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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2

 

 

 

 

 

 

  

■ 커버스토리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우던 우리 나라에 해방 이후부터 급격한 개방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세계화', '국제화'의 바람과 함께 교육개방까지 확정시되어 사회의 물의를 빚고 있다. 개중엔 좋은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들이 우리의 정신적으로나 여러 면에서의 혼란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금, 계속적으로 쏟아지는 국적 없는 문화들로 인해 '우리 것을 지키자' 라고 외치다가는 보수주의자로 낙오당하기 십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주체성 없이 변질되고만 있는 우리의 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보수주의자가 되기를 결단한 이들도 극히 소수라는 것이다. 결단보다는 그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크리스천도 별다르지 않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극히 무방비적으로, 변화되는 문화 속에 함께 섞여있다.

패션의 개방은 이 모든 것의 선두 주자였다. 상투를 자르기 시작해서 신체의 노출을 상품화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작년 TV 퀴즈프로그램 중에 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자들을 붙잡고 치마가 무릎 위로 몇 cm나 올라갔는지 자로 재어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에게 그 길이를 맞추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당연히 그 길이를 어림잡아 잘 맞추는 사람에게 점수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나 방청객들도 과연 그 여자의 치마 길이를 맞추는 데만 신경을 썼을까? "다리가 예쁘군" "와! 치마가 너무 짧은데?" 등등... 물론 본 기자 역시 그랬다. 지신의 스커트를 내보이던 여자들에게는 창피한 기색조차 없었고 그저 재미있다는 표정들이었던 게 기억이 난다.

날씨가 점점 더워진다. 초여름치고는 쌀쌀한 날씨인데도 속옷을 능가하는 옷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요즘 들어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거론되는 말은 '을 여름은 작년보다 더 덥다던데 여자들이 어떻게 입고 다닐지 기대된다.'이다. 언제부턴가 광고, 잡지에서 배꼽티를 비롯한 다소 충격적인 패션을 다루기 시작했었고, 그 옷들이 이제는 시내를 장식하고 있다. 처음 그런 옷들이 등장할 때 거세었던 비난의 목소리도 지금은 시들해져 버렸다.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 아닌 이상은 「뭐 그게 어때서?」라는 생각들이다. "일반적인 노출뿐만 아니라 별의 별게 다 나올 것이다. 여자들은 점점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고 싶어하고 그것이 유행이라 하며 마냥 따르는 것 같다. 나도 몸매가 좋아서 당당하게 입고 다니는 여자들을 보면 부 럽기도 하다" J교회 한 지체의 말이다.

교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지체는 "그래도 아직 교회에서 나시는 봤어도 배꼽티는 못 봤다"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나 '언젠가는 교회도…' 하며 근심 어린 표정이 가득하다. 작년 (부질없는 소리) 두 번째 호에서 광주중앙교회 손성만 목사의 "노출은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따라서 범죄를 유발시킨다. 이는 사탄적 행위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분명한 죄악이다" 라는 말씀에 반발하는 젊은 크리스천들이 많았다.

가만히 있어도 덥기만한 여름이 온다. 이맘 때 주일 아침이면 우리 기독 젊은이들은 으레히 옷 때문에 고민이다. "평소대로 반바지에 샌들을 신으면 안되겠지?" 그리 짧지 않은 반바지라도 괜히 신경이 쓰인다. 성경적인 기준 또한 없기에 더더욱 혼란스럽다. 여기에서 우리는 옷을 입는 목적을 살펴보아야 한다. 처음에 어떻게 옷을 입게 되었는가. 창세기 3장에는 죄를 지어 자신들이 벗었음을 알고 숨어 있던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게 나와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가려 부끄러움을 면하라고 손수 옷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내보이기에 힘쓴다. '어떻게 하면 좀더 아름답게, 많이 보일 수 있을까'이다. 옛날에는 수치심에 속했던 그것이 지금은 '섹시함'으로 탈바꿈하여 하나님과 반대되는 개념의 노출 문화가 사회의 조류라 하며 우리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지금 우리는 여성의 신체 부위가 공공연히 노출되는 영상과 의복들에 왠만해서는 충격 받지 않을 만큼 익숙(?)해져 버렸다. 「유행」 이라는 강적 앞에 "남들도 다 그러니까" 라는 생각으로 무뎌져버린 걸까?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딤전 2:9) 라는 말씀은 패션에 민감한 이 시대의 청년들에겐 그리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남들 다하는데 뭐 어떠냐, 어울리기만 하면 괜찮다, 편해서 입는다, 유행에 뒤떨어지기는 싫다, 보기 좋은데 왜 그러냐...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입지 말라"는 성경 말씀은 다소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 느껴진다.

사회 유행심리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우리의 패션문화는 나의 옆 지체를 외모로 판단하게 만들고, 사치와 향락으로 이끌어 육적·영적인 간음까지도 초래한다. 나의 옷 입은 모습을 보고 상처 입을 이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크리스천들이 사회의 문화에 뒤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 생각하여 될 수 있으면 튀고 화려하게가 아니라, 깨끗하고 단정하게 그러면서도 나의 개성을 살려 하나님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면 옷을 입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게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변하기만 하는 이 사회의 패션문화에 당당히 하나님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양심의 칼날을 세워야 한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글 : 조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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