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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경제 개인적 소비 풍조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을 분석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위와 같은 일들은 그리 보편적인 일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공상의 세계나, 초등학생들의 '과학의 날 기념 글짓기 대회' 소재로만 여겨졌던 '통신 판매'의 모습. 그러던 것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지금은 확실히 달라진 형국이다. '통신 판매'의 세상이 온 것이다.
다양한 통신 판매, 카탈로그로 승부 통신 판매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판매 회사는 각각의 물품에 고유 번호가 매겨진 상품 카탈로그를 집집마다 배달해 주고, 소비자가 전화를 걸어 회사에 상품의 고유 번호를 알려주면 그에 해당하는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 주는 방식이 널리 쓰이고 있다. 따라서 어떤 상품이 어느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상품 카탈로그는 통신 판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따라서 카탈로그의 형식과 모양도 많이 발전하여, 소책자 형식을 거쳐 작은 사외보 형식으로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요즘은 카탈로그 자체의 '보는 재미'만도 쌉쌀하다. 웬만한 잡지를 읽는 것처럼 재미있고, 쓸만한 정보도 많이 담겨 있다. 한편 호출기 사용료 청구서 등, 각종 고지서에 딸려오는 통신 판매용 광고물도 늘어나고 있다. 작은 팜플렛이나 소책자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들 광고물은, 대기업에서 고객 관리를 위해 다량으로 발송하는 우편물 속에 '끼여들어' 각 가정으로 속속 배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식은 우편물을 받아 볼 사람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광고물을 끼워 넣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광고 효과가 높다.
가격과 편리에서 앞서가는 통신 판매 어떤 상품이 있는지 둘러보기 위해 굳이 시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판매 방식이 성행하자, 소비자들은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통신 판매를 자주 이용한다는 직장 여성 한인옥(26, 미용사)씨의 말이다. "직장 생활 때문에 마땅히 백화점 등을 둘러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어떤 상품이 얼마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일단 뭐가 있는지 알아야 사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통신 판매 회사의 카탈로그는 많은 도움을 준다." 가격 면에서도 통신 판매는 소비자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통신 판매를 통해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저렴하게, 최소한 더 비싸게 팔지는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같은 가격 파괴는 통신 판매 회사가 운송·택배 회사들과 연동하여, 유통 구조를 단순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특히 통신 판매 회사들 중 최근 '시중 최저가 판매'를 약속하면서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H회사의 경우, 만약 동일한 상품이 시중에서 더 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면 전액 환불까지 해 주겠다고 나섰다. 이 회사에서 통신 판매로 상품을 구입한 적이 있다는 박광임(47, 교사)씨의 설명이다. "아침 일찍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하기 때문에 예약 기능이 있는 밥솥을 사고 싶었다. 그러나 전기밥솥은 압력솥에 비해 밥맛이 좋지 않다. 그러던 차에 통신 판매 카탈로그에서 '전기 압력 밥솥' 광고를 보게 되었고, 시중 가격보다 싸다는 생각에 곧 주문을 했다. 며칠 뒤 다른 카탈로그에서 같은 제품이 더 싸게 판매되는 것을 보고 H회사에 전화하여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물건을 생산한 회사측에서 가격을 낮추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며, 차액을 보상해 주겠다는 것이다. 차액에 해당하는 상품 몇 가지를 더 주문하고 전화를 끊으면서, 이 정도 책임을 지는 회사라면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통신 판매의 부작용 이처럼 통신 판매가 다양한 장점을 가진다지만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점은 통신 판매를 위한 카탈로그가 너무 남용되고 있다는 것. 카탈로그의 남용은 과소비를 조장할 수 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장난이 아닌' 것은, 실제로 카탈로그에 한번 잘 소개된 덕에 시장에서 거의 팔리지 않던 상품도 바닥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치 않은 물건도 가격이 저렴하고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다면 사고 싶어지는 것이 소비자의 심리라고 볼 때, 판매자 입장에서는 소비자가 일단 카탈로그만 읽어도 성공인 셈. 카탈로그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성인용품 광고가 무분별하게 게재된다는 점이다. 여성 체형 보정기 같은 경우 노출이 심한 여성 모델 사진이 함께 실리게 마련이며, 상품의 특성상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미(美)에 대한 혼란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부모들의 지적이다. 통신 판매는 시장 구조의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한다.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아 보다 싼 가격으로 소비자의 손에 상품을 건네 줄 수 있는 '고마운' 통신 판매지만,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유통 구조를 통해 판매하는 일반 업자들의 시장을 온통 잠식하고 있는 '얄미운' 존재가 된다. 이러한 냉혹한 경쟁 논리에, 유통업계는 할 말이 없다. 얄미울 밖에.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은 통신 판매 회사 중 일부가 이미 전국적으로 대량의 광고를 일시에 내보낼 수 있는 통신망을 구축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들 회사가 특정 상품을 다량 구입하여 싼값에 집중 판매하다 보면, 가격 파괴로 인한 전국적인 규모의 유통 질서 파괴까지도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기주의의 한계가 극복될 수 있나 사람들이 수많은 부작용과 폐해를 감내 하면서까지 통신 판매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 혼자만 싼값에 좋은 물건 쓰겠다'는 욕심. 그리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 혼자 물건 많이 팔아서 돈 벌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는 결국 '함께 사는 사회'의 질서를 해치기 마련이다. 참으로 어려운 경제 난국이다. "욕심을 버리자, 그리고 함께 이 어려운 경제 난국을 헤쳐 가자"라고 한다면? 이는 그저 꿈같은, 한 이상주의자의 허황된 기대련가? 황희상 기자(pulitzer9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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