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3월, 4월
상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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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정보 5 ; 97년 3,4월 상황 >
수집시기.장소.방법 : 97년 3월 28일-4월 8일,
연길시 및 남평(두만강접경마을). 북한과
밀무역하는 중국조선족 2명, 식량을 구하러
탈북한 북한인 3명과 인터뷰. 기록일 97년 4월10일.
수집자 ; 통일강냉이 k.
1) 조선족
밀무역자 2명과의 인터뷰 - 이들은 중국변경의 남평과 맞은편인
북한의 함경북도 무산시 지역을 오가며 밀무역을
하는 사람들로, 이들이 지나다니는 북한
초소명은 무산시 지구의 ‘00 초소’.
우리는 96년 한해동안 18번을 불법 월경하여
무산시에 다녀왔다. 북한군 병사에게 쌀과
물자를 주고, 중국변방 부대원에게도 돈을 주어
양쪽의 묵인을 받은 상태에서 활동한다. 이
초소에는 여러개의 밀수팀이 통과 하는데 우리가
통과하는 경우 약 30분-1시간 정도의 시간을
주는데, 이때는 짐을 나르느라 양쪽 국경사이의
강을 오가는 사람들이 개미떼 처럼 부산하다.
송이버섯의 경우 가져오면 보통 100배 장사가
된다. 북한병사들은 북한 여자를 데리고
건너오는 것도 묵인해 준다. 북한변방부대의
경우 요즘은 식량자급 마저 자체조달 해결해야
할 상황이어서 돈과 쌀만 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준다. 지난해 한국인 골동품 상인을 데리고
들어가 1주일을 무산시에서 함께 체류한 적도
있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내가 말해도 당신들은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다 말하지는 않겠다.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예를들면
종자마저도 바닥이 났다. 감자를 받에
심어놓고도 바로 다음날 가서 파먹고 마는
정도다. 소나무 껍질을 하도 많이 벗겨서
작년부터 정부에서는 소나무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껍질을 벗겨먹더라도 한쪽부분만
벗겨먹으라고 감시원을 배치했다. 소나무 껍질도
이제는 아래부분은 다 벗겨먹어서 윗 부분을
먹어야 하는데 너무 굶어서 힘이 없는 사람은
나무에 조차 오를 수 없어 이마저 못 먹는
형편이다. 무산시를 걷는데 사람이 비틀거리기에
대낮부터 술먹어 팔자 좋다고 생각했는데,
다가가 보니 못먹어서 힘없어 그런 것이었다. 또
강냉이 옥수수 몇 꼭지를 한 아주머니가
길가에서 팔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아저씨가
달려들어 옥수수 한 꼭지를 훔쳐서 달아났다.
그런데 기막힌 일은 그 다음부터 였다. 훔친
아저씨가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는 하는데
얼마나 힘이 없던지 정면으로 똑바로 달리기를
하지 못하고 옆으로 달리는 것이었다. 옥수수를
팔고있던 아주머니가 달려가 그 남자의 뒷덜미를
잡고 동댕이 치자 풀석 넘어졌는데 그 아저씨는
사타구니 밑에다 옥수수를 넣고 안 빼앗길려고
안간힘을 다. 아주머니가 옥수수 꼭지 가운데를
잡고 잡아당기자 옥수수 꼭지 가운데가
부러졌는데 이때 알맹이 두세개가 빠져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옥수수를 빼앗긴 아저씨는
흙바닥에 떨어진 알맹이 몇개를 다리로
살짝가리고 있다가 아주머니가 간 후 정신없이
주워먹었다. 또 한번은 빵을 먹고 길을 걷는데
어린아이 열한명이 입술에 있는 빵을 훔쳐서
달아나다. 역전에서 술을 먹고 있는데 6살쯤 되
보이는 아이가 그것을 바라보는 눈 초리가
너무나 간절했다.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술과
안주로 산 오징어 한 마리를 주었더니 옆에 앉자
마자 정신없이 먹었다. 다 먹고나서 일어나
걸어가는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정말 그 아이는 술맛을 알고 먹는 것이 아니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 아이 나이를
나중에 물어보았는데 11살이라고 했다. 북한
아가씨들도 북한병사들에게 돈 주고 데려올 수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민감한 문제라 더
자세히 이야기 할 수 없다. - 이들이 말한
북한처녀 매매거래 사실을 확인키 위해 다른
사람들을 시켜 모르게 접근하여 2명의 북한
아가씨를 샀다. 사실확인 성공함.
2) 함북 00에서 온
000씨(남. 31세) 인터뷰
94년도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월경하였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경험이 있었다. 그때
돌아갔다가 회령시내에서 내 옷 차림이 너무
좋았던 것이 의심받아 안전부에 붙잡혔다. 00안전부로
이송되어 심문 받던 중 총 개머리 판으로 머리를
심하게 맞았다. 그 후휴증으로 오른쪽 귀가 멀고
뇌에 이상이 생겨 언어 및 신경장애가
발생하였다. 그 당시에도 배가 너무 고파서
중국에 있는 친척집에 가면 좀더 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강을 헤엄쳐 건넜다.
하지만 이번(96년 8월)에는 배고픔이 아니라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강을 헤엄쳐 건넜다. 삼합
해관 다리 바로 밑을 통과해서 건넜다.
옆집 아저씨는 매우 건강했는데 8일동안 내리
굶어서 죽었다. 물론 그 전 부터도 영양실조에
시달린 것은 당연하다. 죽기 전날 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옥수수 한 주먹만 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어떤 집도 그에게 줄 만한 양식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그집에 가 보았더니 죽어 있었다.
또다른 옆집 아주머니는 96년 1월 행불되었는데
얼마 후 과수원에서 발견 되었다. 누군가가 다
뜯어먹어서 얼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다. 옷
속의 신분증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또
우리시내에서 어린아이를 잡아서 죽을 쑤어 판
할머니가 붙잡혀서 처형 당했다. 그 할머니가
파는 죽이 맛있다는 소문이 났다. 어느날
할머니에게 빚을 준 동네 사람 2명이 빚 받으러
할머니 집엘 찾아 갔다가 부엌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실랑이 도중 한 아저씨가 넘어지면서
솥 뚜껑을 밀치게 되었는데 그안에서 어린아이
머리와 손목 2개가 삶아지고 있었다. 한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한 아저씨는 구토를
하면서 겨우 그 집을 기어나와 신고를 해
붙잡혔다.
내가 사는 마을 규모 700세대인데 한 가정당
평균가족 수 3-4명이다. 이렇게 보면 총인구는 2천사오백명
정도 되는데 내가 떠나던 당시(96년8월) 하루 평균
굶어서 죽어나간 사람이 3명이상 이었다(계산해
보면 이 한 마을에서만 한달에 100여명이 굶어
죽는셈). 나도 5일을 연거푸 굶었다. 너무 배가
고파 친구들 집마다 돌아 다녔는데 아무도 죽
한사발 주지 않았다. 더이상 다니자니 친구들과
의리가 상할 것 같고, 다들 죽기 일보직전이라
친구고 뭐고 다 없었다. 더이상 견딜 수 가
없어서 아버지에게 내가 없어지면 중국 간 줄
알라고 말한다음 그날로 집을 떠났다. 나는
우리집 형제가 다 죽더라도 대를 잇기 위하여
탈출했다.
중국에 온 후 혹시 붙들려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용정시 주변 산골마을
농가에서 일을 도와주며 살았다. 그 집에서는
사냥개 네마리가 있었다. 그 집에 처음
도착했을때 개가 쌀밥 누릉지를 먹고 생선고기
국물을 먹는 것을 보고 가족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중국에서는 개도 잇밥을 먹는데
집에서는 아버지가 이미 굶어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고개를 떨구며 말을 멈춘채 소리없이
운다). 그런데 이집 할아버지가 자꾸 나에게 나쁜
일을 시켰다. 말을 안 들으면 신고해 붙들어 가게
한다고 위협하며 이번 가을(96년 10월)에는 남의
집 호박을 도둑질 해오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또
한번은 북한 회령에서 아가씨를 훔쳐오라고 하여
다시 북한으로 월경하여 회령시내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변경수비대가 불빛을 비추며
순찰을 돌았는데 간신히 몸을 숨겼다가 빠른
달리기로 도망쳐 나왔다.
소나무 껍질로 만든 송진떡을 먹고 석탄가루를
먹기도 했다. 그럴때면 나무 먹은 것이 막대기가
되어 항문이 찢어져 피가 나오고 정말 죽을
지경이 된다. 하루 세끼를 전부 다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마도 70%는 될 것이다(수집자가 정말
세끼를 전부 다 먹지 못하는가 라고 확인 질문을
했더니 ‘그렇다’고 재확인)
3) 혜산과 무산에서
탈출해 온 북한 아가씨 2명을 소문 확인차 사다.
4월 1일 수집자는 연길시 공원에서 한00신문
기자들과 함께 사실확인을 위해 북한처녀 2명을
사는데 성공했다. 우리에게 북한여성들은 판
사람들은 북한과 밀무역 하는 조선족 들이었는데
1명당 인민페 1만원(한화110만원)을 지불했다.
협상과정에서 이들은 이전에도 적어도 20여명
정도를 팔아넘긴 것으로 추측 할 수 있었다.
거래가 끝난 이후 더 사겠느냐는 제의가 또다시
들어왔다. 5섯명의 북한 처녀가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남평 등 중조국경 근방에서 북한아가씨
매개가 최근 4-5개월전 부터 새로운 현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 아주 확실해 보임.
남평에는 흑룡강성에서 북한 아가씨를 사러오는
장사꾼들이 종종 온다(수집자 직접목격). 경로는
조선족 밀무역자 북한내 불법월경 -
북한처녀에게 제의(밥먹고 살게해 주겠다는 조건)
- 수락 - 국경통과(북병사묵인댓가 양식 및 기타
뇌물제공) - 중국변방부대(뇌물제공) -
중국변방지역대기 - 연길 및 내륙으로 매매.
장애자 할아버지 농촌 총각 등 밥만 먹여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자격 된다고 함. 북한 여성의 경우
탈북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으로 압송되어 심한 처벌 당하기 때문에
시키는 데로 해야만 할 입장임. 어떤 경우는 함께
잘 살다가 부부싸움 하던 중 남편이 ‘네 년은
북에서 탈출해 온 년이니 신고해 버리겠다’고
홧김에 하던 말을 이웃사람이 듣고 신고한
바람에 진짜 북한에 끌려가 죽은 경우도
있었다고 함.
4) 도문(중국지명)
맞은편 북한접경 남양 철도 종착점 소식
기차 한대가 북한 내륙 한 지점으로 부터 15일만에
도착했는데, 오는 도중 기차 안에서 8명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기관사도 배가 고파 도중에
운전하지 못하게 되자 승객들이 양식가루를
한주먹이나 되게 거두어 먹이면서 운전하고
왔다고....(북한의 친척에게 양식전달차 남양역에
다녀온 조선족 아주머니의 증언).
5) 기타. 소문 소식
북한 2 대도시중 하나인 청진시 마저 배급 완전
중단된지 6개월 이상 되었다고 함. 북한의 각
도당 군당 관리들 식량조달 작업에 정신이 없음.
6-7명씩 조를 짜 중국에 와서 양식구하려 애쓰고
있음. 혹시 이전에 무역하던 중국인에게 떼인
돈을 받아서 라도 양식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이나 이마저 불가능한 사정이라고.
한 예로 강원도 지역은 소금마저 떨어져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일부는 바닷물을 양동이에
받아 소금만들어 쓰지만 대부분 그마저 불가능한
형편, 강원도 무역국장 2개월 반 전부터 소금 1,000톤(2만불상당)을
구하러 왔으나 돈이 없어 이마저 구하지 못해 전
도가 소금을 먹지 못하고 있다고. 북한 중앙의
식량배급 체계가 작동하지 못하자 이제는 각 도,시,군,직장
등 단위별로 식량을 자체 조달하도록 책임이
떨어졌다고 함. 북한 보위부원들 60여명 연길시
상주하며 활동하나 근래들어 이 증 다수가
어디론가 행방불명이 되고 있어 당국이 골치를
썩고 있다는데 기근으로 인한 체제이탈로 추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