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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3

 

 

 

 

 

 

  

■ 연속기획 5 - 이성교제

이성관에 대하여

선계명 목사"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창29:18)

나는 24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6개월간 50번 정도를 기도했고, 만나서 데이트한 지 4개월만에 처가에 가서 인사를 했고, 다시 1년만에 약혼을 했으며, 약혼한 지 1년만인 27세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결혼생활은 만으로 9년째이다. 그동안 1남 1녀를 두었고 이사를 5번 해오면서 사랑의 행복 쌓기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결혼생활에서 위기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서로의 신뢰와 인내로 힘쓰고 사랑으로 견디며 함께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것이다. 앞으로 함께 살 날이 더 많지만 짧은 게 인생이 아닌가 싶어 노력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다. 나는 아내를 처음 만나기 전까지는 보통 청년들처럼 나도 모르게 짝찾기를 하고 있었다. 뭇 여성들을 볼 때마다 나의 기준으로 재어보면서 Yes or No를 반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짝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시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사항이다. 연애도 성스러운 교회 사역처럼 여기고 기도하며 신앙심을 최대로 발휘했다. 그 결과 첫 만남부터 결혼 때까지 특별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본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고 감시가 심하게 통제된 북한 사회에서도 짝찾기를 위한 연애는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약간은 고무적인 상태로 논제를 다루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청년들도 이성들을 찾기 위해 짝짓기 신호를 내보내는 시간들을 본능적으로 보내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이성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옛날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나누었고 춘향이와 이도령이 사랑을 나누었으며 야곱과 라헬도 사랑을 하였다. 그러나 이성적인 사랑 한 번 나누어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결혼한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 번 결혼하고 나면 끝이었다. 지금 현 시대에는 이룰 수 없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사랑이 한낱 이야기에 불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전통적 이성관을 배려해서 만든 사랑이야기는 찾기가 힘들 지경이다. 즉 먼저 첫 눈에 맞으면 곧바로 이성없는 감정적 정사에 들어가고 그 후에 하나씩 알아가면서 만남을 계속하든지 헤어지든지 하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사랑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현상은 성교육과 이성관의 결핍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원리를 근거로 하여 이성관을 정립하므로 이와같은 시대적 누를 범치 말아야 될 것이다. 그것은 신께서 살아 계셔서 우리의 행실과 사고까지도 관제소에서 레이더를 이용하여 관찰하듯이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경적 이성관은 무엇인가? 성경은 다른 이성을 볼 때에, 아름다운 이성이요, 인격인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신의 형상인 선남선녀들이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대상은 자격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남선녀들은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첫 눈 의식이나 첫 인상도 외모로 판단하여 선택할 것이 아니라 먼저 인격을 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의 만남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인격은 대인관계에서 언행심사나 일할 때에 표현되는 것이니만큼 충분히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탤런트 최수종, 하희라 부부처럼 첫 눈에 전율감을 느끼며 저 사람이 천상에서 부부연이 있도록 맺어준 사람이 아닐까 하며 정신이 혼란해질 정도의 만남을 늘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런 행운의 기회를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성경에도 십보라가 모세를 보고 첫 눈에 반했듯이 일방적인 착각이 아닌 현상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런 식의 만남을 기대하다가는 모두 노처녀나 노총각이 되고 말 것이다. 뭇 여성들은 성숙해 갈수록 쥬다 벤허 같은 인물상을 기대하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런 인물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있겠는가 의아스럽다. 그렇지만 우리는 첫인상에서 외모를 보고 이성이라는 짝찾기를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서 자칫 쥬다 벤허 같은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히틀러 같은 이성을 만날 수도 있음을 알아야겠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좋은 인격의 소유자를 만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비록 외모는 약간 덜하지만 인격이 좋으면 만날수록 쥬다 벤허 같은 인물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물론 외모는 인격의 표현이요, 인격은 외모의 표현이기도 한다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먼저 사랑해 줄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인 이성을 만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은 어쩌면 가마솥을 데우는 작업과도 같다. 가마솥 같은 사랑의 열은 한 번

열을 가해 데우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그 이후로는 결코 쉽게 식어지는 냄비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평생을 사랑하며 살아야 할 이성을 찾아야 되지 않겠는가? 반드시 만나서 사랑하며 사귀되 결혼을 전제로 시작되야 할 것이고 골인까지 해야 할 것이다. 냄비처럼 쉽게 뜨거워지고, 식어지면 식상해서 다른 짝을 찾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수가성 여인이 남편을 다섯 이상이나 가졌던 누를 범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고, 그 부끄러운 사실을 주 앞에서 지적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교제는 대개 남성은 24세 이상부터, 여성은 23세 이상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선남선녀들이 사랑을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성교단계가 아니다. 일종에 데이트를 거친 연애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질 자유는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성적인 사랑에 빠지면 세상과 상대자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기를 괴롭히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것도 이해가 되고 위로를 얻고, 소유하고 싶고, 호기심과 기대감도 커지며 터뜨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약간 이기적인 면이 없잖아 많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면 애당초 이성을 사귈 때는 연인으로 사귀지 말고 부담 없는 친구로만 사귀는 것이 바람직하다. 친구에게는 의리가 중요한 것이지 이성적 사랑이 먼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 간의 친구관계는 단 둘만이 있는 곳에서보다는 여러 공동체와 노출된 장소에서 함께 일하고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이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인격을 알 수 있고 점검할 수 있어서 혹시 나중에라도 결혼으로 골인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있으면 단 둘만의 은밀한 장소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관계는 깨지고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수렁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둘이 만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서로 상대방에 대해 알려고 하기 때문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반드시 규칙을 만들어 만날 때마다 한가지씩

자기 생활에서 얻은 중요한 교훈을 서로 나누며 대화하는 것이 좋다. 신앙인들은 Q.T Sharing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이성과 사랑에 빠지면 무엇이나 주고싶고, 받고싶은 현상이 생긴다. 처음부터 조급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해 가는 과정은 규칙을 지키며 하는 마라톤과 같은 것으로서 서로의 절제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서로 사랑한다면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신뢰감을 져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함께 웃고 울며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울던 소쩍새의 심정과도 같은 것이다. 사랑해서 주고싶은 마음이 있다면 작은 선물을 자주 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고 싶다면 진솔함의 극치인 편지를 자주 길게 해주어야 한다. 또 사랑해서 만져보고 싶다면 손을 만질 수는 있으나 반드시 그 손잡는 것까지도 상대의 허락을 정중히 받고 규칙을 정하여 무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규칙의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할지는 신앙양심과 성경적 가르침에 따라서 하는 게 좋다. 일반적으로 요즘 신세대 청년들은 유니섹스와 같이 선을 넘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은데 신앙인은 절대로 그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사귀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규칙을 지키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일찍 결혼을 하여 범죄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혹시 절제하지 못해 선을 넘어버렸을 때도 회개하고 반드시 책임감 있게 혼인을 빨리 해야 될 줄로 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도 되지만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할 준비가 안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핑계를 금하고 도움을 구해서 시작하는 것이 사랑과 행복을 계속할 수 있는 바람직한 길이다.

연애를 하되 다른 주변환경이나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등이 깨지지 않도록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서로 양해를 구하여 오해가 없도록 해야 된다. 가령 어리석은 자는 묻기를 "너는 나보다 누가 더 중요하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하지 않도록 상대방의 삶의 패턴을 존중해주며 조화를 맞춰 가는 것이 사랑의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성교제는 신앙인과 하여야 한다. 그러나 부득불 비신자와 교제가 시작되었다면 결혼하기 전까지 반드시 전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아말렉같은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말렉을 멸하기 원했으나 사울이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로 그 인생은 불행하게 끝이 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성교제를 이제 막 시작한 자들이 알아야 할 것을 제시해보면 육감에 치우치지 말라는 것과 선을 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하는 장님 요술쟁이와 같다. 선을 넘지 말고, 넘었을 때는 책임을 져라. 주변 여건 때문에 헤어질 수 밖에 없을 때는 나중에 이혼하느니 차라리 사랑의 아픔을 가져보자. 또한 신앙인과 교제하되, 같이 읽을 수 있는 이성론 책을 메모하며 돌려 보라. 사랑이란 입에서는 달콤한 쵸콜렛 같으나 뇌에서는 아편 같고 배에서는 매운 고추맛 같은 것일 수 있다. 영화같이 각색된 사랑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라. 그러나 영화보다는 재미있다.

이성에게서 사랑을 느낀 자가 신랑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자녀에게 사랑을 느낀 자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본이요,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의 발현이다. 우리의 이성 간의 사랑은 신적이고 근본적인 사랑 위에 놓여야만 행복하고 사랑이 깃든 이성 간의 사랑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

글 : 선계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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