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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4

 

 

 

 

 

 

  

■커버 특별기고

21세기를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21세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인은 누구나 다 계획을 가지고 있다. 계획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계획이 어떤 계획이며 무엇을 목표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계획 대부분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짜여진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으로 적당히 포장한다. 목회자들에게는 목회자들 나름대로, 신자들에게는 신자들 나름대로 앞일에 대한 고민이 있다.

'새로운 목회 계획은 없는가?' 하는 것이 목회자들에게는 날마다의 숙제가 되고 있다. 이런 고민에 조금이라도 부응하려는 듯이 연말과 연초를 기해서 유행하는 프로그램이 기독교계의 신문을 가득가득 장식하고 있다. 새로운 목회 계획 프로그램들이다. 일년 설교 계획 세미나, 교회를 부흥시키는 각종 프로그램 계획 세미나.... 마치 신선하고 참신하면서 완벽한 목회계획이 문제없는 교회로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성장의 기폭제가 되는 것처럼 인식된다. 특별히 요즘 유행하는 말이 "그리스도인으로서 21세기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21세기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목회 계획이 이루어진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요, 낙후된 목회자로 치부하는 것 같다. 미래를 대비함으로 적어도 내일에는 힘있는 자로 살고자 하는 심보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신자의 삶이란, 계획을 세워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저쪽에서는 이런 성경 말씀을 들어 대답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그들은 이 말씀을 이렇게 오해하고 있다. 우리가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은 해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뜻이란다. 그래서 인간이 세워야 할 계획은 철두철미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람이 계획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그런 의미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인간이 원하는 길이 평탄하도록 하나님께서 잘 보살펴주고 인도해 주신다는 보장이 없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한 개인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왜냐하면 민족을 살리고자 하는 일에 열심 있는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살해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관심은 그의 아들에게 있고,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구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성경을 보고, 내가 미래에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로 성경을 펼치고 있다. 그것이 죄악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담이 불순종 이후부터의 역사와 같이 한다. 이런 점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은 사람의 계획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대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잠언의 말씀에 좀 더 나가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 사람이 아무리 빈틈없는 계획을 수립한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이다. 우리의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계획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죄인의 계획을 거부하신다.

인간의 종교 생활은 누구나 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자란, 나의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니, 나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도록 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한다. 구원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로 베풀어진 은혜이다. 그러기에 살아 있다면 그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살게 된 존재고, 그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앞일에 대한 계획이라는 것도 어떤 것을 이루어 내겠다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목표가 되고 주님이 나의 방법이 되는 계획(?)이어야 한다. 그 말은 인간에게 무슨 계획이 있든 없든 예수님만으로 만족한다는 말이다.

신자의 삶은 '21세기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하는 삶이 아니다. 단 일초 후의 일도 모르는 주제에 21세기를 어떻게 대비한단 말인가? 주제넘게....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 21세기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하는 말은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신자라면, 앞일을 대비하려고 하는 자세가 아니라 주님을 믿는 자세로 그분이 모든 말씀을 성취하신 십자가 앞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대비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 안에 있는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 자체도 우리에게 대비하라는 차원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 자기 백성들을 결국에는 예수님의 재림의 자리에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맡겨질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매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그분이 시키는 것을 따라 죽음으로 자신을 내모는 삶이 되면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다. 그것은 날마다 과거와의 단절이고, 미래에 대하여 대비하는 삶이 아니다. 마태복음 6장 33, 34절에서 말씀하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김영대 목사 / 경기도 시흥시 주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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