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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0

 

 

 

 

 

 

  

■ 연속기획



"구원의 확실성은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에 기초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에 기초하여 있다."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구원파에서 주장하는 이단적인 교리 때문에 생겨난 것만은 아니다.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의심은 신앙생활의 여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 어려워질 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는가?" "정말로 나는 구원 받았는가?"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단종파 연구소장인 탁명환씨에 의하면 한국에 가장 큰 피해를 가져 온 이단은 구원파라고 한다. 구원파는 "선생님은 구원받으셨습니까?" "구원받은 것이 확신 되어집니까?"하고 질문한다고 한다. 질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지간데 이와 같은 질문은 구원의 확신을 인간의 경험에 기초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원의 확신에서 "확신"이라는 말은 인간의 경험을 기초로 해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으로 보면 구원의 확실성은 일차적으로 인간이 경험에 기초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예정에 기초해 있다.

구원의 확신은 우리 신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결국은 구원이기 때문이다(벧전 1:9). 문제는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이다.


구원과 근거

구원의 근거는 인간의 경험에 기초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에 기초해 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실 것을 이미 예정하셨다. "곧 창세 전에 우리 주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창세 전이라는 말을 통해서 볼 때 구원의 근거는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의 능력이나, 가문이나, 우리의 열심에 기초해 있지 않다.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하나님의 예정에 있다. 하나님의 예정은 알미니안 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장차 좋은 사람이 될 것은 하나님이 미리 아셨기 때문에 선택했다는 하나님의 예지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절대적이다. 변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구원의 확신이 인간의 경험과 논리에 기초해 있다면 구원의 확실성은 개연성에 불과한 것이된다. 사정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이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한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따라서, 구원의 확실성은 인간의 경험에 기초해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해 있다. 그래서 구원은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다.


구원과 믿음

하나님은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하신다(딤후 3:15).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그러면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인가?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길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말이다. 환언하면 믿음도 우리에게서 기초한 것이 아니다.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하나님께서 믿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믿음이 우리의 경험이나 의지에 기인한다고 한다면 구원의 확실성은 불분명하며 상황에 따라서 변하게 된다. 따라서, 성경적인 면에서 본다면 구원을 얻는 것도 하나님께서 얻게 하는 것이며 믿게 한다는 것이다.


구원과 확실성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믿음을 주셔서 구원을 얻도록 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의 감정인가? 우리의 이성인가? 아니면 무엇이라는 말인가?

만약에 구원의 확실성이 감정에 기초해 있다고 한다면 상황에 따라서 구원의 확실성은 변화될 수 있지 않는가? 만약 구원의 확실성이 이성에 기초해 있다면 구원의 확실성은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논리적 추리의 명료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확실성은 어디에 있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 되심은 인간의 논리가 경험에 의해서 확신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라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그렇다. 아무도 예수가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확신할 수 없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준다. 그러면 이 확신이 왜 절대적이고 확실한가? 시대마다 변화하고 다른 인간의 상대적인 증언이 아니라 성령의 확증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진리라고 했다(요일 5:7). 성령의 증거가 확실하고 절대적인 것은 성령의 증거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구원과 확실성의 표현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예정에 기초하고 주권적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 받으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확실하게 증거한다. 이 확실한 증거는 말로만 하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워의 확실성은 그것을 믿는 신자의 성화된 삶에서 보여져야 한다. 말로만 확실성을 말하면 그런 신자는 말쟁이 신자이지 진실된 신자가 아니다.

참된 신자는 구원의 확실성을 그의 성화된 삶에서 보여진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은 삶 속에서 보여진다. 서로 사랑하는 삶, 서로 화목하는 삶,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있는 삶, 인내와 절제가 있는 삶, 온유하고 맡은 바 일에 충성된 삶 속에서, 구원의 확실성이 보여지는 것이다.


결론

구원의 확실성은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에 기초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에 기초하여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하고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확신케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 속에서 보여지게 한다.


글 : 고광필
장로회 광주신학교 조직신학 및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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