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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2

 

 

 

 

 

 

  

■ 커버스토리


 

인간사회에서 유행에 가장 민감한 부분은 패션이다. 겉옷은 물론 속옷에 악세사리까지도 유행에 의해 모양, 색상 등이 바꿔다. 성의 개념이 다변화되고 패션의 흐름도 국제적인 요즘은 몸을 보호하는 기능보다는 예술적인 개념이 더 큰 듯하다.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남녀 할  것 없이 지나치게 신체를 노출하는 모습은 매스컴에 오르기 쉽고 성범죄의 증가 또한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70년대 윤복희씨가 유행시켰던 미니스커트의 출현은 가히 그 당시 사회에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너무나 일반화되고 오히려 더 짧아진 초미니스커트가 나오게 되였다. 작년에는 배꼽티류의 옷들이 유행하여 유행을 좇는 자들에게는 '노출'이 더욱 확산될 수 밖에 없었다. 미니스커트가 이제는 당연시되어 패션의 한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배꼽티, 나시, 속옷 같은 겉옷 패션의 옷들이 몇 년 후면 버젓이 일반화 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과연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떤 고민을 할까. S대에 다니는 한 자매는 의상학과에 다니고 있다. 그의 고민 중에 하나는 세상 것과 하나님의 것을 두고 갈림길에 서있다. 자신이 그 계통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유행에 맞게 파격적인 패션을 구상해야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크리스천이라는 양심 때문에 세상 것을 따라가기엔 너무나 힘이 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패션쇼를 보자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옷들이 최고의 유행패션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체는 학교에서는 짧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겠는데 교회에는 왠지 꺼려져서 바꿔 입고 올 때가 많다고 한다. 크리스천의 이중적인 모습이 패션에 의해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렇게되면 크리스천은 언제나 패션에 뒤떨어진 옷만 입고, 촌스럽다는 소리만 들어야 한다. 어떤 지체는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런 옷을 왜 입지 못하는 것이냐, 왜 자꾸 세상과 분리시키려 하느냐"며 반발하기도 한다. 진정 크리스천은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고 버려야 하는 것인가.


행위와 마음이 다 경건해야 한다

옷을 입을 때는 마음에 품은 자세가 중요하다. 자신이 옷을 입을 때 거리낌이 있다면 입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더라도 그 모양이 경건치 못하면 문제가 된다.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교만하고 영적 간음을 하는 모습을 벌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아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사 3:16-17) 유다 백성을 비유하여 말씀한 것이지만 정을 통하는 눈과, 발목 등 여러 곳에 장신구를 달아 똑바로 걷지 못하고 쟁쟁한 소리를 내는 경건치 못한 모습에 주님께서는 욕을 당하게 하 심으로 징벌하셨다. 인간은 자기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아무리 양심에 거리낌없이 예배당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왔더라도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지체들이 상처를 받는 다면 그것은 분명 죄이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지체를 보고 다른 지체가 잠시나마 마음  속으로 나쁜 생각을 하게 된다면 영적 간음을 하게 한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음흉한 생각을 한 것도 죄를 지음이니 죄를 짓게 한 자 또한 죄인인 것이다.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고 자신만 괜찮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바꾸어야 한다. 옷은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존중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경북 서부교회의 흥만조 목사님의 설교 중 일부이다.

"옷이라는 것에는 상당한 허영이 있습니다. 사실 옷은 나 자신에게 보이기 위하여 입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 자신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목사된 탓에 할 수 없이 제가 넥타이를 늘 맵니다만, 한창 더운 여름에는 이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목사 가운을 입으면 한증막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것이 봉사입니다. 사실 굉장한 봉사입니다. 내가 입은 옷은 어차피 내가 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단정한 옷차림이라는 것이 나 자신한테는 얼마나 불편합니까? 앉고 서기가 얼마나 거북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옷을 단정하게 입어야 합니다. 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이것이 잘못되면 지나친 허영, 쓸데없는 관심으로 흐릅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아줄 까'하는 데에 너무 신경쓰고 그것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판과 명예와 관심을 추구하고 그것이 지나쳐서 허영으로 거짓으로 위선으로 빠지게 됩니다."

목사님은 단정하게 옷을 입는 것이 남을 위한 봉사라고 하셨다. 옷을 입는 것이 자신보다 오히려 남을 위한 것이라는 데 에 옷의 의미를 더 둔 것이다.


옷은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가 아니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몸을 드러내려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좀 더 몸을 드러내야만 예뻐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고 여긴다. 옷을 입는 것이 남을 유혹하는 한 수단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이다. K자매는 전혀 그런 옷과는 거리가 멀게 입고 다니지만 가끔은 나 혼자 퇴보해 가는 듯한 생각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주위 사람들의 영향도 크다. "너도 미니스커트 좀 입고 그래라. 그게 뭐냐?", "○○야 너도 유행에 맞춰가며 살아라. 촌스럽게 다니지 말고." 등의 말들이 자매를 부추긴다.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옷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서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약2:3-4)성경에서도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기를 권면한다. 화려하고 세련되고 혹은 속된 말로 섹시하게 입은 사람들에게는 왠지 호감이 가지만 소박하고 왠지 털털한 듯 입은 사람들에게는 말을 건네기가 쉽지 않다. 심한 경우 내 옆에 냄새나는 더러운 옷을 입은 자가 와서 앉는다면 인상을 찌푸리고 퉁명스럽게 대하거나 자리를 옮겨버릴 것이다. 이미 마음속에 겉모습만 보고 저 사람은 사귀면 좋은 사람, 안 좋은 사람, 절대 피해야 할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영적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저 겉모습에 점수를 더 주는 행동은 없어야 한다.


세상 흐름을 고려한 구분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추구하고 선호하는 것들이 점점 교회에서도 일반화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교회도 예전처럼 거의 세상적 흐름과 담 쌓고 살고 있지는 않다. 또한 교회가 세상을 이끌고 나아가려면 그러해서도 안된다. 세상은 최첨단의 시대를 나아가고 있는데 교회 안에서는 '세상 것은 모두 악이다'고 철저히 문을 닫고 산다면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들을 이끌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한 수용은 주일 성수하는 예배당이 알록달록하게 물들인 형제들의 치렁치렁한 머리스타일이나 해수욕장을 방불케 하는 자매들의 옷차림의 결과를 낳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세상과의 완전한 구분이 아니라 흐름을 고려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 성경에서 보면 사람들은 의복으로 개인의 인품, 신분, 지위 등을 나타냈다. 그 중 제사장의 의복을 보면 상당히 엄격하고 까다로운 형식이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도 거룩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옷을 입었다. 시대가 많이 변하여 그 때처렁 까다로운 형식에 따라 갖춰 입고 예배를 드릴 수는 없다. 모든 성도가 정장을 입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면 가난한 자는 교회에 와서 예배도 드릴 수 없게 된다. 교회의 문턱은 낮아야 하는데 그 문턱을 형편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만 넘을 수 있다면 이미 교회가 아니다. 자기 형편에 맞지도 않는 사치스런 옷 보다는 형편에 맞는 옷을 깨끗하고 예의에 맞게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구태여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형식에만 너무 치우치다 보면 마음 자세가 흐트러지게 된다. 예배드릴 때는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형식에 너무 치우치다 보니 다른 곳에선 입고 다니던 노출이 심한 옷들이 교회에 올 때는 망설여진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사회에서는 되고 교회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하루하루의 삶이 예배가 되 어야 하는 크리스천으로서 교회 밖에서는 구별되지 못하고 세상 것을 따라간다는 결과이다.

잘못된 부분들이 산재해 있는 사회와 당연히 구별되야 함은 사실이며 그 구별은 교회에서만이 아닌 사회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위적인 옷 모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선한 행실과 의로 짜여진 옷을 입는 것을 더 원하실 것이다.


글,인터뷰 : 문지희(
jihee21@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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