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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1

 

 

 


 

 

■커버취재

"뭐하러 왔느냐, 우리만 힘들다."

귀순한 북한식량난민들, 베트남 대사관서 '추방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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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어느 착한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을 도와주고, 사슴은 그 보답으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는 연못을 알려준다는 이야기. 사슴이 사냥꾼을 피해 달려와서 나뭇짐 속에 숨겨달라고 애원했을 때 사슴을 숨겨준 나무꾼은, 도중에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지만 선녀를 색시로 맞이할 수 있었다. 이것이 정상적인 줄거리다. 만약 엉뚱한 나무꾼이 하나 있어서, 사슴을 나뭇짐 사이에 숨겨 줘 놓고는 정작 사냥꾼이 왔을 때 사슴이 숨은 장소를 알려줘 버린다면? 그때 사슴은 어떤 기분일까.

 한국대사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13인의 탈북자사건의 전말과 의미

한국 정부가 이 엉뚱한 나무꾼과 같은 일을 저지르고도 반성치 않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11월 9일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이 한국 정부의 '인도'에 따라 중국 땅을 통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귀순해 온 탈북 식량난민들을 그대로 위험한 국경 지대에 버린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지난 1997년 12월 11일자 국내 언론에 공개되었으나 단신으로 그쳤고, 15대 대통령 선거와 IMF에 관심이 쏠려 별다른 여론을 형성하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본 사건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므로 <시사저널>과 <한겨레21>의 기사를 발췌하여 다시 싣기로 한다. 사건의 발단은 사실 올 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올 봄 아사 직전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식량 난민 다섯 가족 13명은 북한 체포조에 쫓기며 7개월에 걸쳐 도피하다 한국 정부의 '유인' 아래 사선을 넘어 수만 리 길을 돌고 돌아 10월20일 베트남 하노이 주재 한국대사관(대사 조원일)에 들어갔다. 대사관측이 19일 동안 이들을 안가에서 보호하다 베트남 내무부에 넘기자 베트남 당국은 다시 이들을 지뢰가 깔린 주변국 국경으로 추방했다. 추방된 탈북 난민 중 남자 1명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하노이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다시 찾아 들어왔고, 또 다른 여자 1명은 인접국 군대에 잡힌 뒤 극적으로 도망쳐 나와 현재 제3국에 은신해 있다. 지뢰밭으로 들어간 나머지 사람들은 현재까지 생사불명 상태이다.(97년 12월 11일자 시사저널 특별취재)]

[이번 사건은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들어섰던 귀순자들을 베트남 정부가 국경지대로 추방해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두 나라간 커다란 외교마찰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정부의 탈북자 귀순허용조처가 표면적인 방침과는 달리 선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97년 12월 11일자 한겨레21 특집기사)]

 

그들은 누구?

탈북 식량 난민 13명(이들도 헌법이 보장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은 97년 1월부터 5월 사이 생존을 위해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서 북한 체포조에 쫓기며 은신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도피와 은신 생활이 그들을 도와 한국행을 주선하던 통일강냉이팀에 의해 국내 언론에 알려져(본지 6월, 7월호에 자세히 보도됨) 범국민적인 북한동포돕기 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에 대한 북한 체포조의 추적을 강화시키는 꼴이 되어, 정작 이들은 더욱 난처한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이들은 통일강냉이팀과 함께 북경에 은신하며 주중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으나,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한 대사관측에 거절을 당했다. 다급해진 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대사관 강제진입을 통보했으나, 한국 정부는 이들에게 제3국행을 권했고 그곳이 바로 베트남이었다.

 

몇 가지 당연한 의혹들

베트남은 사실 적당한 탈출 루트가 아니고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었다. 통과하기가 가장 어려운. 그러나 이들은 '조국'을 믿고 하노이까지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처구니없는 '배신'이었다. 한국대사관은 이들을 줄곧 귀찮다는 투로 대하다가 결국 이들 중 10명을 베트남 정부에 넘겨 지뢰밭으로 쫓겨나도록 방치한 것이다.

김경호 씨 일가와 황장엽 씨의 무사 귀국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국민으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한국대사관은 왜 이들을 아무런 신변 보장도 없이 베트남 정부에 넘긴 것일까? 혹시 외교마찰을 우려한 한국대사관이 임의로 그들을 내쫓은 것은 아닌가? 한국 정부의의 '사전 밀약'이 없었다면 과연 베트남이 이들을 그렇게 취급할 수 있었을까? 단지 의혹으로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 정부의 뻔뻔함

이번 사건은 우선 한국 정부의 주장대로 베트남 정부가 한국대사관과 상의 없이 이들을 추방했다면 이는 베트남과의 국교 단절까지도 고려할 사안이다. 반대로 통일강냉이팀 측의 주장처럼 이번 사건이 한국대사관과 베트남 정부간의 '묵계'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 이는 한국 정부의 도덕성이 문제될 일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한국 정부는 '인명'을 경시한 셈이 된다. 자국민의 안전과 인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저버린 것이다. 직무 유기다. 게다가 추방당한 탈북인 중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대사관은 이들을 추방하는 데 애초부터 협조했다는 것이다.(오른쪽 박스 기사 참고) 결국 이번 사건은 한국 정부의 비인도적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엉망진창인 탈북자 대책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재론될 가치가 있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처음부터 언론 보도를 봉쇄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나 이미 보도는 나갔고, 외무부는 뒤늦게 외교력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뢰밭으로 추방당하지 않은 3명과 살아 돌아온 2명의 난민을 서울로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이어, 지뢰밭에서 실종된 탈북 난민 8명은 전원 '기적처럼' 살아서 중국 최남단 국경 근처 소도시들에 흩어져 있음이 지난 97년 12월 24일 확인되었다. 한국 정부가 비정하게 버린 이들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 필사적인 탈출을 계속하다가, 현지 한국 기업인과 선교사의 도움을 받고 은신 중인 것이다.

분명한 범죄를 저지른 한국 정부는 총력을 기울여 우선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고, 모두 한국으로 데려와야 한다. 그리고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 책임을 지는 자도, 책임을 묻는 자도 없이 그렇게 이 사건을 잊혀지게 한다면, 또다시 이 같은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인권에 무심한 한국 정부

한국 정부에게 '인권'은 '정보'보다 가치 없는 것인가. 정부는 탈북자 귀순을 전원 허용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것에 그칠 뿐, 실제로는 선별 수용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밝혀졌다. 황장엽 씨 망명 사건 때는 해당국 정부와 '총력 외교전'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능력 있는 한국 정부가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 드는 것은 정보 가치에 따라 탈북인을 선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인권'은 그런 것인가. 황장엽 씨는 이번 대선 때 선거장에 나와 한 표를 행사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같은 탈북인인 그들은 지금 생존해 있기는 하나, 조국에 대한 배신감과 북한 체포조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며 몸을 떨고 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황희상 기자(pulitzer9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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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세계인권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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