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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28

 

 

 



 

 

■커버진단I

보이지 않는 바벨탑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신과학의 기류에 대한
어느 젊은이의 과대망상"

신.기.정가을비 내리는 어느 오후, 한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와 절친했던 그는, 뜻밖에도 기(氣)에 심취되어 있었다. 우리는 오랜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그를 통해 기(氣)에 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친구는 정확한 것을 좋아한다. 아는 것도 많은, 게다가 곧은 성격이라서 상대하기 힘든 어른들과도 논쟁을 벌이곤 했다. 그렇게 냉철하리만큼 이성적이던 그가 기(氣)에, 그것도 그저 취미로가 아닌 '심취'의 수준에 가 있다는 것에 적잖게 놀랐다.

그는 내 앞에서 기(氣)의 세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펼쳐나갔다.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는 '사랑'이라는 호칭을 그는 기를 향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를 스스로 조절하는 훈련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화된 기운을 타인들에게도 나누어주고자 한다. 소위 '축복'의 자세까지 갖게 되었다.

그는 많이 변했다. 그의 성격은 온유해졌고 신경성으로 통증을 느끼던 위와 장도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기(氣)를 알고 난 후 자신이 갖게된 기쁨을 나누어 주려했다. 그렇다고 학교 생활에 남보다 소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교우 관계는 더욱 좋아지고 공부나 작업에 몰두할 때도 예전과 다르게 개운한 정신으로 일할 수 있어 '너무 좋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 친구는 인터넷상의 자료까지 소개해 주었다. 거기에는 '신과학(New science)'에 대해 엄청난 분량의 자료가 쌓여있었다. 신과학이라는 흐름이 기의 뒤편에서 탄탄한 받침대를 구축해나가고 있음을 알게된 나는, 기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신과학(New science)의 태동

물질.의식.에너지의 교환신과학은 1970년대 들어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신과학을 신봉하는 학자들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물질과 에너지의 개념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뉴턴 이후의 물리학은, 과학적 법칙들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의 현상들과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사건들을 지금까지 철저히 무시하고 배제해 왔음을 말이다. 그 '잃어버린 변수'들을 증명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신과학이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오던 과학기술은 서구의 환원주의적 철학에 바탕을 둔다. 물체의 운동 과정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사고 아래서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미분법적'인 사고가 어떤 가치 판단의 바탕이 의식·물질·에너지가 교환된다는 주장. 그러나 지금까지 과학의 기반은 '물심(物心)이원론'이었다. 오른쪽 그림은 아인슈타인의 핵 에너지와 일본의식공학회 회장 이노마슈지의 절대론을 설명한 것.

되어왔던 것이다. 이 같은 분석적 사고의 틀 아래서 사람들이 어떤 현상에 대한 법칙들을 세워 나갈 때는, 일정한 법칙 안에 넣을 수 없는 '변수'들이 발생하곤 했다. 예를 들어 의학 분야에서 발견된 변수는 치료 중에 발생하는 마음의 영향력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치료법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변수가 발견된다면 병의 치료에 엄청난 유익이 미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 왔다.

이러한 흐름 아래, 이제 기(氣)는 신과학이 말하는 '변수'의 일종으로 인식되어 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동을 비웃는 신과학

신과학자들은 기존의 사고체계로는 이와 같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역설한다. 기존 체계가 미분법적 사고였다면 이제는 적분법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기존 과학이 가진 패러다임에 비추어볼 때 '파격'에 가깝다. 그러나 이미 신과학은 그 세력 확장에 점점 힘을 더하고 있다. 신과학이 대두되면서, 설명할 수 없는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의 과학체계 만을 부여잡고 복지부동의 자세를 취하는 기존 과학자들은 도리어 지탄받고 비웃음을 사는 대상이 되어간다.

초자연적인 사건들과 변수들을 밝혀보겠다는 움직임은 어찌 보면 창조주의 능력을 발견키 위한 새로운 방법의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창조론'처럼 조물주에게 영광과 경외를 돌릴 수 있을 좋은 '기회'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크리스천들은 그 흐름을 주도하지 못한 듯 보인다. 지금, 신과학의 끝은 '무신론'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음을 본다.

 

한 젊은이의 과대망상

인터넷상의 자료들과 논문들을 읽어나가면서 문득 두려움마저 느낀다. 이렇게 나간다면 기존의 과학체계가 서서히 그러나 획기적으로 바뀌어질 것이라는, 그래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존 과학 체계 아래서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끈질기게 부정했던 '진화론' 때문에 생겨난 갖가지 의심들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했던가. 그러나 신과학의 논리로 바라보자면 그것은 한 시대의 과학체계 전반 중 '한 줄기'에 불과했다. 신과학이 초래하는 시대에는 과학·사고 체계 '전반'이 기독교적 세계관의 적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때 우리 기독인이 겪게될 험난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운 상상을 차마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어느 젊은이의 과대 망상일 뿐이다!??!

 

잠시 잊어버린 은총

우주의 기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오히려 인간의 한계는 더욱 부각되었다. 신과학의 태동을 계기로 삼아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보다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이 계시하신 세계를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 영역의 흐름을 기대할 수 있었다. 신과학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 의해 자꾸만 무신론을 향해 치닫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기회를 이끄는 입장에 서지 못했던 우리의 나태함을 자책해본다. 그리고 교회 밖 일은 무조건 세상적이라고 구분하면서 "에비∼!"하고 겁이나 주는 수준에 그치는 교회 교육 현장을 돌아본다.

지금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의 흐름들을 그저 스쳐보내지 말자.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건, 이원론적인 사고이건 가치 판단력 상실에서 오는 무관심이건 간에 우리는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본질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지혜'라는 은총을 너무 오래 덮어둔 나머지 잊고 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정설 기자(pulitze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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