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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 다녀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 앞에서 생활 정보지를 주워 들었다. 한장 한장 넘겨보는데 '전화방'이라는 단어와 함께 '무료 전화 한통으로 기막히게 재미있는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문구가 보인다. '080-×××-1052'. 슬쩍 보고 넘겨 버렸다.
다음 날. 남편은 출근하고 지원이를 유치원 차에 태우고 집에 들어오니 다시 텅빈 아파트에 함몰되는 느낌이다. 무슨 할 일이 없나 둘러보다 문득 어제 보았던 '전화방' 광고가 떠올랐다. 한 번 호기심이 일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빨래를 넣으면서도 그 생각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여성 잡지를 폈는데도 그 '전화방'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무료 전화라는데 한 번 걸어볼까?'
자꾸 전화기가 눈에 띈다. 별로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해 본다. 심심하니까 이야기 좀 나누다 끊으면 그만이지 생각하니까 훨씬 편해진다.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네, 어떻게 전화하셨어요?"
"그냥…, 심심해서…."
"어떤 분을 원하세요? 30대 중반? 40대? 젊은 분이 좋으시죠?"
순간 당황했다. 어떤 남자? 어떤 남자가 좋지? 우리 그이가 30대 후반이니까, 그래 30대 후반이 좋겠다.
"30대 후반이 좋겠는데요..."
"알겠어요. 연결해 드리죠."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음성이 참 좋다. 인사성도 밝아 보이고…, 목소리로 매너가 묻어 나온다.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뭐 하시는 분이세요?"
"좋긴요, 감사합니다. 뭐, 작은 사업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무슨 사업인지요?"
"섹스숍을 하고 있어요. 섹스숍이라고 들어보셨죠?"
"들어보긴 했는데, 잘 몰라요."
"아, 그럼 제 가게에 초대해도 될까요? 구경 시켜 드리고 싶네요. 이렇게 전화 통화를 하게 된 것도 굉장한 인연인데, 차라도 한 잔 하며 이야기도 더 나누고 싶고."
"……."
"싫으신가요? 아, 저는…, 다른 뜻은 없고요. 그냥, 잘 모르신다기에."
"아니요, 뭘요. 괜찮아요."
초인종이 울린다. '지원이구나!'
맥박이 빨라진다. 끊어야한다. 지금까진 괜찮았는데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저기, 죄송하지만 끊어야겠어요."
"아니, 왜요? 제가 무례했습니까? 그렇담 사과드리죠."
"그게 아니라, 저, 손님이 오셔서…."
"다시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제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011-×××-××××입니다. 적으셨죠?"
"네…, 그럼."
끊었다. 왜 그렇게 늦게 나오느냐며 지원이가 투덜댄다. 깜짝 놀랐다. 그냥 얼버무리고 지원이에게 간식을 내주면서도 그 목소리를 더듬어 본다. 자신이 왜 그렇게 흥분해 있는지 알 수 없다.
친구들을 만났다며 늦게 들어온 남편은 씻고 나서 지원이 방에만 잠깐 들어갔다 오더니 잠자리에 든다. 그러고 보니 요즘들어 남편과의 사이가 무덤덤하다. 말도 별로 없고, 피곤하다고 그냥 자버린다. 잠든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오후에 통화했던 그 목소리를 기억해 보았다.
'제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011-×××-××××입니다.'
아직 기억이 또렷하다. 왠지 그 번호를 적어두고 싶다. 볼펜을 찾았다. '011-×××-××××'. 남편 옆에 누웠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아, 정말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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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대신 전화방을
인간 소외.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를 상실하고 고독과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 그들의 텅빈 공간을 채우려는 뉴에이지적인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어찌보면 전화방도 이에 다름 아니다.
지난 4월 2일 방영된 PD수첩에서는 현재 대중화 단계에 접어든 '남성 전용 전화방'의 내면을 치밀하게 파헤친 바 있다. 일부 전화방의 음란 비디오 상영, 주류 판매 등 퇴폐적 상술은 차치하더라도, 전화방 안에서 실제로 남녀가 나눈 대화의 내용은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만든다.
'PD수첩이 싸잡아 비난한다'는 비판을 산 것도 사실이지만, 앞서 제시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상 시나리오가 보여주듯 전화방이 낳을 사회·문화적 폐단은 예측이 어렵지 않다.
'지적이고 세련된 남성이 당신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느니, '미지의 남성과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 보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보여주듯, 전화방은 업자들이 내세우는 '스트레스 해소'나 '휴식 공간'의 기능을 이미 벗어나고 있다. 전화를 걸어본 몇몇 여성들의 말에 따르면, 전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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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노력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내적 치료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욕망을 교묘히 자극하는 사탄의 흉계는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를 거부하여 생긴 빈 자리, 바로 그 공허함과 의식의 상처는 다른 무엇으로 채워지거나 치료될 수 없다.
이를 위해 비록 완전한 대책은 아니지만 교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교회는 언제든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성도와 비성도를 불문하고 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겠다. '전화방'이 아닌, 교회에서 '상담 전화'를 개설하는 것은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교회에 전화하면 늘 전화를 받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인간들의 어리석고 헛된 노력에 교회가 구체적 대안을 전해야 할 때이다.
강정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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