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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Voice online No.25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복

박철수 목사 저 '축복의 혁명'을 참조로
 

이 글은 박철수 목사(서울 두레교회 담임)저 [축복의 혁명] 중 팔복에 대한 부분을 요약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 진정한 축복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박철수 목사 저 "축복의 혁명" 표지. 대장간 발행  오늘 우리 한국 교회에 축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큰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축복이 무엇인가?

  오복이니 칠복이니 우리 기독교인도 그런 복을 받기위해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따지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의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다. 복의 문제는 대충 넘겨버릴 그런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복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갖는 것은 제 2의 회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 축복이냐 하는 문제는 무엇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와 같은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앙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왜 신앙을 하느냐는 말과 관련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을 복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의 위대한 교훈인 산상수훈은 복으로부터 시작한다. 복이 있다는 말이 여덟 번이나 반복된다. 초등학생이라도 이것은 예수님께서 '복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설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도 분명한 말씀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이 축복의 말씀은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 주는 말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복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예수님의 축복에 관한 말씀이 별로 소개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부자가 되는 것이 복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복을 보면 처음부터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나온다. 복이란 기뻐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애통하는 것이 복 있는 것이라 했다. 마음의 평안이 복인 줄 알았는데 고난이 복이라 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번지수가 다른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인간의 연약함을 아는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첫째 복은 마음이 가난한 자이다. 처음부터 역설이 시작된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별볼일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복의 첫 단계를 우리가 별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하신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잠시 살다가 가는 허망한 존재이다.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은 자신이 얼마나 별볼일 없는 허망한 존재인가를 깨달은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죄인임을 아는 자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레미야서 17장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 다음 말이 참 재미있다. "누가 능히 이것을 알리요" 사람이 다 자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행복한가? 누가 복을 받은 사람인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더러운 모습을 보고 애통하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하다고 하신다. 역설이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복이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 자

  세 번째로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온유한 자란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자이다. 성경에서 "온유"라는 말의 뜻은 사나운 개가 주인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아주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통제된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말한다. 온유한 마음은 또한 열린 마음이다. 무감각한 마음이 아니라 민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 이것이 복받은 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의를 추구하는 자

  네 번째로 예수님께서 복받는 자의 삶은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하셨다. 의는 곧 '그리스도'를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먼저'라는 말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우리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품을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될 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런 사람이 바로 진정한 복의 소유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동정심을 갖는자

  다섯 번째, 예수님께서는 긍휼이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긍휼이 여기는 자란 동정심을 갖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얼마나 잔인한 시대에 살고 있는가. 참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몰라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긍휼히 여기는 자는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용서하는 마음이다. 기꺼이 용서할 줄 아는 마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마음,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음이 깨끗한 자

  여섯 번째,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무엇보다 진실한 마음이다. 오늘 우리 시대는 거짓이 판을 치고 있다. 이 사회는 순진한 것이 통용되는 사회가 아니다. 순진하면 인기도 없고 무능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거짓을 말할 줄 알고 임기응변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순진해서야 이 세상을 살아가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다.

  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빈마음을 갖는 사람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삶에 무엇인가를 꽉꽉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빈마음의 소유자가 복이 있는 자임을 알아야 한다.


평화를 만드는 자

  일곱 번째,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란 마음씨가 좋아 대충대충 넘어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분위기를 읽고 그의 여건들을 읽어 내면서 평화를 만들어 내는 그러한 자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 때문에 고생하는 자

  마지막 여덟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디모데 후서 3장 12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당하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경건이 무엇인가?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구역예배, 수요예배 참석하고 아침 저녁으로 성경 읽고 기도하면 그 사람을 보고 경건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은 경건한 사람의 증거는 핍박을 받는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을 때 진정한 경건이 있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고, 고통을 당하고, 손해를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경건일 수 없다는 말이다.

  오늘과 같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게 되면 틀림없이 핍박을 받게 되어 있다. 핍박을 받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증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았고 복을 받은 증거는 출세하고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그런 구절은 없다. 예수님 때문에 복을 받은 사람은 틀림없이 고난을 받게 된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이상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이사야서 55장 8절에 보면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을 너희 길과 다르다"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께서 복이라 하는 것과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이 여덟 가지의 마음, 이 여덟 가지 삶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또한 그 분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이다.

  전정한 복이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다.

TheVoice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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