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월초 상황

< 기근정보 3 ; 97년 2월초 상황 >


자료수집 시기,장소 및 방법 : 97년 2월14일 밤7시-다음날새벽2시. 연길시내 거주하는 조선족(이00씨) 가정에서 가족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북한주민 1명 직접 인터뷰. 북한주민은 수집자를 흑룡강성에 사는 중국조선족 동포로 인식하고 있음. 수집자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함과 동시에 가족을 위한 식량구입비를 제공하였다. 그는 김정일 생일로 인해 중조국경 근방의 강화된 국경수비가 풀릴것으로 예상되는 2월 26일경 두만강을 건너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감. 기록일: 97.2.15일. 수집자 : 통일강냉이 k


* 접촉자 신상 및 상태

김00(안동김씨라는 것만 밝히고 나머지는 알리기 원치 않음. 남. 58세. 키 1미터 55센티정도) : 현재 양강도 혜산시 거주, 중국에서 살다 1962년 북한으로 들어감. 북한에서 대학을 다니던중 주체사상만을 가르쳐서 더 이상 배울것이 없다는 회의와 판단때문에 3학년때 자퇴 하였다고 함. 중국에서 건너간 연안파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함. 단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투철한 애정을 견지하고 있음. 가족은 부인과 4형제(큰아들 올해나이 32세)와 손자 2명이 있음. 큰아들외 다른 아들들은 모두 대학에 다니던중 식량난으로 집에 돌아와 있다고 함. 수집자를 만나서 끝까지 의심을 풀지 못하고, 음식을 먹으며 말을 하던 도중에도 계속해서 “내말이 밖으로 나가면 나는 죽는다”며 계속해서 다짐을 받았다. 또 스스로 좌절한듯 “나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하며 긴장을 품고 있었다. 양식구할 돈을 주자 그돈을 받고도 마지막 돌아갈때가 되어서야 아무런 조건없이 자신이 도움을 받은것을 알고, “대화도중에도 혹시 자신을 체포하면 치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토로하였다.


* 증언 내용

내 목숨은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아들대도 기대하지 못하고, 손자들이 불쌍해서 식량을 구하러 두만강을 건넜다. 97년 2월 1일날 혜산을 출발하여 5일동안 백두산 줄기를 타고 북한쪽 변경을 240키로 걷는 강행군을 하였다. 눈이 대단히 많이 와서 애를 많이 먹었다. 김정일 생일 때문에 변경지역에 인민군 6개사단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탈출을 막기위해 3중의 인간장벽을 쳐 놓았는데, 인민군들이 100미터 간격으로 땅굴 잠복초소를 만들어 놓고 지키고 있다. 계속해서 강가변경을 걷다가 기회를 엿보던 중 ‘화룡 로과’(중국지명)쪽에서 두만강을 건너는 것에 성공하였다. 돌아갈 때는 올때 보아둔 다른 지점을 통해 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같은 지점으로 건너면 내가 탈출할때 강 얼음 위를 통과하는 것을 보고 다시 기다릴 병사들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혜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어서 이제 더 이상 말로 표현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나이 올해 58세인데, 작년과 제작년 그리고 올해 들어서 내 또래 친구들은 이미 모두 죽었다. 유일하게 나만 살아 남았다. 모두들 병들어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다 굶어서 죽었다. 어린아이들이 수백명씩 기차 역전마다 떠돌고 있다. 부모들이 먹여 살릴 수 없으니 역전에다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달아나 버린다. 각 역 건물마다 하룻 밤에 수백명씩의 어린이들이 잠을 잔다. 이들은 주로 도둑질을 하거나 거지질을 해서 먹고 사는데, 그래도 위계질서가 세워져 강한 아이들이 약한 아이들을 서로 돕고 보살피는 모습들도 보인다. 그러나 끔직하다. 이번(97년) 1월 초 함경남도 단천에 갔었다. 나는 고급 용접기술자라 용접할 일이 있어서 기차역에 갔었는데 날씨가 매우 추웠다. 당시 온도가 영하 30도 가까이 떨어진 때였다. 역전에서 먹고 자던 어린아이들 50여명이 얼어서 죽었다. 실은 얼고 굶어 죽은 것이다. 나는 그 아이들 시체가 들려 나가는 것을 직접 보았다.

북한내에서 지금 유일한 교통수단은 기차밖에 없다. 기름이 없어서 일체의 자동차 운행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이용하느라 기차 내부는 가관이 아니다. 어찌나 많이 타는지 기차 지붕과 문에 매달려 갈 지경이다. 기차 안에 탄 어린이, 노인, 여자들은 사람에 깔려 숨도 쉬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너무나 불쌍한 형편이다. 기차 유리창은 물론 없고, 밤에도 전등불도 들어오지 않는다. 기차도 부품이 없어서 고장이 너무 잦고 도중에 전기공급이 끊어져서 멎는 경우가 너무 많다. 북한 내부에서 기차타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보통 10일이 걸린다. 기차 부품이 없어서 기차가 복선으로 오가지 못하고 이쪽 저쪽을 오가며 한대가 도착하면 도착한 차에서 부품을 빼내어 갈아 끼운 다음 새차가 출발하는 식으로 운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97년 1월 중순 혜산선에서 기차가 중간의 가파른 고갯길(고개이름을 알려주었는데 수집자가 잊어먹음)에서 브레이크 파열로 전복되었는데 대부부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 사람들이 기차 가득 메어터지게 탄 상태에서 사고가 나서 더욱 처참했다. 시체들을 사고현장 주변에 길게 진열해 놓았는데 누구인지 신원확인을 할 수 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식량을 구하러 멀리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먼지역으로 갈때는 일부러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지역을 이탈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은 사실이다. 혜산에서도 그런일이 있고, 내가 두만강변을 따라오다가 머물렀던 곳 에서도 그런 사건이 많이 있었다. 사람잡아 먹은 사건이 생기면 안전부에서 조사하여 사람고기 먹은 사람들은 모두 잡아들였다. 사람고기 맛을 한번 본 사람은 다시 먹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잡아 먹은 사람을 붙잡으면 그 사건이 채 마무리 되기도 전에 또 다른 곳에서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인육먹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안전부 사람들이 잡아들인다고 해서 이런 현상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배가고파서 어린손자를 잡아서 가마솥에다 넣고 삶아 먹은 사건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알고 있다. 사람잡아 먹는 것은 거짓말 같지만 틀림 없는 사실이다.

더이상 조국(북한)은 희망이 없다. 내가 가장 심각히 생각하는 것은 조국이 지금 당장에 굶주리는 문제가 아니다. 치명적인 문제는 ‘노동의 의지의 상실’에 있다. 인민들 모두가 노동할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체제다. 따라서 이 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더이상 희망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