휴를 담당하면서 필드 경험을 했습니다. 드디어 온라인의 서비스에 유료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꼭 필요하고 의미있는 컨텐츠를 기획하거나 사이트를 구성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그 동안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제가 혹은 회사에서 발생하는 service를 product화하는 단계로 입문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케팅적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배우고 싶은 관심 분야입니다.

    2001년엔 8월, '위슬런'에 입사했습니다. 위슬런은 EBS교재를 출판하는 메이저급 학습지 회사로서, 학원 프랜차이즈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저는 내년 봄 새로 런칭하는 중등프랜차이즈 학원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사이트를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 학원계는 학부모, 강사, 학생이 이루어가는 집단의 형태는 공교육의 그것과도 비슷하지만, 공교육에 비해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안고 있습니다. 수요는 더 없이 많지만, 긍정적인 평가는 낮은, 아이러니한 구조입니다. 제가 기획한 온라인 모델이, 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구성원들 모두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장이자, 학원계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 방법들이 모색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합니다.

    늘 그래왔듯,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열정적인 주인의식을 가지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나갈 제 자신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에게 투자할 회사를 찾습니다. 그런데 이런 회사는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마치며 - 연봉과 직원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들, 혹은 이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고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연봉의 개념에 대해서 말입니다. 회사 생활을 처음 접했을 때, 전 제 자신을 마치 중세시대 장원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을 거리를 얻었던 농민들처럼 대했습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하루 일하고 하루치 임금을 받는 거래관계로는 회사나 나 자신에게 조금도 이득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연봉을 인건비로 보는 사람들이 많죠? 경영진도 그렇고 직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신뢰하는 직원이라면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연봉은 투자라고 말입니다. 산업화 시대, 자본가들이 공장을 지어 투자 대비 막대한 이득을 보았던 것처럼, 경영진들은 직원에게 투자한 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이득을 받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투자한 대상을 통해 많은 결과물들을 뽑아낼 수 있도록 회사는 그저 지켜 보기만 하면 곤란합니다.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회사의 방향성과 비전들을 대내외에 제시했다면 임직원 모두가 그것을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더 많은 기회들을 직원에게 부여해주어야 합니다.

      회사의 방향성과 비전을 전직원간 일치시키지 못한다면, 혹은 그러한 정보들을 마치 고급정보인양 부하직원들에게 끊임없이 흘려보내지 않고 자기만의 웅덩이에 가둬놓는 사람은 직원 개개인을 부품화시키는, 해악적 존재입니다. 결국 회사가 가열차게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바퀴에 녹이 슬게 만드는 존재란 것입니다.
     직원도 때로는 외면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을 기꺼이 회사의 소모품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투자를 굶年摸 단연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데, 투자금 자체를 당연시하게 생각하고, 그 앉은 자리만 안정적으로 지속되기만을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추호도 외면 당하는 직원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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