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잘팔리는 캐롤 -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하다 종이 울리고 장단맞춰서 흥겨웁게 소리치며 노래부르자!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우리 썰매 빨리 달려 종소리 울려라 -
성탄절이라는 대목에, 캐롤은 상인들의 수입을 한 몫 단단히 챙겨주는 귀염둥이다. 캐롤송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징글벨","빨간코 루돌프","울면안돼","White Christmas"," I Wish You a Merr-y Christmas"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이같은 캐롤들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캐롤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시공을 초월하여 사랑받는 대중가요(?)이며, 또 하나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나 성탄의 본래 의미와 아무 상관없이 불리워 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캐롤은 과연 예수와 아무 상관이 없는가? 캐롤은 본래 교회의 절기 때마다 부르는 모든 노래를 일컬었지만 특별히 크리스마스 노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캐롤 중에는 천사들의 노래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역사상의 첫 캐롤을, 천사들이 하늘에서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사들의 찬양이 주제로 된 것 중 우리가 쉽게 아는 것은 "천사 찬송하기를...","하늘 위의 천사들... 영광"등이 있고,"Ding dong, Merri-ly on High.... Gloia in excelsis D-eo"등을 들 수 있겠다. 천사들이 불렀다는 캐롤. 성탄절에 불라워질 이것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도구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래서 고난을 준비하기 위해 이땅에 나신 예수의 탄생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노래해야 하는 것에 그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의 캐롤은 '찬양'이 아니다. 밝고 활기찬 연말 분위기를 둥실 떠올려 주기 위한 주제음악이다. 어린 아이들은 빨간 옷의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 준다기에 "울면 안돼!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하며 노래한다. 이제는 가수들에 합세하여 인기있는 코미디언들도 캐롤의 상품화에 한 몫하고 있다. 그들 중에 예수를 아는 자가 진정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동네 음악사에 가서 캐롤집을 달라하면 으례히 듣는 소리는 "룰라나 국내걸로 드릴까요? 아니면 팝음악으로 드릴까요? '보이즈 투 멘' 이나 '머라이어 캐리'것이 좋은데..."이다. 캐롤은 이제 천사들의 찬송이 아니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애창되는 대중가요(?)가 되어 버렸다!
???? 성탄절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 성탄절만 되면 그 주인공되는 이가 과연 누구일까? 1세기만 거슬러 올라가면 십중팔구 대답은 "예수님"이었을 것이다. 허나 지나가는 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보라. 하나같이 기쁜 눈망울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요!"하고 떠들어댈 것이다. 요즘 성탄절의 주인공은 바로 "산타클로스"인 것이다. 그렇다면 '산타'는 성탄의 본질적 의미인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데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을까? 잠시 그 유래를 더듬어 보자. 뚱뚱하고 배가 불룩할 뿐 아니라 기분좋게 "호! 호! 호!"하고 웃는 흰 수염이 있는 산타클로스는 4세기 소아시아 지방의 좋은 일을 많이 행한 성 니콜라스(St. Nicholas)를 의미한다고 한다. 평상시 불쌍한 어린 아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나누어 준 그를 기념하기 위해,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이가 선물을 나누어 주는 관습도 생겼다. 이같은 성 니콜라스의 따스한 구제의 행위는, 예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며 어려운 이들과도 더불어 나누고자 했던 초기 성탄절의 모습에 맞물려, 뭇 백성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불우한 사람을 구제했다던 산타클로스. 가난한 이를 돕고 외로운 자를 보살피는 그 모습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가. 유래의 처음은 매우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수십 수백만 장의 성탄 축하 카드에, 거리마다 흥겹게 울려 퍼지는 노래들에 어김없이 단골모델이 되어 줄 만큼 인기있는 성탄 상징물 산타, '성탄'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산타. 성 니콜라스가 이같이 상업적 상품화가 된 것까지도 좋다. 허나 연말만 되면 더욱 추위를 느끼는 이웃들과 그들을 외면하고 자신들만 챙기기에 급급한 오늘의 모습은 산타의 본래 가치에 얼마나 근접하는가? 사람들은 산타클로스의 '구제'와 '사랑'의 이야기엔 관심이 없다. 그는 '성탄절'이라는 축제의 그럴듯한 상징물일 뿐이며, 연말을 겨냥한 돈벌이에 사용되는 선전 문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주인공없는 축제 성탄절이 이제는 축제 일변도의 놀이 문화에 빠져 점점 상업화되어가고 있다. 상업적인 데만 몰두한 인간들로 인하여 '천사들의 캐롤'은 부(富)축적의 도구가 되고, '산타 클로스의 선행'은 실속없는 성탄절의 화려하고 들뜬 분위기를 배가시키는 광대로 전락했다.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고 외로운 자에게 위로의 손길을 베풀기 위한 선물과 카드는 이제 자기 확인을 위한 형식적인 연중행사로 변하고 말았다. "성탄절". 말 그대로 성인되신 예수가 태어나신 날이다. 성탄은 시각적 현상의 영원한 변화요, 죄인에서 의인으로의 실존적 변화를 의미한다. 성탄은 하나님의 보상없는 선물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이었다. 예수님은 영원한 죄인의 늪에서 고통으로 얼룩질 우리 인간들을 구속하시려 이곳에 나신 것이다. 신이 인간이 되셨다는 이 일은 인간의 고난에 동참하셨다는 의미이다. 완전한 하나님이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이 '낮아지심'은 인간의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심이요, 인간고(苦)의 아픔에 동참하신 사건임을 절감해야 한다.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가볍게 '즐기는' 그런 명절이나 축제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구원의 등불되신 예수님을 간절하게, 안타깝게 소망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 곁에 계신 그리스도는 어쩌면 버림받은 아이나 늙은이들 혹은, 의지할 데 없는 병자나 외로운 과부의 모습으로 오실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 우리 곁에서 그러한 초라한 모습으로 서성이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이들을 마땅히 영접해야 한다. 지극히 작은 이로 있는 예수를 찾아 만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소유하는 이다.
글·인터뷰 : 정설(pulitzer21@hotmail.com)
|
|
|
Copyright(c) 1997, Voice21.net. But All right not reserved. |