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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취재Ⅲ 전남대 후문 앞 토큰박스 운영하는 추병만 아저씨
10살이 되던 해 겨울. 뒷동산에서는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로 시끄럽기만 했다. 집안에는 부축할 아무도 없었지만 마음은 이미 뒷동산으로 향했다. 그래서 그는 기어서 동산을 올라갔다. 아이들은 저마다공차기, 재주넘기들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그에게는 '천국'이었다고 회상한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때 저녁이 되어서 아이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고 텅빈 동산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 때 그는 외로움에 빠져 버렸다. "왜! 왜! 난 뛸 수가 없을까" 하늘을 향해 소리쳐 보고 애원도 해보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까?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했을까?'하는 생각이 그를 휩쌓다. 그 때 어머님의 부르심같은 소리에 그는 저도 모르게 두발에 힘을 모두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렇게 한이 되었던 '걸음'을 우연히, 아니 필사적으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그는 집에서 걷기 운동을 했고, 다리는 안으로 휘어져 정상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걸을 수가 있었다.
빛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 그가 19살이 되던 해. 한 성도님의 전도로 기독교라는 종교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즈음 교회를 다니던 여동생도 자꾸만 교회에 나가길 권했다. 교회 사모님과 몇몇 성도들은 그의 집을 방문하여 좋은 말씀과 함께 교회에 대하여 따뜻하게 일러주고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스물 두 살이 되었다. 어느날엔 전도사인 마을 선배 한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나면 소망이 넘치며 두려움은 사라져 마음에 평안이 온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없냐고 묻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믿겠다고 불쑥 대답하고 말았다. 교회 마룻바닥에 신을 벗고 올라서려던 그는 순간 멈칫 했다. 어릴 적부터 비틀린 손과 다리를 내보이기 싫어 길을 걸을 때도 어두운 밤 시간만 이용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남들 앞에서 신발을 벗기란 고역이었다. 그러나 교회에서 접하게 된 말씀들은 그동안 어둡고 외롭게 지내온 그를 감싸주었다. 육체는 고달파도 그의 마음은 천국처럼 살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예배란 예배는 거르지 않고 나중에는 아동부 선생님과 성가대, 그리고 청년부 활동도 하다보니까 차차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럼도 가시게 되었다.
검정고시와 싸운다
또한 그는 전대생들 못지않게 '공부'도 한다고 하셨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어른이 되니 다른 사람들처럼 일이 하고 싶더라구요. 하지만 손이 이래서 힘든 일은 못하니까...그래서 컴퓨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 2년동안 학원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자격증은 못 땄어요. 93년도 5월달에 자격증이 없어도 된다는 화순의 모회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학령이 없어서 채용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 후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검정고시를 통해 94년도엔 초등학교, 작년엔 중학교에 합격했어요." 올 8월달에 고등학교 시험이 있었지만 아깝게도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대해 그는 "국민윤리, 과학, 기술 세 과목만 남았는데... 역시 공부를 안했더니 안됩디다."하며 기분좋게 웃어버린다. 고등학교를 합격하고 나서의 생각을 물었더니 그는 당연히 수능도 보겠다고 한다. 그에겐 대학생의 꿈이 있다.
토큰박스 이야기 토큰 박스는 후문 앞과 버스 정류장 사이에 놓여 있어서 학생들이 토큰을 구하는 데 가장 편리한 곳이기도 하다. 이 토큰 박스가 한 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4년 전에 후문 앞 환경미화를 위해 철거작업이 있었던 것이다. "밀알 선교회라는 동아리 학생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마침내 총학생회의 허락을 받아냈죠. 이 박스는 밀알 선교회 측에서 빌려주었구요. 원래는 1년 정도만 지낼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4년이나 지나 버렸습니다." 아저씨는 이른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에 토큰 박스의 문을 연다. 그리고 저녁 9시에 문을 닫고 광주 변두리에 있는 집으로 향한다. 하루종일 학교 앞에서 있자면 오다가다 친해진 학생들이 있을텐데 그 질문엔 고개를 저으신다. "없어요. 옛날 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교회 밖에서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을 하던 박스 안의 표정은 그런 이유에서인가 보다. 학생들을 상대하면서 가끔 속이 상할 때도 있다. 만 원 짜리 한 장을 주면서 토큰 하나만 달라고 하는 이들, 혹은 저녁에 술을 마시고 박스 옆에 버젓이 음식물들을 토해놓는 학생들이 있단다. 그는 시를 곧잘 쓰곤 한다. 70년대 후반 부터 취미 삼아 써온 시들을 교회의 청년부나 중고등부에 내보이기도 한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지만 쓰다보니 다른 유명한 시들과 비슷할 때가 있어 베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그가 시에 대해 가진 애착들을 방해할 순 없었다.
마음의 건강을 아십니까? 아저씨의 교회 생활은 즐겁기만 하다. 교회에서 아동부 교사를 맡은 아저씨를 보며 철없는 아이들은 으레 골려대기 일쑤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이들이 오히려 아저씨의 속을 더 알아주고 챙겨준다며 아저씨는 연신 듣기좋은 웃음소리를 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좌절감도 없다. 공부도 일도 작지만 하나하나 일구어나가는 보람이 있다. 그는 말한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그와 항상 동행하시고 늘 함께하시는 분이라고. 그래서 그의 마음은 늘 평안하다. 집에 갈때도 혼자 길을 걸을 때도. 특별히 그는 저녁예배를 위해 집에서부터 교회로 30분 가량 걸어나가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 때만 되면 왠지 마음이 환해지고 굳건히 기댈 수 있는 주님 때문에 설레임에 젖는다. 우습게도 예전에 그 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걸음을 연습했던, 밤마다 두렵고 창피한 마음으로 걸었던 길이었던 것이다. 그는 참으로 마음에 강건함을 얻고야 말았다. 아저씨께서 중고등부 소식지에 싣었던 간증문을 보면 그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 당신들은 마음의 건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라고.「오늘은 힘들고 고되어도 내일은 빛과 소망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는 말씀과 같이 여러분 곁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당신은 왜 무엇 때문에 주저하시고만 계십니까? 오늘밤 별을 헤어 보십시오. 어두운 밤에도 빛나고 있는 별. 우리는 하나의 별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의 별이 모이고 모여 둘 셋을 이루어 어두움을 밝히는 빛나는 소망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서로 작은 빛을 밝힙시다. (간증문 중에서)」그의 육체는 오늘도 여전히 고달프기만 하다. 하지만 마음만은 천국임을 그는 자랑스레 고백한다. "이제는 결혼하셔야죠?"라는 짖궂은 물음에 "기도하고 있지만 안들어주시는데 어쩝니까?"라며 겸손하게 미소짓는 추병만 아저씨. 그의 등 뒤에 하나님의 웃고 계시는 듯하다. 취재·글 : 정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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