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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성경
 도마예수

말씀 : 박일영 목사 (광주 광천교회 청년부 전담목사)

'포도주'와 '가죽 부대'

여러분 중에 서부극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보통 서부극을 보면 말을 타고 다니는 총잡이들이 말안장이나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꺼내 물이나 술을 마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주머니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가죽 부대'이다. 고대 사람들은 동물의 가죽으로 부대를 만들어 액체를 보관하는 용기로 삼았다. 작은 동물의 머리와 다리부분을 잘라내고 가죽을 벗긴 다음, 털이 나있는 쪽을 바깥쪽으로 해서 목부분만 남기고 나머지 모든 구멍을 꿰맨다. 그리고 기름기를 제거하고 일정기간 손질을 하고 나면 물이나 술같은 액체를 보관하기에 적합한 도구가 된다. 팔레스틴, 유럽, 남미에서 최근까지도 사용한 방법이다. 그런데 새 포도주는 반드시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포도주는 발효되는 과정에 강하고 독한 가스를 발생한다. 이 때 새 부대는 신축성과 탄력성이 있기 때문에 약간 확대되면서 그 가스를 견디어 내지만, 낡은 부대는 주름 잡히고, 메마르고, 딱딱해서 그 가스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반드시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상식으로 굳어졌다.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의 의미

본문에서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비방을 받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결론 삼아 하신 비유의 말씀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37절)는 것이었다.

여기서 '새 포도주'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훈, 혹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언약을 가리키는 말이며, '낡은 부대'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대표로 하는 당시의 유대교의 형식주의와 위선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다 간략하게 말한다면 새 포도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고, 낡은 부대는 유대교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진리, 새로운 구원의 길, 새로운 사상 (율법에 대한 재 해석)을 담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뿜고 있는 '새로운 도전과 혁명의 가스'를, 형식주의와 위선으로 특징지워지는 당시의 유대교가 수용하지 못하고 배척하고 있다는 것이 이 비유의 요점이다.

예수님의 교훈과 사역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안식일 준수에 관한 태도와 가르침은 대표적인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물에 빠진 양을 건져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 양이 물에 빠져 죽어 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때(이런 태도를 '형식주의'라고 함), 예수님은 죽어가는 병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안식일에도 거침없이 일을 하셨다. 본문에서 요한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셨던 것이나(30-33),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 등도 같은 맥락의 사례들이다.

반면 바리새인을 포함한 당시의 유대인들은 형식주의와 위선의 늪에 깊이 함몰되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전개되는 새로운 진리와 복음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형식주의의 길로 빠져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자신들이 '율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둘째는 '할례의식'을 행하였기 때문에, 셋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구속의 유일한 대상이라고 여긴 점이다. 이 세 가지 외적 조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선택하여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선민의식, 성민의식이 형식주의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이 세 가지 외적 조건을 구비하게 된다. 각 개인이 내면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 없이도, 유대인이면 누구든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요 구속의 반열에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내적인 것'은 없어도 '외적인 것'만 중시하는 형식주의에 빠지게 된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을 일컬어 '표면적 유대인'이라고 비난했다 (롬2:28-29). '내적'인 것이 없이 '외적'으로만 행하는 것은 '위선'이다. 이처럼 형식주의와 위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러한 유대교(유대인들)의 형식주의, 위선은 마치 주름 잡히고, 메마르고, 딱딱해서, 탄력성이 없어져 새 포도주를 담아 들이지 못하는 낡은 부대와 같았던 것이다.


'새 부대'의 의미

그렇다면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란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그 답은 형식주의와 위선의 반대편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첫째, 새 부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혹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을 받아들이는 (수용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내면적인 것의 대표가 바로 '믿음'이다. 하나님을 향한 각 개인의 내면의 세계가 곧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담아 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 모두가 이 믿음이 충만하기를 원하신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 '새 부대'이다.

둘째, 새 부대는 새로운 것(교훈, 사상)을 받아들이는 '신축성', '탄력성'을 의미한다. 탄력성이 없어서 새로운 변화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낡은 부대'에 속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묵은 것이 좋다"(The old is good)고 말한다(39절). 이런 태도는 반드시 노인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종교적인 형식주의와 위선에 감염되면 젊은이들도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 모두가 새로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받아들이는 신축성과 탄력성을 지닌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 주님은 본문을 통해 '너의 마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낡은 부대처럼 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셋째, 새 부대는 모험적 사고를 의미한다. 역사의 새로운 아이디어(혹은 사상)나 시도는 모두 모험적 사고를 통해 이룩되었다. 사람도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모험적 사고가 비행기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는 것이 좋은 예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사상)를 거부하는 닫힌(폐쇄적인) 마음을 버리고 모험적 사고를 함으로, 그분의 복음과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기를 원하신다.

넷째, 새 부대는 새 방법(New methods)을 의미한다(W. Barclay). 바클레이는 '사업가는 늘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추구해 가는데, 교회는 항상 낡은 방식을 시도한다'고 교회의 보수 지향적인 성향을 꼬집었다.

부스(General Booth)가 세계를 여행하던 어느 날 탬버린을 치며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갑판 위로 걸어 나오는 것을 키플링(Rudyard Kipling)이 보았다. "당신은 탬버린과 같은 악기를 싫어하잖아요?"라고 키플링이 묻자 부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젊은이여, 만일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 두 발로 탬버린을 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배울 것이요." 실로 감동스런 대답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은 이 사례를 나 자신에게 적용해 보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목사님, 본래 드럼은 교회에서 연주하는 악기가 아니잖아요?" 내가 대답한다. "하지만, 만일 드럼을 쳐서 한 명의 젊은이라도 더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나는 드럼을 두 개, 세 개라도 치는 방법을 찾아보겠소."


어떻게 '새 부대'가 될 것인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새 부대'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열린 마음과 태도를 갖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복음 (그리스도) 앞에 열린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것 없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무의미하다. 본인의 마음을 열어야 예수님께서 그 안에 들어가서 새로운 역사, 새로운 삶을 이룩해 주신다. 닫힌 마음을 그대로 두고서는 교회를 10년 나와도, 기도회나 성경 공부에 빠짐없이 참여해도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열고 찬양하고,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고 옆의 지체를 바라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둘째, 자기 갱신의 노력을 끊임없이 가져야 한다. 여기에는 낡은 껍질을 벗겨 내는 아픔이 동반되지만 감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 청년·학생예배>는 새로움을 추구하며 자기 갱신의 노력을 쉬지 않고 있다. 교회 입구의 대형 플랭카드(날로 열기를 더해 가는 광천교회 청년·학생예배 주일 11시 50분), 예배 안내판, 예배위원 목걸이와 유니폼, 드럼과 OHP, 찬양 시간, 다양한 특순, 연간·월간·주간 예배 계획…….

새안산 교회(김학중 목사)의 새신자 영접 방법을 책에서 읽었다. 그 교회는 새신자가 오면 두 사람의 안내 위원이 예배당 앞쪽으로 인도한 후 양쪽에 앉아서 예배 시간에 새신자가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예배가 끝나면 악수하는 손을 잡은 채로 담임 목사님실로 인도하여 면담을 갖게 한다. 한 마디로 극성스럽다. 그렇게 하고 나면 80% 이상이 등록을 하게 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그 글의 결말 부분에서 김 목사님은 '사랑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극성맞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낫다'고 적고 있다. 나는 이 사례를 내 자신에게 적용해 본다. '구태의연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광천교회 <청년·학생예배>는 극성스런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낫다'고…….

셋째,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외면의 변화는 인간의 지혜와 노력에 의해 이룩될 수 있지만, 내면의 변화는 내면을 주장하고 계시는 성령에 의해서 이룩된다. 정신, 양심, 영혼, 믿음 등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는 변화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제자들의 내면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열린 마음을 갖고 자기 갱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성령을 의지하고 사모해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여러분 각자를 '새 부대'로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는다.

우리에게는 주님과 그분의 복음이 곧 새 언약이요 새 포도주다.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셔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새 부대가 되어야 한다. 새 부대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믿음, 새로운 것(교훈, 사상)을 받아들이는 신축성과 탄력성, 새로운 아이디어를 산출해 내는 모험적 사고, 복음 전파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의미한다. 새 부대가 되기 위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자기 갱신의 노력을 끊임없이 해 가길 바란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내면을 주장하고 계시는 성령님을 전적으로 사모하고 의지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주의 성령께서 고착화된 형식주의적 신앙 형태를 벗어버리고,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 심령과 새 신앙 형태를 우리에게 덧입혀주실 것이다.

본문말씀 : 마태복음 5장 13∼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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