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et The Voice Logo

 Voice21 No.28

 

 

 



 

 

■커버논단

기와 영성훈련

 

남의 눈에 '티끌'이 보이기 시작할 때는 그것을 정죄하고 판단하기 앞서 자신에게 있을지 모를 '들보'를 살펴야 하는 법이다. 기(氣), 그리고 그 배후에서 용암처럼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신과학(新科學)의 위협을 더 이상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된 상황, 인본주의와 뉴에이지 문화의 마력이 극대화되어 온갖 미끼들로 인간을 교묘히 미혹하고 있는 세기말적 현 상황에서 우선 우리 크리스천의 자아성찰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주장은 단순히 '이단성' 발언만은 아니다.

자아성찰의 방편으로 <TheVoice>가 '영성(靈性)훈련'을 선택한 것은 커버스토리 도입부에 제기한 위험성이 이 안에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영성훈련 안에서 인본주의와 지나친 경건주의로 인한 이원론의 경향들을 찾아내는 것은 어찌 보면 필요 없는 '자해(自害)'일지도 모른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의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내용을 다루는 것은 바늘구멍이댐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 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나은 영적 생활을 추구하며, 신령한 신앙인으로 성숙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양한 사상과 논리로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고 신앙을 미혹하는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종교개혁자들의 '영성'을 이어받아 훈련을 계속하는 것은 적극적 신앙의 모습으로, 어쩌면 크게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 교회분열, 물량주의에 더럽혀진 교회, 공동체 개념의 파괴,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의 편만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가 21세기를 기약하기 위해서는 '영성훈련'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런데 기(氣)수련과 영성훈련을 조금 삐딱하게(?) 놓고 보면, 이들이 참으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그 자체를 하나의 우주적 존재로 보고 그 안에 내재된 잠재력을 과대평가 하여, 결국 신을 부정하려는 것이 기의 모습이다. 신앙으로 나를 단련하여 영적 전쟁에 나갈 군사로 훈련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인가라는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수련하는 것이 오늘날 영성훈련의 모습이다. 이는 다만 외형적인 유사만은 아닐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영성 및 영성훈련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성경적 모순'들을, 기(氣)수련과 영성훈련이 어떻게 닮았는지를 앞부분의 내용과 비교하면서 살펴볼 수 있도록 어설프게나마 지적해 보았다. 맹목적으로 영성훈련에 임해왔던 우리의 들보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관련기사
 

 

기와 영성훈련, 동공이곡(同工異曲)

 

미래의 행복이 된 기

 

보이지 않는 바벨탑인가

 

영성훈련에 갇혀있습니까?

 

자! 우리가 하늘까지 닿는 영성훈련을 해보자!

 

 


Copyright(c) 1997, Voice21. But All right not reserved.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REVELATION 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