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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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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반지는 순금인가,
14k인가?

    교회마다 참신한 각종 성장 프로그램들, 그러나… 그 안에 스며든 인본주의적 위험성들을 점검해 본다.

귀금속 가게에 가면 14k, 18k반지들이 있다. 순금으로 만든 반지는 원래 비싸고 귀하다. 많은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것을 원하면서 동시에 값이 싼 것을 요구한다. 당연히 장사하는 이들은 대용품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가짜 금반지인 14k, 18k다. 진짜인 순금과 모양새는 비슷한데 가격은 저렴하다. 게다가 이런 가짜 금이 더 쓸모 있을 때가 많다.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 각종 귀금속에서 안경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그 실용성을 뽐내고 있다. 그래서 순금보다 14k, 18k가 더 애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진짜 금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짜 반지가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교회의 효자손, 각종 프로그램들

한국교회가 침체 위기에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목회자들은 크게 부흥한 교회들의 '성장 비결'에 관심을 쏟고 있다. 현재 성장해 있는 교회들을 보면 나름대로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각종 부흥 프로그램들과 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구도자 예배(한국에서는 통상 열린 예배라 칭한다)'의 도입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많은 긍정적 효과를 보는 것은 사실이다. 새신자들은 이런 프로그램으로 인해 좀 더 쉽게 마음 문을 열 수 있다. 교인들에게는 교제와 화합의 장을 마련해 주는 프로그램들. 잘 시행된 프로그램은 한 교회를 하나로 뭉치게도 하고 부흥하게도 할 정도다. 그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프로그램들에게는 '교회 성장의 비결'이라는 존칭어까지 붙는다.

이것들이 '나쁘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성장하는 교회들은 하나같이 교회의 본질인 '복음'을 중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은 이런 프로그램들이 '가짜 반지'란 사실이다.


예수여, 죽지 마옵소서!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2∼23)"

베드로의 생각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서는 안되었다. 하나님의 일인 십자가 사건을 자기 생각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해내기 위해 계속 살아계셔야 했다. 더구나 하나님 되신 메시야께서 어떻게 사람 손에 돌아가실 수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의 생각의 초점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향해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사단'이라고 꾸짖으신다. 한국교회들이 성장을 위해 도입하는 각종 프로그램들과 예배의 형식 파괴, 그리고 다양한 편의시설들에는 본래 선한 의도 즉, 더 많은 어린 양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또는 사랑으로 하나 되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프로그램과 사업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회 본래의 사명 보다는 인간을 위한 생각들, 소위 인본주의적인 발상들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엉뚱하게 '사람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처럼 '사단'이라는 책망을 예수님으로부터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기 때문이다.


사회 봉사에 힘쓰는 교회

사진 : The Voice 박형주과부, 고아, 가난한 이를 구제하고 어려운 중에 서로 힘이 되어 주었던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 오늘날 교회가 구제와 봉사의 사명을 감당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다.

미국의 새소망 커뮤니티 교회는 가정 중심의 세포 조직으로 유명하다. 이 소그룹별 조직은 상처입은 사람들을 찾아 내고 치유하는 데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펼친 운동이 티엘씨(Tender Love Care; 따뜻한 사랑으로 돌봐주기)운동이다. 티엘씨란 소그룹들이 병원이나 집에 누워있는 병자들이나 결석자들을 방문하여 돌봐주는 일을 말한다. 티엘씨 소그룹은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한다. 또한 '서로 나누기 운동'이라 하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깊은 교제를 가진다.

한국의 고덕중앙교회는 농촌 교회다. 농촌 실정에 맞는 교회의 역할을 다양한 방면에서 충족시켜 나가고 있다. 이 곳에서는 어린이 선교원을 운영하고, 자식없는 무의탁 노인을 위한 양로원 사역도 해 나간다.

또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관계로, 집에 방치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회에서 돌보고 가르쳐 주고 있다. 84년에는 주택 조합인가를 받아 2천 3백 여평의 대지에 주민 주택 2세대를 건축하기도 했으며, 장학금 지급, 미자립 교회 지원 등에 이르기까지 지역 공동체를 위한 폭넓은 복지사업들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광림교회는 '사랑의 집' 운영으로 결식자 식사 제공, 장학 사업, 농어촌 미자립 교회 지원 등의 사회 봉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명성교회는 '봉사선교위원회'라는 이름의 조직을 따로 두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사역 내용은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인 소년 소녀 가장 돕기, 무의촌 의료봉사, 장학관 개관이 있다. 그리고 조금 독특한 부분으로는 맹인 개안 수술비 지원, 미화원 위로회, 일일 근로자 식사 제공, 무료합동 결혼식, 사랑의 쌀 모으기 등이 있다.


그러나 지쳐가는, 혹은 안주하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교회의 구제·봉사. 이같은 사회 봉사가 갈수록 확대되어 나갈 때 자칫 교회를 얽어매는 '일'에 불과해질 수 있다.

"처음에 성도들의 열심과 순수한 동기로 시작된 사회 봉사 활동들이 나중에는 '일'이 되어 버렸다. 일손과 물질이 많이 필요했기에 성도들이 봉사 활동에 매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렇게 교인들이 지쳐가도 교회 사업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의 이미지에 손상이 가기 때문인 것 같다."

사진 : TheVoice 박형주비교적 규모가 작은 교회에 다니는 K자매(20. 광주 B교회)의 지적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다. 원래 교회의 사회 봉사 활동의 원동력이 말씀으로 인해 생겼던 열성적인 봉사심이었다 할지라도, 말씀으로 튼튼하게 무장되지 못하고 원조받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그것이 우러나오는 봉사가 아니라 일종의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교회가 성장해가면서 어쩌면 필수적이 되어버린 구제·봉사. 이것이 많은 '일'과 마지못한 '봉사'로 변질될 때 그에 기진해버린 성도들로 하여금 본질적인 것에 신경 쓸 기력마저 소모시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할 것이다.

대다수 성장하는 교회들은 '지역 교회'의 역할들을 잘 수행하고 있다. 때문에 교회가 지역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지역민들과 화합을 이루는 '지역 교회'의 역할을 담당해야하는 것은 성장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는 교회가 성장을 이룬다고 하여, 먼저 사회 봉사 영역을 정하고 거기에 힘을 쏟는 모습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진정한 봉사심과 희생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해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봉사와 희생 자체가 성장 비결은 아닌 것이다.


열린 예배의 바람이 분다

윌로우 크리크 교회는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Seeker Sensitive Program)', 일명 '구도자 예배' 형태를 창시한 곳이다. 1만 5천∼3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이 예배의 특징은 불신자들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상하게 하지 않는 데에 있다. 교회 문화에 낯선 이들에게 복음의 메시지가 더욱 쉽게 다가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 곳에서는 신자와 불신자가 따로따로 집회를 하도록 배려해 준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에 '수요 계획팀'이 모여 찬양과 드라마 중심으로 이뤄지는 예배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배시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찬양, 드라마·영상 매체를 통한 복음 증거가, 설교와 동일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고민한다.

싼디고 지평선 기독교 친목교회 성도들의 평균 연령은 28세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대부분의 교인이 젊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집회는 해변에서 세례식은 바닷가에서 드리는 등, 교회는 그들의 취향을 맞추어 주고 있다.

한국의 광림교회의 주일 대예배는 축제 분위기다. 팡파레 음악으로 예배의 시작을 알리고 예배 담당자들은 따로 설치한 통로를 통해 입장한다. 또한 찬양대도 오케스트라와 함께 진행된다. 이 교회는 거리가 먼 성도들을 위해 케이블을 통해 예배를 드리고있다.

온누리 교회에서도 매주 토요일 오후, 불신자를 위한 열린 예배를 드린다. 기존의 무거운 분위기인 찬송가가 아니라 경쾌한 연주로 예배가 시작되고, Worship Dance, 인형극, 드라마, 영상극 등의 공연이 전문적인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펼쳐진다. 이윽고 케쥬얼한 스웨터 차림의 목사가 무대에 나타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다.

예수촌 교회에서 이색적인 것은 예배의 초반부에서 성경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비디오 소개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TV 쇼 프로에서나 볼 수 있는 능숙한 진행으로 이 메시지를 적용하는 시간을 갖는다. 설교시간 때에도 설교자 한 사람이 나와서 설교하는 형식이 파괴되었다. 목사와 다른 한 형제, 즉 더블 MC가 나와 서로 대화를 하고 교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성경 말씀을 전한다.

성덕중앙교회의 예배 풍경 역시 색다르다. 모든 교인이 볼 수 있도록 강단 뒤에 비치된 스크린에 찬양 가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강대상이 없는 무대 중앙에는 율동팀을 뒤로한 목사님이, 그 앞에 교회 내의 중창단과 악기팀이 서서 찬송을 인도한다. 예배의 중간 중간에는 단막극, 찬송, 스킷, 성시 낭독 등이 삽입되어 예배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어 주고 있다.


그러나 표류하는 '열린 예배'

지금까지 교회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면이 강했다. 그간 주변 문화의 변화나 감각에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열린 예배'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윌로우 크리크 교회에서부터 시작된 '구도자 예배'가 한국에서는 '열린 예배'의 이름으로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 형태의 변화를 일종의 유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구도자 예배는 딱딱한 전통적 분위기를 꺼려하는 신세대와 불신자들의 취향에 예배 형태를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형식들을 그저 일종의 성장 비결이라 하여 충분한 고민없이 도입하는 한국교회들의 태도다. 구도자 예배가 시도되었던 미국은 그 문화적 배경이 우리와 전혀 다르다. 미국은 기독교적 문화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고 나름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유행에 쉽게 달구어지지 않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나라이다.

다양한 공연과 찬양을 가미한 '열린 예배'. 이를 검증없이 받아들이는 한국 교회들에 대한 지적이 일고 있다.

또한 구도자 예배의 시도 뒤에는 충분한 문제 분석과 오랜 기간의 연구가 뒷받침되어 있다. 미국에서 구도자 예배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때문에 신학자들은 구도자 예배가 언제 어디서나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구도자 예배'를 '열린 예배'라는 이름으로 어렵지 않게 우리나라에 정착시키려 하는 한국교회들의 자세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열린 예배'에는 찬양이나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이 삽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심도있는 검증을 거치지 못했다면 그저 쇼맨쉽에 그칠 수 있다. 분위기 돋우는 음악들과 몇가지 공연, 프로그램들을 도입해서 젊은 층의 눈길을 끈다고 하여 그것을 혁신적이라거나 참신한 것으로 칭찬해 줄 일도 아니다. 새롭게, 그러나 엉성하게 도입된 요소들이 오히려 중요한 메시지의 전달력만 더 흐리게 할 수도 있다.

열린 예배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정성을 기울인다. 물론 하나님에 대해 더 친근하게 소개시켜 주려고 한다는 데에 그 시작점을 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당연히 인간의 죄 문제에 대한 메시지는 피하거나 약화되게 마련이다. 구원의 진리는 피상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우리 교회는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했다. 한 동네에 두세 개의 교회가 밀집되어 있어 서로의 교인 수에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 누가 새신자들을 놓치고 싶겠는가. 그러나 새신자와 교인들은 기존의 딱딱한 분위기를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설교의 내용은 구복적이거나 재미있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건강' 문제 같은 것들을 많이 다룬다. 그러다보니 회심과 회개를 요구하는 내용은 배제되고 있는 듯하다."

광주 S교회에 출석하는 K형제(22)의 말처럼, 강단에서 새신자나 교인들의 입맛을 맞추어주는 말씀이 선포될 때, 말씀의 권위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날로 편해지는 교인들

각종 편의시설이 제공되는 교회들은 교인들의 불편함을 해소해주고 가족 단위나 성도들 간의 교제를 더욱 친밀하게 해준다. 또한 이같은 시설들을 이용하여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휴스톤 제2침례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시설 좋은 교회로 알려져 있다. 교회 내에는 회의실, 성가 연습실, 음악 도서관, 여러 개의 교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3천 만불이나 들여서 세 개의 체육관, 대형 볼링장, 당구장, 에어로빅장, 극장, 수공실, 식당들을 만들었다. 이런 시설들은 교인들의 친교와 교제를 위해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주일날 교회 주차장에는 목사뿐 아니라 교회 직원들의 주차가 금지되어 있다. 일반 교인들의 차만 주차시키기 위해서다.

광림교회는 기도를 강조하는 목회자의 목회 방침에 따라 7년 동안 '기도'를 가르쳐 왔다. 동시에 경기도에 6만 8천여평의 대지를 마련하여 건평 3천평의 본당과 인공폭포 및 연못 야외 예배 처소도 건립하여 더욱 좋은 환경에서 기도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교회명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교인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것에는 교회의 대형 셔틀 버스도 그 중 하나다. 대개 개척 교회의 경우 사역의 기동성을 위해서라도 작은 봉고 버스 정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교인들이 많아지면 버스의 크기도 커지고 숫자도 늘어나게 마련. 이는 노약자나 어린이들, 거리가 먼 교인들의 더 편리한 이동을 위해서다.


그것은 인본주의의 또다른 이름

다른 어떤 점보다도 인본주의적인 생각이 가장 많이 침투된 곳은 바로 이 부분, 편의주의적인 생각을 합리화하고 그것을 만족시켜 나가는 방식에 있다. 물론 심히 불편한 것들의 해소를 요구하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그리스도의 검소함에 대한 망각과 스스로의 안일함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 성장을 위해 경영학적 마케팅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교회로 하여금 편의시설 확보에 좀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결국 '신앙의 방편' 밖에 되지 못한다. 다음과 같은 예화가 있다.

"뉴욕에 있는 한 교회는 그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인해 교인들은 물론 여행자들까지도 압도될 정도다. 그런데 주일 아침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의 대화 속에는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여보, 예배 드리기 전에 먼저 볼링 한 게임 치는 게 어떨까?', '좋아요. 먼저 즐기고 보는 거지요.' 이 뿐이 아니다. '오랜만일세. 이따가 성경 공부 마치거든 오락실에서 만나세.', '좋은 생각일세. 오늘 전도한 친구와 함께 가지.'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그 교회는 교회 건축 당시 교회로 성도들을 모을 궁리를 하여 여러 오락 시설, 운동 시설, 취미 시설을 갖춰 놓기로 하고 이로써 청년들을 인도하는 것이었다.('그랜드 주석' 예화)"

전도의 한 방편이던 화려하고 편리한 시설들은 자칫 새신자와 교인들의 눈과 귀를 빼앗을 위험이 있다. 복음을 갈구하는 영혼의 외침에 주의를 기울일 새도 없이 말이다.


흥해도 주인 맘, 망해도 주인 맘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에 3천 명이 회심을 한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파했을 때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외쳐 물었다. "우리가 어찌할꼬… (행 2:37)"라고. 이것이 말씀의 위력이다. 성도들의 회심과 전도도 인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심'을 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성장원리요 '비결'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교인 수 늘리기에만 정신을 쏟는 듯 하다. 저마다 교회를 성장 시켜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연구하고 도입하려 든다. 프로그램의 성공이 곧 교회 성장으로 연결되리라는 착각에 사로잡힌 채. 여기서 인본주의 즉,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사람의 생각들이 스며들고 만다. 인간의 논리로는 '흥하면 성공이고 망하면 실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 흥해도 성공이요 망해도 성공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망하는 것을 못 견뎌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전도를 위하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일인데, 어찌 하나님께서 실패 즉, 망하는 것을 주시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흥함을 주시는 하나님만을 안다. 아니, 스스로가 그런 우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성장 프로그램들을 연구해내고 다양한 방법으로 전도를 해도 좋다.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가는 일들도 좋다. 그로 인해 교회가 성장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시작에 있어서도 과정에서 결과에 이르기까지도, 본질적인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뒤에 두어서는 안될 일이다.

서두에 가짜 반지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어느 새 몰입하고 있던 이러한 성장 프로그램들과 그로 인한 효과들은 하나님께서 '더해주신 은혜'일 뿐이다. 그것이 '가짜 반지'임을 명심해야 한다. 가짜 반지를 끼고 다닐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반지라고 착각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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