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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4

 

 

 

 

 

 

  

■커버 진단

비평으로서의 나의 입장

단행본 '새들백 교회 이야기'를 중심으로


새들백 교회 릭 워렌 목사의 치밀한 구상과 세심한 배려와 준비 등은 아주 고무적인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심리와 필요에 민감함으로 모든 것을 거기에 중심을 두었다. 예배의 순서와 분위기, 음악을 선정하는 것, 설교, 그리고 예배당의 분위기와 주차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점에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다만 우리에게 분명히 우선되는 것은 이러한 방법적인 모색이 아니라, 신학의 확고한 전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백된 성경 해석과 교리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와 지식이 필요하며, 흔들리지 않는 확신 또한 필수적이다. 실제로 이것이 없이는 쉽게 타협해 버리는 그러한 우를 범하기도 할 것이다. 개혁 신학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새들백 교회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모델들을 통해서 아주 건전하게 추구될 수 있으며, 유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이 교회가 제언하는 모든 요소들은 교회가 세속화되는데 크게 일조를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구도자 예배, 가능한가

예배를 통한 전도나 음악을 선정하는 것이나 설교하는 것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열린 예배와 아주 흡사하다. 열린 예배의 취지는 아직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고 친구 권유 등에 의해 한번쯤 교회에 나와 본 사람들에게 교회에 대해 거리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고 예배와 교회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예배에 사용하는 용어도 가능한 한 신자들만 아는 것들을 피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쓰고, 음악도 너무 시대에 뒤떨어져 일반인들에게 이질감을 주는 것보다는 누구나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도와 시도라면 거기에는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에게 복음 전도의 예비 단계로서 신경을 써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가 구도자들이나 방문자들을 의식하고 선교적 마인드를 표현한 것이 열린 예배라면 그것은 필요하고 당연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새들백 교회에서의 예배는 구도자 중심적이며, 예배라 하기보다는 전도집회에 가까운 것이다. 원칙적으로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구원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헌신과 충성, 그리고 순종을 표현한 것이다. 당연히 일반적 예배는 주로 기존 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가장 중요한 기능들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는 기관이다. 따라서 교회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게 전도하는 교회라면 매주 예배에 새로운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며, 그렇게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즉 전도하는 교회의 예배에는 그것이 꼭 복음 전도 집회가 아니라 하더라도 전도적 기능이 완전 배제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는 새 손님이나 방문자, 소위 구도자로 불리는 사람들도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 그들이 불필요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교회는 일반 단체들과 달라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라는 부제목이 붙은 '새들백 교회 이야기'는 우선 그 교회가 불신자를 전도하고자 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예배는 분명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집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한 요소라도 이러한 목적에 누를 끼치거나 어긋나게 한다면 그러한 요소들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예배의 갱신이라 했을 때 그 한계선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새들백 교회에서는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께 두기보다는 사람에게 더 민감한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저자는 그렇다고 하지 않는다.) 예배가 온통 구도자를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민감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느냐를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갱신하고자 하는 예배의 모든 요소들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그 근거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소개한 교회와 예배의 형태에 대해 조목조목 언급한 내용들은 거의 경영 원칙과 다를 바 없는 그러한 것들이다. 아마 이러한 책은 성공하기 위한 판매 전략이나 세일즈맨에게 필독을 권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상당히 호소력이 있고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그러한 설명들이 '과연' 교회와 예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개혁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데 양보할 수 없는 분명한 표지가 있다. 그것은 (1)말씀의 바른 선포, (2)성례의 바른 집행, (3)권징의 바른 시행이다. 이러한 분명한 표지를 중심 축으로 해서 교회와 예배의 갱신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결코 시대의 조류나 교회의 부흥의 목표라는 그러한 관점으로만 교회와 예배의 갱신을 부르짖고 적용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주님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데 있어서는 인간의 번뜩이는 재치로 다스릴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엄밀하게 성경적이어야 하며 신학적이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라 믿는다. 그러한 면에서 목회는 전통적이어야 하되 진부하고 단편적인 모습의 형태로 드러나서는 안될 것이며, 변화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개방적이되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배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여기서 예배에 대한 본인의 제언을 하고자 한다. 원칙적으로는 전통적인 요소들을 그대로 받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요소들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확고한 의미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성경 전체의 1/3이 예배와 관계된 교의라는 점을 볼 때에 그렇고 또한 이스라엘의 흥망성쇠와 예배와의 관계를 볼 때, 예배가 중요함을 잘 알 수 있다. 이 예배는 신자들의 삶의 원천이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예배는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데에도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배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그 예배를 받으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므로 경건하며 엄숙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드려져야 하기에 인간 중심적인 예배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찬송에 대해서는 예배 시에 불러야 할 찬송을 선별해서 부르되 정확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서 부르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예배 전이나 후에 예배 시에 부를 찬송을 바르게 부를 수 있도록 찬송을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찬송의 곡이 너무 야하거나 세속적이지 않으며, 가사의 내용도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것이면 예배 찬송이 될 수 있다. 현대성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주일 예배에 사용될 찬송가라면 현대성과 함께 경건성과 무게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 경박하고 피상적인 종교적 정서를 표현한 곡은 곤란하다. 예외도 많지만 어떤 복음성가들이 그러하다. 품위와 무게, 혹은 경건성이 떨어지는 가스펠 송들은 비공식적 모임이나 개인용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온 회중이 모인 예배용으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요즈음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빠른 템포의 많은 찬송가 중에는 현대적이면서도 고상하고 수준 있는 음악성을 가진 찬송가들도 많으나 상당수는 너무 얄팍하고 심지어 세속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는 현대적이면서도 품위 있고 경건한 찬송가를 많이 만들어 쓰는 것이다. 현대인의 종교적 정서를 음악으로 묘사한 격조 있는 곡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곡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예배 시간에 불러질 때 예배가 살아있고 감동적이 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설교는 그 근저에 신학적인 분명한 지식이 있어야 함이 자명하다. 특히 조직신학에서의 교리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이는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설교한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교를 졸업하더라도 2∼3년간의 학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나 자신도 졸업 후에 그렇게 진로를 설정하고 있다. 근간에는 설교의 내용보다는 어떠한 형식과 스타일을 찾는 모습으로 그 중요성을 찾는데, 무엇이 과연 먼저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형식이나 스타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설교의 내용이 가장 중요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설교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며 확실한 것이다. 본문이 주는 분명한 내용을 전할 뿐 아니라 그것이 주는 교훈을 바로 전해야 할 것이다. 설교 시에는 원고를 정리해서 그것을 인쇄물로 나누어주어서 설교를 듣게 하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해 본다.

예배의 형식은 교회의 형태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예배는 신앙과 신학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신앙과 신학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어떤 유형의 예배 형식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신의 신학과 교회관을 따라서 할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과 교회관을 가진 목회자가 다른 신학적인 견해를 근거로 하고 있거나 그것을 대변하는 예배 형식을 무분별하게 따르는 것은 옳지 않다. 예배의 갱신은 교회의 전통과 신학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신학적인 명분이나 설명 없는 예배의 갱신은 예배의 맹목적인 수정일 뿐이며, 그것은 신학의 수정을 초래한다. 예배 형식의 갱신이 반드시 생동성 있는 영적 예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예배가 우리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진정한 예배 갱신은 우리의 삶의 갱신과 개혁을 포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 형식의 갱신에는 삶의 개혁이 동반되어야 하고 밑받침되어야 한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삶의 중심이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갱신은 우리의 삶의 갱신을 유발하고 주도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삶의 갱신이 있을 때 예배의 갱신은 증폭된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는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다같이 참여하고 감격과 고통 속에서 예배할 수 있을 것인가를 부단히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 겨우 설교만 준비하여 정해 둔 예배 순서에 끼워 맞추어 예배를 인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예배 인도자는 예배의 모든 순서에 정성을 쏟아야 하며, 찬송을 택하는 데도 경우에 따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설교를 위한 원고를 작성하듯이 기도를 위한 기도문의 원고도 작성한다면 유익할 것이다. 전통적인 예배 형식을 따라 예배하더라도 허용된 범위 안에서 예배의 형식에 변화와 새로움이 깃들이도록 노력해야 하며, 성령께서 참신함을 불어넣어 주셔서 회중이 감격과 감동 속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언제나 애써야 할 것이다.

 

에필로그

결론적으로 우리의 작업이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늘 성경적으로 개혁을 항상 하는 것'이다. 어떠한 좋은 구상이나 제안들을 무조건 마다하는 것보다, 또 그것이 실제적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그것이 얼마나 성경적이며 신학적인가를 늘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11:36)


김남진 전도사 / 합동신학대학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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